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찾아서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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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왕(王)'은 무엇인가. 사전은 왕의 의미를 "군주 국가에서 나라를 다스리는 우두머리"로 풀이한다. 왕에게 대항할 자는 없다. '백수의 왕' 사자에게 덤벼들 동물이 없듯이 왕의 권위는 강력하고 절대적이다. 인간의 정치제도 안에서도 왕의 권한은 무한대다. 입법 사법 행정을 한 손에 주무를 수 있는 초월적 권력자인 것이다. 그렇다. 왕이란 존재는 심히 매혹적이다.

  왕의 매력은 인간의 내면적 속성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 있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강한 집념이 왕을 선망케 했고 결국 만들어냈다. "짐은 곧 국가"라고 외쳤던 프랑스 절대왕정의 어느 군주처럼 왕은 인간성을 넘어선 신의 위치에 서길 원하는 인간의 교만이 아이콘화되어 있다. 인간의 끊임없는 권력 추구의 속성이 만들어낸 산물이기에 왕이라는 존재는 '두려움'과 '의심'을 기본적으로 함의한다. 인간이 왕을 만들어냈고 왕이 된 인간은 인간 이상의 초월성을 끊임없이 누리려 했다. 그러다 결국 파멸되기도 했다. 파멸된 왕은 다시 인간이 됐으며 그 파멸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왕이 가진 힘은 충분히 매혹적인 것이었지만 그 매혹만큼이나 위험했다. 그랬기에 인류사 이래로 대부분의 왕은 결국 '파멸'을 맞이했다.

  우리 시대가 낳은 최고의 입담꾼 성석제는 자신의 첫 장편소설을 통해 힘과 권력에 집착된 인간의 본성을 깊이있게 탐구한다. 15년 만의 개정판으로 독자를 찾은 소설가 성석제의 거침없는 서사는 왕의 매력만큼이나 매혹적이다. 도시를 벗어난 한 지역사회 건달들이 뿜어내는 거칠고 굵직한 이야기가 성석제 특유의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문체로 독자의 가독력을 속도화한다. 

  소설가 성석제의 『왕을 찾아서』는 제목 그대로 왕을 찾는 이야기다. 그 '찾음'의 일차적인 의미는 주인공 장원두가 어린 시절에 영웅으로 추앙했던 동네 건달두목 마사오를 향한 경외와 그리움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보다 입체적으로 소설을 조망해보면 등장인물 대부분의, 어쩌면 모든 인간의 내면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왕을 향한 욕망의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힘과 권력을 갈구하는 인간의 태초적인 속성과 그것의 사회적 인과성, 그리고 권력의 비영속성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소설을 읽는 내내 가벼우면서도 묵직한 성석제표 입담에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주인공 장원두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그토록 경외했던 고향의 건달두목 마사오의 부고를 접한다. 개인적인 상처로 고향을 떠났던 원두는 마사오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고향을 찾는다. 장례식에서 그는 마사오와의 추억과 자신의 친구였던 몇몇 건달들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게 된다. 아무도 넘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마사오의 빈 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고 또 다른 사람이 다음을 채우는 권력의 지속성에 원두는 놀란다. 그는 깨닫는다. 왕으로 대변되는 힘과 권력의 양태는 그 주체만 바뀔 뿐 계속적으로 순환되고야 마는 것을.

  인간은 힘을 갖고 있는 상태를 유지할 때만 온전한 왕이 될 수 있다. 소설 속에서 유신조, 마사오, 조창용, 박재천으로 이어지는 왕권 교체를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기는 원두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원두가 그토록 사랑했던 여인 세희도 이 남자 저 남자를 거쳐 결국은 최후의 왕 재천의 여자가 된다. 권력의 가장 강력한 속성은 소유욕을 장악하는 데 있다. 돈과 인간뿐만 아니라 사랑까지도 소유하고야 마는 강력한 힘이 인간의 권력 속에는 존재한다. 가슴을 두근거리면서 어렵게 한 걸음 한 걸음 사랑의 발걸음을 내디뎠던 세희를 향한 원두의 성실함은 왕이 될 가장 능동적인 '세자'였던 친구 재천의 권력성 앞에서 처절하게 짓밟히고 만다. 그렇다. 왕은 힘이 세다. 그리고 매혹적이다. 사랑의 진실과 성실을 뒤엎고 호도시킬 만큼.

  소설은 마사오 이후 권력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한 지역 건달들의 야욕과 패권싸움을 적나라게 그려나간다. 조폭세계에 대한 스케치는 비단 문학뿐만 아니라 한국 대중문화가 수없이 그려왔던 레퍼토리이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신뢰성을 상실한 건달세계의 모습은 인간이 지향해야만 하는 '아름다운 세상'의 조건들과는 철저히 대척점에 서 있다. 성석제는 태생적으로 권력욕에 지배당한 인간세계의 한계를 가장 낮은 바닥의 이야기를 통해 묵묵히 그려내고자 했을 것이다. 거짓과 파괴, 간교와 악의가 득실대는 깡패세계의 모습이야말로 왕의 영광과 파멸의 대극(對極)을 가장 역동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은 성석제 특유의 문체에 있다. 선굵은 지역 건달들의 이야기가 건조하지 않게 한 숨에 읽히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역량 덕분이다. 가독력이 가히 발군이다. 독자는 시간가는줄 모르고 성석제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작가는 주인공 장원두를 통해 자유자재로 시점을 이동시키며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유머, 재치, 익살, 해학으로 점철된 개성있는 문체는 가벼우면서도 서사의 권위를 흠집내지 않고 독자에게 여운을 남기는 힘이 있다. 쉽게 읽히지만 흡입력 있는 서사는 흐트러지지 않은 채 소설의 말미까지 안전하게 당도한다. 쉼없이 이야기에 몰두한 독자의 집중력은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에는 무언가의 깊은 여운을 확인하는 에너지로 자연스럽게 대체된다. 성석제의 힘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지역사회는 그곳 건달들이 힘의 논리로 겨루는 작은 공간이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은유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그곳은 인간세상 전체를 풍자해놓은 공간이다. 권력에 대한 욕망은 비단 지역 깡패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에 해당되는 엄연한 약점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곧 '지구'였던 것이다. 동시에 소설의 제목 '왕을 찾아서' 또한 인간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암시를 함의한 배치일 것이다. 왕 마사오에 대한 원두의 방향성은 인간이라면 어느 누구나 갖고 있는 '강한 것'에 대한 야심을 메타포한다. 왕을 찾아서. 그렇다. 인간은 자기 안에 존재하는 '왕을 찾아서' 헤매며 갈등하는 바로 그런 존재인 것이다.

  간만에 성석제의 소설을 만나서 즐거웠다. 놀랐던 것은 성석제가 이토록 소설을 매력적으로 쓰는 작가였나 하는 점이다. 그간 몇 편의 작품에서 그의 가벼운 입담에 거리감을 느꼈던 내가 그의 첫 장편소설에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누린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을 게다. 좋은 작품은 언젠가는 독자를 찾아가게 되어 있다. 소리 소문 없이 절판된 소설이 15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독자를 찾은 필연이 그것을 넌지시 증명한다. 한 작가에 대한 오해가 오늘로서 풀리게 됐다. 독자로서 흐뭇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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