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오소희 작가를 만났다. 그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와이프와 함께 만났다. 오랜만에 성취된 만남이었다. 내 결혼식에 오지 못한 죄값(?)을 저녁식사로 대신한다는 그의 대응이 나쁘지 않았다. 꽤 오랜만에 만났지만 그의 내·외면적 아우라는 바뀐 것이 없었다. 수차례 그를 만났지만 항상 일관성을 견지하는 그의 모습에 난 흠모를 느꼈다. 물론 타자에 가려진 그의 속깊은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는 모르는 것이겠지만.

  지금의 와이프는 내 첫사랑이다. 나는 '단 한 번'의 사랑을 했고 '단 하나'의 사랑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연애사와 겨루어도 생색낼 수 있는 컨덴츠가 내 사랑사에는 밀도있게 존재한다. 십 년이 넘게 한 여자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며 사랑해왔던 내 자신이 당시에는 너무 밉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숱한 고초와 역경을 이겨내고 결혼까지 골인한 현재의 내 모습은, 너무, 멋지다.

  결혼 전이었다. 와이프와 헤어져 있던 시기였다. 오 작가와 단 둘이 차를 한 잔 마시며 사랑을 논했던 때가 있었다. 당시 나는 와이프를 잊지 못한 그리움에 마음 아파했고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내 현재상에 큰 부담을 느꼈던 때였다. 주변에서는 결혼과 연애는 다른 것이라며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과 기술을 남발했다. 그들은 역설했다. 사랑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결혼생활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볼륨은 절대적으로 작다는 게 그들의 논설이었다. 혼란스러웠다. 의심하기도 했다. 사랑은 대체 무엇이며 결혼과는 어떤 방정식에 놓여 있는 걸까. 사랑이 결락된 채 세상이 열거하는 다양한 조건들만 갖고 결혼은 가능한 것일까. 이런저런 자못 진지한 질문에 이르렀다. 그러던 터에 오 작가를 만났던 것이다.

  사랑과 결혼에 대한 오 작가의 입장은 단호했다. 결혼은 반드시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혼에서 사랑은 필수이자 전부이며 궁극이라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한다는 말. 맞는 말 아니던가. 사랑 없이 어떻게 결혼이 가능하겠는가. 당연한 진리 아닌가.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고도자본주의는 물질적인 것들이 과잉되어 인간 본연의 가치가 굴곡되고 호도되는 염치없는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이고 정신적인 가치가 비본질적이고 물질적인 것들에 의해 본래성을 상실해가고 있다. 이 변질성에 내 순수함이 흔들리기 시작할 무렵 작가 오소희는 따끔한 일깨움으로 나를 본질의 선상으로 다시 데려다 준 것이다.

  오 작가의 조언과 격려에 난 힘을 얻었다. 그리고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와이프를 다시 만났고 결혼에까지 골인하게 되었다. 그 후 몇 달이 흘러서 당시 내 눈물의 원인이었던 와이프를 오 작가에게 처음으로 소개시켜준 것이다. 두 시간이 넘게 이야기꽃을 피우며 잊지 못할 좋은 만남을 가졌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오 작가의 다음 작품이 바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고를 이미 출판사에 넘긴 상황이며 3월 중에는 신간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신간도 신간이지만 주제가 사랑이라니. 이게 왠 일인가. 가슴이 두근거렸고 맥박수가 빨라졌다.

  사실 오 작가가 쏟아낸 모든 저서들의 주제는 사랑이었다. 몇 권 되지 않는 오 작가의 비블리오그래피는 한결같이 사랑을 말해왔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었고, 아들을 향한 사랑의 메신져였으며, 세계에 대한 사랑의 학습과정이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카테고리가 워낙 굵어서 텍스트의 본질이었던 '사랑'의 주제성이 다소 작게 와 닿은 것뿐이었다. 본격적으로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그의 신간이 나는 너무 기다려진다. 삼 월의 내 모습이 그려진다. 자주 가는 온라인서점의 검색창에 매일같이 '오소희'라는 이름 석 자를 타이핑하지 않을까.

  어쩌면 나의 이러한 태도조차도 전혀 다른 사랑의 한 형태이리라. 그랬다. 난 사랑했다. 진지하고 인간적이며 열정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한 사람에 대해 기적같은 일말의 가슴 두근거림을 자신의 심장에 담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아름다운 작가를.

  기다리는 건 힘든 일이다. 인간은 기다리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고 우울한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우울증은 기다림을 망각하는 병이라는 것을. 사랑의 속성에는 태생적으로 '기다림'이 함의되어 있다. 사랑한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내가 와이프를 기다렸던 것처럼. 오 작가와의 만남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고 그의 신간을 기다리는 것처럼. 기다리는 순간은 쓰고 아프지만 결국 삶과 사랑에는 달다. 그것이 기다림의 작동원리이다.

  곧 출간될 오소희 작가의 신간을, 나는, 애타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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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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