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힘이 세다
이철환 지음 / 해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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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눈물은 힘이 세다』는 선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담한 필치로 그려낸 에세이 『연탄길』의 작가 이철환의 첫 장편소설이다. 『연탄길』시리즈는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총 360만 독자의 가슴에 감동을 불어넣었다. 개인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맹신하지 않고 작가의 전작과 근작을 연결짓지 않기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공정과 냉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껍지 않은 분량을 한달음에 마무리 지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매력적인 제목 만큼 힘있고 강렬하게 나를 견인해주지 못한 소설이다.

  이 소설은 궁핍한 가정에서 태어난 주인공 최유진의 가족애와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최유진은 다양한 관계맺기를 통해 자아를 찾고 인생을 배운다. 소설 전체적으로 그는 네 명의 인물들과 관계를 형성한다. 술주정뱅이로 어렸을 때 그토록 싫어했던 아버지. 힘들 때마다 하모니카 연주와 인생의 조언으로 정신적 멘토 역할을 하는 옆집 눈먼 아저씨. 첫 눈에 반해 그토록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첫사랑 라라. 가장 친한 친구로서 항상 옆에 있어주는 달수. 네 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주인공 최유진은 고난한 삶 가운데서도 세상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키운다.

  작가의 문체는 간결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힘은 부족하다. 소설은 전체적으로 매우 단선적인 구도을 가진다. 주인공 최유진과 각 인물들간의 대화가 이야기 전개의 중추이다. 작가는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는 텍스트는 간결한 단문장으로 이끌어가지만 인물들간의 대화에는 잠언록과 같은 아포리즘들을 배치시킨다. 이런식의 집필은 결국 인물이 언어에 짓눌리는 결과를 초래하는데, 특히 눈먼 아저씨가 최유진에게 쏟아내는 잠언들은 서사 전개와 상당한 부조화를 발생시킨다. 인물성은 부재된 채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은 의지로만 전달될 뿐이다.

  소설에서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유진과 아버지의 관계는 기존의 통속서사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유진이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품었던 반감과 분노는 결국 이해와 포용으로 변화된다. 아버지가 바뀐 것은 아니다. 항상 술을 벗삼고 어머니를 핍박한다. 끝내 알코올중독자로서 당신의 삶을 욕보인다. 아버지를 바라보는 유진의 시각이 변화한 것이다. 그 변화는 누구나 성장하면서 생기는 깨달음과 깊이의 영역이다. 소설의 이야기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종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장소설의 통속성을 그대로 대입한 작가의 진부한 접근이 씁쓸하다.

  유진과 라라의 로맨스 또한 그렇다. 첫사랑이라는 순전함 위에 두 인물은 놓여있다. 어린 시절 집안의 궁핍한 사정으로 몽당 크레파스조차 준비하지 못한 유진에게 곱게 쓰던 자기 것을 건네는 라라의 모습은 천사의 형상으로 각인된다. 그 순전한 첫사랑은 소설 속에서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로 연장된다. 하지만 둘이 사랑을 이뤄가는 그림은 녹록하다. 순수함은 있지만 그 순수성을 보완하고 집대성하는 갈구와 열정은 부재하다. 둘은 성인이 된 후 카페라는 공간을 통해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며 소설 속에서의 서로의 관계적 운명을 묵묵히 유지해간다. 다분히 기계적인 만남의 연속으로 비춰진다. 세월이 흐르면서 꾸준한 만남을 갖는 유진과 라라의 대화 장면들은 사랑보다는 서로의 관념을 공유하는 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이야기의 본류로 지탱될 것 같던 둘의 로맨스는 진부하게 흘러가다 맥없이 종결된다. 허무하다.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등장인물의 존재적 성격에 자연스럽게 주목하게 된다. 등장인물이 창조자인 작가의 절대적 손길을 벗어나는가 하면 철저히 작가의 기호에 의해 움직이기도 한다. 어떤 인물은 사유와 언어에 짓눌리기까지 한다. 인물이 소설의 화자로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중추적 존재임을 감안할 때 인격과 개성을 가진 힘있는 인물이 추동하는 소설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눈물은 힘이 세다』의 인물들은 기존의 통속서사에 짜맞혀진 하나같이 몰개성하고 무인격적인 밋밋한 존재들이다. 이 소설이 매력없이 읽히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이 정도의 이야기로 제목 전면에 '눈물'이라는 감성적 대표 언어를 배치한 것이 못내 안쓰럽다. 게다가 흔한 소재와 통속서사를 이 정도밖에 끌어내지 못할까 하는 아쉬움은 매우 크다. 소설은 수필과 다르다. 수필이 경험과 고백의 언어라면 소설은 작가가 사유하는 모든 우주의 총체이다. 상상력인 것이다. 경험이 이성보다 강하고 언어보다 진실하다고 말했던 소설 속 작가의 외침을 조금 수정해주고 싶다. 상상력이 경험보다 강하고 언어를 압도한다는 것을. 

  이 소설에 대해 "탁마한 언어들은 독자들의 영혼을 세척하는 데도 탁월한 효과를 보이겠지만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로도 손색이 없으리라"며 유난을 떠는 소설가 이외수의 추천사가 오버스럽다. 꽤 매력적인 제목을 달고 있음에도 제목 만큼의 포스를 독자에게 제공하지 못한다. 이미 우리는 안다. 눈물이 얼마나 큰 힘을 갖고 있는지를. 이미 아는 사실에 대한 언어적 증명은 잘 쓰는 수밖에 없다. 눈물이 힘이 센 만큼 잘 쓴 텍스트 또한 힘이 세기 때문이다. 세계의 모든 언어와 문학은 그랬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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