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권미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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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코엘료와 만났다. 그의 소설을 즐겨 읽는 편이다. 전작이라 할 만큼 나는 그의 모든 소설들을 탐독해왔다. 『연금술사』는 삶과 꿈에 대한 내 자아의 현재상을 궁구하게 했다. 『베로니카 죽도록 결심하다』는 삶과 죽음을 탐색하면서 현존에서의 사랑이 얼마나 값비싼 것임을 교훈했다. 『순례자』는 비범한 삶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의 길 위에 있음을 일깨웠다. 『포르토벨로의 마녀』는 신의 여성성을 탐구함으로써 모성이라는 아가페의 인간적 현현을 그렸다. 그리고 그 위대함 앞에 고개를 숙이게 했다.

  코엘료의 모든 작품들은 특유의 신비스러운 문체로 신과 자아를 동시에 천착하는 묘한 마력을 가졌다. 그것은 일부 기자들이 비판하는 '통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우주의 원류를 찾고자 하는 신과 사랑에 대한 코엘료의 진지한 성찰로 볼 수 있다. 코엘료는 항상 진지했다. 신의 여성적 면모를 조명함으로써 삶과 우주에 대한 입체적 본질을 탐구했다. 무엇보다 꾸준한 자아찾기 과정 속에서 자신의 진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모습은 언제나 인상적이었고 빛났다. 그의 소설을 읽다 보면 기나긴 내적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의 모습에 어느덧 내 자신의 현재성을 투영시키며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요컨대 코엘료의 텍스트를 읽는 것은 신비로운 여행을 떠나는 것과 동일한 의미였던 것이다.

  이러한 독특한 코엘료식 허구는 전세계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코엘료 문학은 하나의 '브랜드'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체, 신비스러운 네러티브, 신을 향한 끊임없는 탐구, 여성성에 대한 집요한 관심, 자아를 찾는 지속적 열정 등은 코엘료 소설이 가진 일관적인 특징이다.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오롯한 개성을 확립한 것만으로도 코엘료가 이룬 문학적 성취는 가늠된다.

  그의 최신 장편소설 『브리다』는 기존의 코엘료 소설의 특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집필시기로 본다면 『연금술사』 다음에 놓이게 되지만 출간이 늦어져 2008년에서야 독자의 손에 잡히게 되는 작품이다. 그런 만큼 그의 대표작 『연금술사』의 주제의식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으며 그 다음 작품들을 이어주는 교량의 역할을 담당한다. 코엘료 문학의 키워드인 자아의 신화, 신성 차원의 사랑, 인간 본질의 탐구를 소설 『브리다』는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다. 보다 집약된 코엘료 소설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브리다』는 코엘료가 순례중에 만난 브리다 오페른이라는 여성이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소설이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 숲속의 마법사를 찾아나선 주인공 브리다의 강렬한 열정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코엘료표 서사의 전형을 보여준다. 소설 속에서 브리다가 얻고자 하는 마법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로 정의된다. 마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주술적이고 종교적인 행위들이 수없이 반복된다. '태양'과 '달'은 브리다가 이해해야만 하는 마법 전통의 두 가지 원류로 소개된다. 브리다의 첫 마스터인 숲속의 현자와 두 번째 마스터인 위카는 이야기를 추동하는 중심인물로 소설 속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태양전승과 달전승으로 구분된 마법의 학습과정은 브리다의 숨겨진 재능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며 더욱 역동성을 발한다.

  브리다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두 마스터는 마법을 "눈에 보이는 세계에서 눈에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건너가게 하는 다리"로 풀이한다. 브리다는 마법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누구인지 알게 된다. 브리다가 깨닫고자 하는 마법의 신비한 본질과 끝내 알게 되는 소울메이트의 존재는 코엘료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연장선상에서 상호유사성을 가진다.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명명되는 우주상의 최상위 가치로 연결되는데, 이를 코엘료는 매우 단순한 서사를 통해 유치하지 않은 방식으로 그려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그것은 표면적으로 마법을 정의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랑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차원을 연결하는 힘이자, 자기 자신의 내면을 성찰할 수 있는 근원적인 깨달음이며, 세계를 올바르고 직선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지혜의 광휘가 바로 사랑인 것이다.

  코엘료는 언제나 그랬다. 그는 그의 문학사에서 사랑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전통적 신성을 거부하고 신의 양성적 면모를 묘사함으로써 사랑의 해석이 지엽적인 부분에서 호도되는 것을 차단했다. 또한 끊임없는 수련의 과정을 통해 자아의 진실된 본질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했다. 그러므로 진정한 사랑의 기초가 자아애自我愛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더 나아가 죽음이 갖는 찬란한 속성을 파헤침으로써 죽음에 대한 자각을 치열한 삶의 생명력으로 환원시키기도 했다. 코엘료식으로 따진다면 삶과 죽음, 행복과 열정은 모두 아가페의 또 다른 현현이다. 요는, 그 모든 것이 사랑에서 통합되고 사랑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네 인물의 사랑의 방향성은 인물 사이의 독특한 긴장의 간극을 만들어내며 사랑의 의미를 점차적으로 완성시킨다. 브리다, 로렌스, 마법사, 위카는 각각 서로의 소울메이트로서 얽혀 있다. 자신의 소울메이트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에 놀라움을 갖게 되고 자신이 상대의 소울메이트가 되지 못하는 엄연한 현실에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울메이트는 매우 오래전, 어쩌면 시간이 존재하기도 전에 이미 운명적으로 계획되어졌을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예정되었다는 것은 신의 개입을 의미한다. 인간에게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과관계로 생성되지만 우주의 이치상으로 미리 계획될 수밖에 없는, 철저히 신의 디테일로 발현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코엘료가 풀이한 사랑의 메시지는 하루키의 세계와도 닿아 있다. 하루키는 그의 최신 베스트셀러 <1Q84>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매우 독특한 전제를 단다. 그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라고 말이다. 이는 사랑의 중요한 속성을 함의한다. 그것은 '정신'의 문제이자 '본질'의 문제이며 '차원'의 문제이다. 사랑은 서로 다른 은하계를 관통하는 힘이다. 사랑은 공간을 무력화하고 시간을 굴절시킨다. 하루키가 소설 <1Q84>에서 그린 세계가 그랬다. <1Q84>의 여주인공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의 죽음은 슬프지만 비극적이지는 않다. 이유는 사랑의 결과이기 때문에, 더 나아가 진정한 사랑이 내포하고 있는 영원성으로 물리적 시간의 유한성을 상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소설 『브리다』에서 그려진 마법 세계의 진본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연결하는 다리. 그것은 종내 브리다가 알고자 했던 마법의 본질이었고 사랑의 정의였다. 인간은 분명 사랑을 통해서만이 차원의 간극을 넘어서는 초월을 경험할 수 있다. 물질이든 정신이든 우주의 그 어떤 것도 사랑을 대체하지 못한다. 사랑은 회귀하지 않고 환원될 수 없으며 치환되지도 않는다. 사랑은 사랑이다. 코엘료의 비블리오그래피(bibliography)는 항상 사랑에 관대했다. 그것이 삶과 죽음, 자아와 세계, 신과 열정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소설 『브리다』의 문학적 감동이 바로 여기에 있다.

  끊임없이 자신만의 색채로 사랑을 탐구하는 소설가 코엘료가 나는 좋다. 그가 사랑에 관대한 것처럼 나도 사랑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사랑을 그린 텍스트에 나도 모르게 관용의 수치는 무한대를 가리킨다. 어쩔 수 없다. 코엘료의 최신작 『브리다』에 대해 나는 아낌없이 별 다섯 개을 선사한다.

 
  창조의 정수髓는 오직 하나야. 그리고 그 정수를 사랑이라 부르지. 사랑은 세상 곳곳에 여러 개로 흩어져 있는 삶의 경험을 응축시키기 위해, 우리를 다시 하나로 모으려는 힘이야.   - p. 61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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