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Q84 2 - 7月-9月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하루키의 귀환 #

  하루키가 돌아왔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대한 분량의 장편소설로 일본열도를 흥분시키고 있다. 그의 신간 『1Q84』의 인기가 장난이 아니다. 출간 당일에만 68만 부 판매, 발매 10일 만에 100만 부 판매, 3개월 만에 2009년 일본 전체 도서 판매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일본에서의 경이적인 판매부수는 국내에서도 그대로 전도되고 있다. 각 서점의 소설 및 전체 서적 베스트셀러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국인들의 하루키 사랑은 여전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하루키를 찾게끔 만드는가. 왜 하루키에 열광하는가. 그의 신작 장편소설 『1Q84』는 이러한 하루키에 대한 질문과 해답을 동시에 제시한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명하다. 그는 쉽게 쓴다. 그리고 재미있게 쓴다. 쉽고 재미있는 카테고리 안에서 하루키적 요소들은 역동하고 조화한다. 그럼으로써 독자와 친근하게 호흡한다. 혹자는 이러한 하루키 문학의 친화력을 '대중'이라는 비판논거로 풀이한다. 하지만 이는 선후가 잘못된 해석이다. 대중작가이기 때문에 그의 문학이 조명받는 것이 아니라 그의 문학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에 대중이 환호하는 것이다. 문학과 문학인을 평가할 때 대중이라는 단어만큼 불편하고 부적절한 것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분명 뛰어난 소설가다. 『1Q84』는 하루키 특유의 사유 우주와 문학 세계가 집대성된, 그의 천재적 작가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낸 명품 텍스트다.


# 『1Q84』의 배경 #

  굉장한 분량이다. 1,300페이지가 넘는 거대 서사에 눈과 머리와 가슴을 맡긴지 10일 만에 완독을 마무리했다. 본래 책을 느리게 읽지만 소설은 더 그러하다. 게다가 하루키의 소설은 최대한 느리게 읽는다. 하루키가 그려낸 현실과 초현실의 아이러니한 스케치, 뒷부분을 알 수 없는 숨막히는 이야기 전개, 등장인물들의 기막힌 매력, 간결한 문체와 적절한 관념성 등은 하루키 문학이 갖는 강점들이다. 『1Q84』 또한 하루키 소설의 유전자를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보다 광대해졌고 더욱 확장되었다는 점이다. 즉 하루키는 이 소설을 통해 소설가로서의 폭과 깊이의 진화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의 구성이 특이하다. 하루키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두개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홀수장은 아오마메라는 서른살 여자의 이야기가, 짝수장은 덴고라는 동년배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두개의 이야기는 각각 독립된 것처럼 평행선을 달리다가 뒷부분으로 갈수록 종속되며 엮여진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그들의 나이 10살 때의 어느 겨울날에 서로의 손을 잠깐 잡는 것으로 둘 사이의 운명성을 개시 한다. 여기서 두 인물의 '손잡음'의 차이가 있다. 아오마메는 손을 '잡는' 능동적 주체인 반면 덴고는 손을 '잡히는' 수동적 입장에 있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잠깐 손을 잡은 것이 전부인 그들의 첫 '결합'은 두 사람이 서로를 향해 찾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적 방향'이라는 소설의 본류를 태동시킨다. 


# 하루키의 세계관 #

  『1Q84』는 출간 전부터 옴진리교라는 사회적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일본의 현실사회에 정면으로 부딪혀보고자 하는 하루키의 작가적인 기백이 회자되며 부각된 소설이다. 하지만 이는 이 소설의 배경, 즉 외연에 한한 부분이다. 하루키는 결코 사회를 말하고 있지 않다. 이 소설은 철저히 개인의 영역, 그것도 '사랑'의 힘을 역설한다. 세계가 변한다 해도 '나'는 변하지 않으며 그 진리를 자각하는 데서 진정한 사랑의 에너지가 분출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그가 그의 소설에서 일관되게 강조해온 세계관이기도 하다. 

  하루키는 항상 그랬다. 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왔다. 그가 자신의 작품에서 일관되게 강조한 사랑은 '본질'로서의 사랑이다. 하루키는 '지고지순順'이나 '일편단심心'을 강조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의 방법이나 색상의 영역이다. 본질로서의 사랑은 주체와 객체를 동일한 실존 세계에 묶어두지 않음으로써 그 의미를 집대성한다. 태생성 안에 절대적으로 내재된 근본 사랑의 본체는 인간이 기껏 인지하는 3차원의 시공간을 초월한다. 즉 '나'의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너'의 실존이 '나'의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전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1Q84』에서 전하는, 아니 하루키의 소설 전반에 걸쳐 흐르는 하루키적 사랑의 근본적 의미이다.

  소설에서 덴고를 향한 아오마메의 사랑이 그렇다. 동시에 아오마메에 대한 덴고의 사랑도 그렇다. 자신이 죽어야만 덴고가 살 수 있었기 때문에 아오마메는 죽어야만 했다. 덴고도 다르지 않다. 아버지의 병상 위에 '공기 번데기'라는 판타지로 부활한 10살 무렵의 아오마메의 형상은 덴고의 사랑을 더욱 분명하고 명징케 한다. 이미 이 세계에서 사라진 아오마메의 존재를 갈구한다. 이러한 아오마메를 향한 덴고의 방향성은 이 소설의 연장선상에까지 확장된다. 하루키가 마저 또는 의도적으로 그리지 않은, 하지만 독자에게 다의적 해석으로 양보한 사랑의 완전성을 멀티 엔딩의 형태로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의도는 결국 속편을 암시한 것일 수 있다. 벌써부터 3편에 대한 목소리가 적잖이 들리는 것 같다. 『태옆감는새』의 답습이 진행될 지 진지하게 지켜볼 일이다.


  1권은 정말 쉼없이 읽힌다. 하루키는 '자아, 종교, 사랑, 철학, 인간, 현실, 상실, 고독' 등 다양한 세계와 우주를 그의 간결한 문장 위에 올려놓는다. 흡입력 있는 서사는 독자를 끊임없이 빨아들이며 숨쉴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2권의 가독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1권이 서사의 응집력을 단단히 하여 이야기 자체만으로 독자를 흡수한다면 2권은 아오마메와 덴고 사이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관념화하고 상징화한다. 두 인물의 사랑을 통찰하고 조정하는 관념적 문장들이 2권 곳곳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렇기에 2권은 1권보다 느린 속도를 요구한다. 다분히 다의적 해석을 독자에게 요구하는 하루키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소설에서 '1984'의 세계인지 '1Q84'의 세계인지는 하늘에 떠 있는 달의 개수로 판명된다. 아오마메와 덴고는 각자의 이유와 사건을 통해 두 개의 달이 하늘에 떠 있는 '1Q84'의 세계를 살아간다. 신비로움을 자아내는 '두 개의 달'은 소설 속에서 수없이 반복 등장되면서 실제의 현실(1984)과 대비를 이룬다. 하지만 그 세계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 안에서 생동하는 아오마메와 덴고는 분명한 현실을 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계가 아닌 개인, 즉 '나'의 좌표다. 달이 한 개밖에 없건, 두 개가 있건 세 개가 있건, 결국 덴고(아오마메)라는 인간은 단 한 사람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의 말미 덴고가 아버지의 병상 앞에서 고백하는 자아에 대한 주체적 인식은 결국 문제의 본질이 외부세계가 아닌 나 자신 안에 있다는 것을 교훈한다. 세계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인 것이다. 어디에 있더라도 나는 나일 뿐이다. 나의 본질과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고유의 문제를 안고 있고 고유의 자질을 가진 한 명의 똑같은 인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포인트는 달에 있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고 포효하는 덴고의 모습에서 하루키의 판타지는 현실적 메시지로 환원된다.


# 『1Q84』의 매력 #

  하루키는 매력적인 소설기법과 다양한 소재를 통해 뛰어난 재미를 선사한다. 소설에서 그려진 두개의, 아니 그 이상의 세계들은 전부 애매모호하다. 하루키는 현실과 비현실의 차이를 모호하게 처리함으로써 '나'의 존재가 실재인지 허상인지 실존 근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설에서 달이 한 개 떠 있는 1984년의 현실성과 '분명하게' 두 개 떠 있는 '1Q84'라는 비현실적 현실성을 가름하는 객관은 명확하지가 않다. 물론 다의적 해석의 의도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결국 하루키의 이러한 의도는 그의 전작들을 곱씹게 하는 동시에 별도의 문학적 획을 긋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신비스럽고 입체적인 소설작법 또한 인상적이다. 후카에리가 말하고 아자미가 받아쓰며 덴고가 리라이팅하는 「공기 번데기」 는 『1Q84』 속 액자소설로서 특수한 역할을 지닌다. 또한 인물이 소설 속 소설로 침투하기도 하고 다른 인물 속으로 들어가기까지 한다. '1Q84'로 향하는 입구는 있되 출구는 없는 일방통행식 초대, 엄연한 자연 환경인 하나의 달 외의 또 하나의 달의 존재, 현실의 '1984'와 대비되는 또 다른 현실세계 '1Q84'의 명칭 변경 등은 소설가로서의 하루키의 재치와 아이디어를 다분히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소설들을 읽다보면 몇몇 소재들의 교집함을 목도하게 되는데 『1Q84』에서도 그 경향은 두드러진다. 독자는 하루키 소설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코드들─고양이, 입구와 출구, 성기, 도서관, 상실, 세계, 쥐, 분신─을 만난다. 하루키가 자주 사용하는 이러한 조각들은 그의 문학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되는 것들이다. 많은 독자들이 『1Q84』 속에서 『상실의 시대』를 읽고 『해변의 카프카』를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번 읽을 때마다 묘한 기시감이 반드시 동반되는 게 하루키 소설의 명징한 특징이다.

  하루키의 소설들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1Q84』를 읽는 가장 큰 흥미는 주인공의 기막힌 매력에 있다. 이 소설의 매력중 8할은 두 주인공의 매력이다. 책을 읽는 내내 아오마메와 덴고의 매력에 흠취했다. 그 매력은 다른 어떤 소설 속 주인공들의 그것보다 농밀하고 압도적이었다. 나에게 『1Q84』를 여는 것은 아오마메와 덴고를 만나는 순간이었고 닫는 것은 그들과 이별하는 순간이었다. 아오마메는 내 속에서 숨쉬었고 덴고는 내 가슴을 두근거렸다. 나도 모르게 방 창문을 열고 달의 개수를 확인했다. 그리고 어느덧 『1Q84』 안에 들어가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목도했다. 그랬다. 나는 하루키에 의해 자연스럽게 소설 안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바로 인물을 창조해내는 하루키의 힘이다.


# 근대문학의 종언과 하루키의 위치 #

  일본 문단은 현재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태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가라타니 고진이나 가와니시 마사아키 등 일본 내 저명한 평론가들은 일본소설이 종내 마침표를 찍었다고 단언한다. 그 마침표의 좌표에 무라카미 하루키가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구름』 이후 120년 동안 일본문학은 진보했고 발전해왔다. 일본소설은 그들의 역사와 함께 소재를 공유해왔던 '나(我), 집(家), 성(性), 신(神)'을 모두 관통했고 조명했다. 하나의 소설사에서 나올 수 있는 훌륭한 작품들이 모두 나왔다고 할 만큼 풍성했다. 이제는 예전의 소설보다 더욱 훌륭한 소설을 써야만 하는 의무감이 일본 문단을 압박하고 있다. 바로 그 시종점에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소설가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하루키적 마침표의 디테일은 무엇일까.

  1968년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가와바탸 야스나리는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주창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러 오에 겐자부로가 노벨문학상 수상식에서 말했던 것은 '애매한 일본의 나'였다. 야스나리가 '아름다운 일본의 나'를 외쳤을 때 '아름다운 일본'과 '나'는 종언을 맞이하고 있었다. 겐자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소설이 '나'를 규명했을 때 일본인 안에서 명확한 '나'가 사라지고 있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일본 근대문학의 종언의 마침표에 해당한다면 그는 과연 무엇으로써 일본과 일본인 사이의 결락을 연결지을까. 하루키 소설이 끊임없이 읽힐 수밖에 없는 보다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너무 잘 쓴 소설 『1Q84』 #

  서평의 말미에 도착했다. 내가 일천한 분석으로 『1Q84』와 하루키에 대해 찬연한 박수를 보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너무 잘 썼기 때문이다. 『1Q84』는 정말 잘 쓴 소설이다. 이전 작품을 전부 끌어안으면서도 확연한 한 획을 긋는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의 결정판, 이라는 수식어구가 전혀 아깝지 않다. 명품 텍스트는 명품 작가를 통해 창조된다. 하루키는 명품 소설가다. 소설 『1Q84』는 하루키의 천재성을 충분하고도 적확하게 증명하고 있는 최신버전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