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희, 사소한 아이의 소소한 행복
최강희 지음 / 북노마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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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았다. 

  개인적으로 연예인의 책 출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간 만나왔던 연예인들의 책은 나름의 개성과 예상 외의 만족으로 나를 즐겁게 했다. 신현준의 『고백』에서 그의 진지한 삶의 태도와 깊은 신앙심을 보았다. 차인표의 『잘가는 언덕』에서는 탤런트가 글까지 잘 쓸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 손미나의 여행기는 여행의 외연이 아닌 내면을 조명했기에 극찬했다. 션·정혜영 부부의 에세이를 통해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사랑하는 색깔과 따뜻한 가족애를 탐구했다. 항상 만족스러웠다. 중요한 건 텍스트 자체이기 때문이다.

  배우 최강희를 좋아한다. 내가 그녀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펼친 최강희의 연기는 정이현이 창조한 오은수라는 캐릭터를 자신만의 색깔로 재창조한 모습을 보여줬다. 영화 <애자>에서 그녀의 눈물연기는 작품의 완성도에 비하면 실로 아까운 열연이었다. 최강희는 항상 성실했다. '4차원'이라는 수식어는 무의미하다.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 가수가 노래만 잘하면 그만이듯이.

  지금껏 읽어왔던 연예인의 책들이 준 만족감과 배우 최강희의 성실함을 믿었기에 그녀의 신간은 어렵지 않게 내 손에 안착했다. 그것이 속은 것임을 모른채 말이다. 중고생 일기 수준의 낙서와 연결고리 없이 나열된 사진들은 진지한 독서를 차단시킨다. 이 정도 수준의 에세이를 만들기 위해 양장본을 두르고 올칼라로 돈을 바를 필요가 없다. 나무는 한정되어 있고 종이는 비싸다.

  마치 네이버 검색창에서 '최강희'라고 친 후 나오는 무수한 사진들을 보는 것 같다. 각 페이지를 도배하고 있는 사진들이 왜 그자리에 무슨 이유로 배치되어야 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 사진과 함께 수록된 최강희의 시와 수필들도 수준 미달이다. 텍스트라 해봐야 수많은 사진들에 가려 얼마 있지도 않거니와 하나같이 유치찬란한 문장들뿐이다. 사진은 글을 보조하지 못하고 글은 사진을 견인하지 못한다. 아무리 포토에세이라곤 하지만 완성된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진 이상 최소한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결락된 책은 나무(종이)에 대한 모독이자 독자에 대한 불손이다.

  최강희의 사진을 보고 싶다면 인터넷 검색으로 충분하다. 책을 덮은 후 머릿속에 남는 것은 최강희의 뽀얀 피부와 이쁜 다리뿐이다. 완독하는데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지만 시간은 금이라는 삶의 진리를 새삼 곱씹게 된다. 이런 싸구려 에세이를 위해 지갑을 열고 시간을 낭비한 내 자신이 초라하다.

  리뷰 쓰는 것조차 부끄럽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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