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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구재 시사회
최승환 지음 / 낮에뜨는달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 스포일러 없음. 안심하고 읽어도 되는 서평임.
학창시절 국어 과목에서 문학의 두 가지 기능에 대해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희적 기능과 교훈적 기능이 그것이다. 문학은 인간에게 유희를 또는 교훈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두가지 견해는 항상 공존해 왔다. 전자는 전통적인 문학의 가장 주요한 기능으로 인식되어온 것으로서 문학 본연의 심미성에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독자에게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견해이다. 반면 후자는 문학은 독자에게 도덕적 교훈을 주거나 인생의 진실을 제시함으로써 삶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우고 나아가 바람직한 삶의 방향을 찾는 데 봉사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역사적으로 두 견해는 대립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문학의 통합적 기능을 지지한다. 유희 또는 교훈만을 강조할 때 문학적 가치는 하향화된다. 진정한 문학적 감동은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진리를 가르칠 때 발생한다. 호라티우스는 말했다. 시인의 소원은 가르치는 일, 또는 즐거움을 주는 일, 또는 둘을 합친 일이라는 것을. 문학의 양면적 효용성에 대한 지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문학을 좋아한다. 여기서 '재미'라 함은 철저한 내 주관적 기호에 기준한다. 내 재미가 타자의 그것과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그 '재미'는 '가벼움'과는 차이가 있다. 가볍다는 단어만큼 문학과 부조화스러운 것은 없다. 문학은 태생적으로 무거움을 내재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장중莊重하다. 본래 그렇다. 문학이 어찌 가벼울 수 있는가. 그것은 읽는이가 가볍게 느낄 뿐. 역시 나는 문학 예찬론자다.
소설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진다. 다시 한 번 고백한다. 나는 재미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또한 감동이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물론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춘 소설을 좋아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렇기에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갖춘 소설을 만나면 흥분된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읽는다. 몰입도는 최상으로 올라간다. 거기다 문학적 깊이까지 갖춘 작품이라면 더더욱.
최승환의 장편소설 『사십구재시사회』를 만났다. 이 소설은 3년 전에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던 작품이다. 출판사의 사정에 의해 갑작스레 절판된 이 소설은 몇 년이 지나 작가의 필명이 아닌 실명으로 다시 출간된다. "조심하세요, 거대한 감동이 당신의 심장과 충돌합니다"라는 자신감 있는 홍보문구를 표지 전면에 배치한 『사십구재시사회』는 두 남녀의 강렬하고도 감동적인 사랑의 서사를 담은 로맨스 소설이다.
이 소설에 대해 나는 뛰어난 재미와 깊은 감동, 그리고 훌륭한 문학적 가치까지 갖춘 작품이라고 박수를 보내지 못한다. 한 소설을 평가할 때 '문학적'이라는 예찬은 함부로 붙이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평評은 객관과 주관을 동시에 견지해야 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나를 충분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인 것만큼은 사실이다. 흥미있는 소재와 탄탄한 구성, 잘 짜여진 서사와 속도감 있는 전개, 생각지 못한 반전과 깔끔한 마무리 등은 이 소설이 꽤 재미있고 감동적인 텍스트라는 점을 입증한다. 잘 다듬어진 재미있는 수작, 이 소설에 대한 내 반응의 가장 적확한 표현이리라.
헬스장에서 우연으로 처음 만나 사랑을 이뤄가는 서준과 다은의 로맨스가 이야기의 본류本流다. 서로에게 한 눈에 반한 두 사람은 헬스장 계단 중간에 있는 둥그란 창문 앞 화분을 통해 쪽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워나간다. 하지만 서준과 다은의 사랑이 농밀해져감과 동시에 점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진다. 서준의 과거 비밀이 점점 증폭되면서 이야기 또한 새로운 양상으로 치닫는다. 작가가 만들어낸 흡입력 있는 서사는 지루함 없이 한달음에 이야기의 막장을 독자로부터 확인시키게 한다.
이 소설이 남다른 감동을 선사한 데에는 뒷부분 독자의 뒤통수를 후려치는 강력한 반전에 있다. 전혀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 구도의 전복은 충격과 당황을 넘어 감동코드에까지 닿아 있다. 이야기 전체를 뒤엎는 반전이 독자를 놀라게 하는 기계적인 역할 이상으로 감동의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소설 속 두 남녀의 애절한 로맨스는 반전이 있기 전과 후의 현격한 차이로 독자에게 수용된다. 만약 반전이 없었다면 이 소설은 진부한 로맨스 소설의 책더미에 또 한 권을 보태는 수준의 텍스트였을 것이다. 작가가 설정한 강력한 반전은 이 소설의 주제인 '사랑'의 테마를 더욱 농밀하게 집대성하는 핵심적 장치가 되는 것이다.
책을 읽기 전 소설의 제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의문했다. '사십구재'라는 불교식 제사 용어와 '시사회'라는 단어 사이의 상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조합이 어떤 함의를 갖는지 거듭 사유했다. 제목에 담긴 내밀한 의미는 결국 이야기의 종지부에서 실타래가 풀린다. 거대한 반전이 지나간 후 독자들은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올 수밖에 없었는지 소설의 제목 '사십구재 시사회'의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게 된다.
작가후기에서 작가는 먼저 읽은 독자들에게 스포일러는 건드리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아직 읽지 않은 독자에 대한 배려로 이해할 만하다. 동시에 이 소설이 극적 반전에 얼마나 기대고 있는지 작가 자신이 인정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영화 <식스센스>와 <올드보이>의 예를 보라. 전부 알고 보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옛 성현의 말을 기억하자. 모르는 게 약이다.
작가는 아마 영화의 제작까지를 염두하고 소설을 집필했을지 모른다. 기존 로맨스 소설의 진부함과는 거리가 먼 독특한 소재, 밀도감 있는 전개, 빠른 서사, 극적 반전, 지속적으로 떠오르는 영상적 스케치 등은 이 소설이 영화로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증한다. 이제 소설이 소설 자체만으로 읽히는 시대는 지났다. 소설이 굳이 순문학 안에 갇혀 있을 필요는 없다. 세계는 넓고 서사는 많다. 재미있는 소설의 '외도'에 뭐라고 할 만큼 한국 독자들의 마음은 그리 좁지 않다.
다시 서평의 서두로 돌아가자.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설이 좋은 소설이다, 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소설 『사십구재 시사회』는 좋은 소설이다. 시간가는줄 모르게 읽히는 참 재미있는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