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 뜨거운 기억, 6월민주항쟁
최규석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가 좋을 때가 있다. 본래 만화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기존의 책들에 지칠 때 간혹 읽는다. 만화의 장점은 간명한 메시지를 빠르게 전달한다는 점이다. 문자로 표현할 수 없는 만화만의 맛깔난 매력은 만화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갖는 교집합일 것이다. 내가 만화를 간혹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화의 강점은 여러곳에서 발견된다. 한 예로 무겁고 교육적인 소재를 청소년들에게 부드럽고 평이하게 전할 수 있는 힘을 가졌을 때가 그렇다. 만화가 폭력이나 연애, 스포츠에 소재를 한정시킬 필요는 없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만화는 말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무거움과 만화와의 만남을 좋아한다. 그 만남의 연장에서 나는 간혹 만화와 만난다.

  창비에서 출간된 최규석의 만화 『100도씨』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격동적인 시기를 그렸다. 인터넷에서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은 만화를 단행본으로 출간한 버전이다. 박종철 고문치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으로 대변되는 1987년 6월 항쟁의 숭고한 역사를 만화가 최규석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6월 항쟁의 시대성과 가치를 적절한 유머와 감동으로 담아내 녹록지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주인공 영호는 운동권에 대해 자못 비판적인 소년이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로부터 운동권은 곧 빨갱이요, 데모는 곧 죄악이라는 철저한 사상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한 후 진실을 목도한다.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이 얼마나 호도된 거짓이었는지를. 잘못 알았던 거짓 사실에 대한 배신감은 한 사람을 더욱 극적인 대척점에 서게 한다. 그는 싸운다. 끓는다. 역동한다. 거짓된 역사의 현장 앞에서 그는 투쟁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영호는 그 시절을 관통해야만 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의 원형이다. 정부와 언론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았던가. 80년 광주를 폭도의 현장이라 했고 김대중을 빨갱이라 했다. 평화의댐을 건설해 북한의 물테러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들의 저금통이 뜯겼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불순분자로 둔갑되었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갑작스럽게 입영통지서를 받고 입대했다. 그때 그 시절, 거짓 현실에 대한 올바른 인지판단능력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 영호는 그 시절 '나'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제목처럼 최규석의 『100도씨』는 뜨겁다. 한 청년의 깨달음을 통해 87년 6월의 현장을 만화의 형식에서 가볍지 않게 담아낸 점이 돋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겪었지만 점점 잊혀져 가는,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숭고한 역사의 현장을 『100도씨』는 생명력 있게 그리고 있다. 뒷부분의 부록 <그래서 어쩌자고?>는 15년 전의 당위와 가치가 현재 이 순간에도 살아 숨셔야 한다고 부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가볍지 않은 고찰들이 잘 조명된 수준있는 끝맺음이다. 

  청소년에게 이 만화가 교육교재로 사용된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만화라는 형식이기에 더욱 부드럽고 재미있게 읽힐 것으로 보인다. 자유라는 당위는 시대와 문화에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쟁취해야 할 가장 우선적 선善이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떳떳하게 정의를 말할 수 있고 떳떳하게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오직 자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15년 전 선배들이 목숨을 걸고서라도 쟁취할 수밖에 없었던 자유라는 고결한 가치를 우리는 후손들에게 훼손없이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최규석의 만화 『100도씨』가 그 숭고한 바톤터치의 도구로 작지만 힘있게 사용되기를 기대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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