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그러했듯이 올해 읽은 책 중에서 '베스트 5'를 선정해 이웃님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2010년은 이런저런 이유로 책을 읽은 만큼 서평을 남기지 못한 해였다. 개인사도 많았고 게으르기도 했다. 형편없는 리뷰어의 아마추어리즘을 가감없이 보여준 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나마 한 해를 마무리하며 책 읽은 리스트를 반추하게 된 것은 다행스럽다 하겠다.



1. 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김영사, 2010

 


  2010년 '올해의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로 선택했다. 현재 거의 모든 온라인서점에서 압도적으로 금년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고 있다. 이
현실성에 부담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인문서가 장기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현상에 무턱대고 경도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이 책을 선정한 이유는 간명하다. 책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다. 모든 평가의 기준은 본질이다. 

  2010년은 각계각층에서 말로써 정의를 수없이 논한 해였다. 갑작스레 대통령께서 어울리지 않게 '공정한 사회' 운운하며 한국사회에 정의론을 부르짖었다. 또한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졌다. 이런 배경에서 이 책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하루키의 종합예술문학 완결판도, 대한민국 자본주의사의 역동성을 그려낸 황석영의 장편도, 신경숙의 매력적인 청춘소설도 이 한 권의 인문서를 압도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 책은 과연 무슨 마력을 가졌을까.

  '정의(justice)'는 우리사회의 지속된 당위當爲이다. 정치 발전과 함께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한국사회는 정의에 대한 '당위'가 '존재'로까지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어느 사회든 공정성의 집행이 완벽할 수는 없다.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는 완전하지 못하다. 인간 속에 내재된 한계와 실수의 유전자는 사회의 오류와 굴곡을 발생시킨다. 이는 유한적이고 비논리적인 인간성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인간의 '방향성'만큼은 항상 올곧음을 지향해왔다. 역사를 깊고 넓게 보면 인간은 옳은 방향으로 가고자 노력했다. 에드워드 카의 주장대로 역사는 언제나 발전해왔고 그 바탕에 인간 삶의 긍정적 진보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샌델 교수는 다양한 사례와 흥미로운 토론거리를 철학적 사유의 공간 속으로 밀어넣는다. 상당수 미국적 예시에 기댄 부분과 기존의 철학 이론 위주로 풀이한 부분은 '한국인의 정의론'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저자가 안내하는 아리스토텔레스, 밀, 벤담, 칸트, 롤스의 세계를 관통해가다 보면 어느덧 가까워지는 정의의 본질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사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막장까지 정의란 무엇인지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하지만 독자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정의는 진정 무엇인지, 정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지, 정의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명제로 규정될 수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 말이다. 즉 독자에게 저자 자신의 정의론을 강요하기보다는 정의에 대한 올곧고 열정적인 태도를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정의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과 질문이이야말로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의 핵심이었을지 모른다.

  정의가 꼭 필요한 사회를 살고 있는 독자들에게 그에 대한 바른 이해와 겸허한 태도를 견인했다는 점, 그리고 정의의 붐을 만들어내며 공정한 사회 건설을 위한 진지한 사유를 추동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올해의 책이 되기에 한 치의 부족함도 없다.



2. 김대중 자서전, 김대중, 삼인출판사, 2010



  <김대중 자서전>은 한 사람의 일대기로 갈무리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텍스트다. 한 인물의 전기를 넘어서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독자를 밀어넣는 힘이 있다. <김대중 자서전>이 담은 시공간의 크기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1920년대의 일제식민통치부터 좌우 이념대립이 극심했던 해방공간을 거쳐 민족 최대의 비극인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민주화투쟁, 5·18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 사상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주요 고비를 온몸으로 건너왔던 김 전 대통령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그렸다.

  이 책을 평하는 데 있어 정치적 견해차이는 배제되어야 한다. 진보든 보수든, 김대중을 지지했든 비판했든, 그 어떤 입장에 서있든지간에 인간 김대중의 족적을 훑어보는 일은 한국 민주주의의 오욕의 현대사를 살피는 일과 동일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좁게는 김대중이라는 한 위인의 자전이자, 넓게는 굴곡진 한국 근현대사의 관통이라는 측면에서 <김대중 자서전>은 반드시 읽어야 할 텍스트다. 실로 깊고 풍성하며 방대하다.


3. 마음짐승, 헤르타 뮐러, 문학동네, 2010




  노벨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정신적 압박은 책을 평가하는 내 기준의 자장 밖에 있다. 세기의 대작가 헤르만 헤세를 비웃었고, 헤럴드 블룸이 극찬한 코맥 메카시의 <로드>를 잘근잘근 씹었다. 외부, 즉 타자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는다는 것은 내 독서기호와는 무관한 것이다. 사르트르가 역설한 '소설적 자유(Romanesque liberte)'는 분명한 진리다. 책의 주체는 작가도 아니고 타인도 아니며 책을 집고 있는 현재의 당사자, 바로 자기자신이다.

  1994년 오에 겐자부로의 수상 이후 노벨문학상 수상작품에 대한 관심이 녹록지 않았다. 본래 한국문학을 즐겨 읽기에 그리 많은 수상작을 만나보진 못해왔다. 그중 몇몇 눈에 띄는 작가에 호감을 가져왔는데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의 소설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음짐승>을 읽고 응축된 시적 언어가 어떻게 산문화될 수 있는지 놀랐다. 소설은 독재 시절의 루마니아의 현실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남의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비슷했던 고통의 시대를 살아가는 네 청춘남녀의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다가왔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내용의 투영과 독특한 전개구조, 응축된 시정詩情과 세밀한 문체는 독자로 하여금 고통과 공포의 시대의 아픔을 읽어내게 하는 가슴 쓰라린 '완성도'가 된다.



4.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문학동네, 2010




  문학평론가 조영일은 이 소설에 대해 하루키 소설의 전형적인 아류라며 혹평했다. 특히 <상실의 시대>를 신경숙적으로 재구성하여 표절한 텍스트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대로 따온 1차원적 표절은 아니더라도 작품 전체를 뒷받침하는 다양한 유사성이 하루키 아류의 증거라고 외치는 조영일의 지적에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 없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문학에서 상징, 등장인물, 서사구조의 지엽적 유사성을 이유로 표절 운운하는 그의 오류가 심히 불편하다. 조영일의 주장대로라면 이 세계의 책들 3할 이상이 표절로 증발해버리게 된다.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와 본질적으로 다른 텍스트다. 소설의 주제가 다르고 작가의 태도가 다르며 독자에게 전달하는 방식이 다르다. 신경숙과 하루키는 전혀 다른 소설가다. 신경숙은 하루키 소설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섹스씬 하나 없이 청춘시절의 혼란과 아름다움을 세련되게 그려냈다. 더욱이 발군의 세밀한 문체는 신경숙 문학의 보석이다. <엄마를 부탁해>의 폭풍이 워낙 강렬해서 신간이 내뿜는 불빛이 상대적으로 밝지 않아 보였을 뿐이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충분히 강렬하고 유려하며 매력적인 소설이다.


5. 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창비, 2010



  최근 몇 년간 인권이 후퇴되었다고들 한다. 일견 공감한다. 미네르바가 구속되었을 때 같은 글쓰는 블로거로서 겁났던 게 사실이다. 이 정권 들어서 국가가 무서워 어디 맘 편히 글 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아직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새삼 자유와 인권을 생각하게 된 지난 몇 년이었다. 이는 비단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는 동성애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청소년 등 사회 약자들의 인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권이라는 묵직하고 딱딱한 주제를 영화나 드라마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냄으로써 독자에게 흥미를 유발시킨다. 저자 특유의 재치와 맛깔스러운 문장은 독자에게 흡입력을 더한다. 다양한 예시를 통해 인권의 소중함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소개함으로써 다양성을 배가했다. 요컨대 <불편해도 괜찮아>는 숭고한 인권의 가치를 흥미롭지만 가볍지 않게 풀어낸 책이다. 책 자체도 훌륭하지만 시의성이라는 측면에서 응당 2010년 올해의 책이다.

 



 

 

 

 

 

Written By David
http://blog.naver.com/gilsamo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