매우 오랜만에 '톨스토이'를 읽고 있다. 요즘 내 책읽기는 늪에 빠져 있다. 최근 책을 읽을 때의 내 정신적 에너지는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거의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책에 대한 의지박약 및 열정감소 현상은 읽을 만한 책이 없다고 판단해버리는 내 자신의 추악한 교만에서 발생된다. 하지만 난 알고 있다. 항상 그러했듯이, 이 권태를 이겨내는 매우 적확한 처방법을.

  책으로 마음에 감동을 얻지 못할 때, 읽을 만한 책이 부재하다고 느낄 때, 책읽기의 권태가 주는 고독에 번민할 때, 바로 그때 내게 긴
요한 것은 '고전'이었다. 고전은 독자를 겸손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고전은 독자에게 최소한의 어렴성을 넌지시 주문한다. 태동 이후의 인류사를 매혹시켜왔던 그 장엄한 '입증'이 한낱 머리카락 하나보다도 못한 내 교만한 기호嗜好를 압도해버는 것이다. 이미 검증되어진 위대한 텍스트를 통해 인간과 세계를 깊이있게 천착해나가다보면 책읽기의 첫사랑이 어느새 회복된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야 마는 것이다. 

  권태를 이겨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러시아'다. 대학시절에 흠취했었던 '러시아문학'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를 끄집어냈다. 푸쉬킨은 나와 거리가 있었고 투르게네프는 다소 약했다. 단연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톨스토이를 집었다. 집요하고 병적으로 인간의 심연만 파고드는 도스토예프스키보다 인간(내부)과 세계(외부)에 균형을 맞추는 그림을 건강한 방식으로 그려내는 톨스토이가 지금의 내게 더 필요했던 것이다.

  인류가 낳은 최고의 소설가 톨스토이의 숨결을 느끼며 어제도 오늘도 <안나 카레니나>의 매력에 잠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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