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다 보면, 어찌 글을 이리 잘 쓸까, 하는 탄성이 나올 때가 있다. 소설이든 비소설이든 세계의 역량있는 작가들은 발군의 필력으로 독자를 압도한다. 특히 몇몇 작가는 글에 신성을 불어넣은 듯 마법적인 힘으로 읽는이의 심장을 뒤흔든다. 가슴을 쓸어내리게 되는 멋지고 아름다운 글로 인해, 그리고 그것이 주는 삶의 교훈으로 인해 우리는 오늘도 책 속에 파묻혀 산다.

  책 관련 블로그를 오픈한 지 어느덧 사 년 차가 되었다. 책을 읽고 후기를 남기는 것은 내 부족한 책읽기를 보완하고 정리하기 위함이요, 타인의 사유와 견해를 참고하기 위함이다. 글쓰기는 깊고 풍성한 책읽기를 견인한다. 한 권의 책이 주는 총체적 의미와 부분적인 가치에 대해 글을 쓰며 정리하게 된다. 더 나아가 블로그라는 공간에 오픈함으로써 내 생각이 정답이 아님을 인정하고 타자를 통한 다양성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된다. 독서에 왕도는 없기에 고집을 꺾고 보다 겸허한 자세로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블로그 이웃님들로부터 글쓰기와 관련된 문의를 종종 받는다. 서평의 왕도나 글 잘쓰는 비법에 대해 물어올 때면 나는 한없이 민망해진다. 내 자신조차 미천한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어찌 타인에게 조언할 수 있단 말인가. 이웃님들의 질문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면서도 한 가지 드는 생각은 "좋은 글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이다. 왜 많은 사람들이 글을 잘 쓰고 싶어할까. 그렇다면 과연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

  온라인상의 글을 읽다 보면 문득 불편해진 내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글은 필자의 창조물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하나의 창조적 행위이다. 필자의 생각과 경험과 철학을 필자만의 필체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글에는 필자의 사상과 개성이 묻어있을 수밖에 없다. 글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 '누군가'의 개성이 글의 존재성을 결정한다. 최소한 '논설'의 규격을 갖추고 있는 모든 글은 철저히 필자의 주관에 의해 창조된다. 필자의 주관은 논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좋은 글이 될 수는 없다.

  서평을 포함한 모든 리뷰는 하나의 논설문이다. 논설문이라 함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을 조리있게 풀어 밝히는 글을 의미한다. 이 정의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두 가지다. 먼저 '자기의 생각이나 주장'이 목적이 되어야 하고, 그 다음 그것을 '조리있게 풀어 밝히는' 글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피력하는 것이 논설문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것이다. 즉 글은 '주관'의 목적을 '객관'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글은 타자에게 읽힘을 전제로 한다. 더욱이 온라인에서 씌여지는 모든 글은 불특정다수가 읽는다는 것을 염두한다. 그것은 필자 자신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글이란 것은 내 생각의 갈무리를 넘어 타자를 향한 메시지이자 소통이다. 태동적으로 글은 '사회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필자로서 갖추어야 할 예의와 태도를 이끌어낸다. 동일한 소재라 하더라도 필자에 따라 글의 논지와 색깔은 분명 다르다. 다른 만큼 빛나고 개성이 있을수록 멋지다. 다양성은 선善이 된다. 하지만 그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글에 대한 최소한의 규격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기본이고 명확한 주관 피력, 조리있고 논리적인 서술, 합리적인 논거, 풍부한 어휘력, 매끄러운 문장력 등은 글과 읽는 이에 대한 예의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의 주관적 개성과 함께 좋은 글을 완성하는 전제조건이 된다.

  온라인상의 적지 않은 블로거들이 바로 이 부분을 망각한 채 리뷰라는 카테고리를 마치 자신의 일기나 낙서 정도로 오해하고 있는 듯하다. 더 나아가 솔직한 글이 좋은 글이라며 읽는 이에게 가져야 할 신성하고 묵직한 최소한의 책임감조차 결여된 모습도 눈에 띈다. 물론 솔직한 건 좋은 것이다. 글에서 정직은 매우 중요하다. 솔직함이 언어를 힘있게 한다. 하지만 솔직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 어휘와 문장을 넘어 하나의 완성된 글까지 텍스트는 다듬어져야 한다. 잘 써야 하는 것이다. 잘 쓴 글이 좋은 글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글은 언제나 잘 쓴 글이었다. 앞서 언급했지만 글은 타자에게 읽히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조악한 문장을 솔직함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가리면서 큰소리 치는 이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많다. 그들의 오해가 너무 불편하다. 노력과 예의가 결락된 자신의 혼잣말 수준의 낱말 조합을 좋은 글이라고 호도하며 착각에 빠진 이들에게 나는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조언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만큼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건 없는 듯하다. 글쓰기는 철저히 훈련으로 발전될 수 있다. 언어에서 말하기는 선천의 영역에 기대지만 글쓰기는 후천의 영역에서 다듬어진다. 자신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틀린 채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형편없는 문장에 담아내면서 자신이 괴테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나는 일갈한다. '솔직'과 '충격'이라는 요행보다 깊이있고 논리적인 글쓰기를 통해 책과 벗하고 인간과 소통하기를.

  솔직함으로만 작가가 된 이는 없다. 아직도 세계의 수많은 작가들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자신의 필력을 손보고 다듬으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각고의 노력을 통해 언어의 정수를 걸러낸다. 어떨 때는 하루 내내 한 문장도 쓰기 어려워 고통스러워 하기도 한다. 오랫동안 집필한 글을 수 년 동안 탈고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거듭된 탈고도 맘에 들지 않아 세상에 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글쓰기는 그런 것이다. 고통이다. 신성한 것이다. 나를 보는 동시에 타인과 소통하고 의식하는 행위이다. 글을 향한 이러한 경외한 마음이 없다면 좋은 글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다.

  니체는 피로써 쓴 글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는 글쓰기의 '집중中'과 '성의意'를 의미한다. 언어의 정점인 동시에 언어를 넘어선 세계는 피 없이는 불가능하다. 좋은 글에는 반드시 필자의 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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