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한국 문단에서 공지영은 아이러니한 존재다. 대극적인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는 소설가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한국에서 공지영 만큼 많은 독자들과 호흡하는 작가는 없다.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피드백되며, 가장 많이 평가받는 작가이다. 관심의 대상이란 얘기다.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작가임에는 분명한데 아직도 적지 않은 평단과 대중은 그녀에게 시원한 박수를 거부하고 있다.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지영을 비판하는 이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일차적 논거는 두 가지다. 감상적이며 가볍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 2000년대의 한국소설의 위기 가운데 공지영이 쳐올린 공의 높이는 결코 낮지 않다. 여기서 핵심은 바로 그 공높이의 수준을 평가하는 양극화에 있다. 한국소설의 미래인가 과거인가, 다시 말해 한국 독자의 진보인가 퇴행인가의 중요한 기로점에 소설가 공지영의 존재가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자못 진지한 질문으로 서평의 시작을 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녀의 최신 장편소설 『도가니』는 공지영 문학의 현재성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는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의 위기를 2000년대로 한정한다면 공지영은 서사의 가난에서 우리를 구원한다. 그녀의 의식은 현실 고발(『동트는 새벽』), 후일담(『인간에 대한 예의』), 페미니즘(『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삶과 죽음(『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시대와의 화해(『즐거운 나의 집』)을 거쳐 더 넓게 진화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 바로 『도가니』가 있는 것이다.

  서두부터 장황하게 언급한 공지영 문학에 대한 배경 설명은 그녀의 텍스트를 편견과 선입견을 탈피하여 있는 그대로 읽어보자는 내 의지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문학을 위시한 모든 예술적 장르에서의 판단과 비평은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제발 소설가 공지영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비본질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자.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텍스트 바깥은 없다고 했다. 텍스트 밖은 안과 같아서 안팎의 구별이 무의미하다는 얘기다. 공지영 소설을 감상하는 데 인간 공지영의 외연은 접어두자. 소설가 공지영, 그리고 그녀의 텍스트 『도가니』만 보자.

  공지영은 이 소설을 통해 진실과 거짓의 문제를 제기한다. 무진이라는 마을에서 끔찍하게 벌어진 장애아 성폭행 사건과 이를 둘러싼 정의와 비정의의 대결을 진지하면서도 섬세하게 담아냈다. 거짓이 보수화되어 썩은 권력으로 공고해지기 시작하면 그것을 바로잡기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 소설은 개탄스러운 이야기를 통해 충고한다. 처참한 이야기는 인간의 악한 본성과 사회적 이기의 암울함을 혐오스러울 정도로 사실스럽게 관통하고 있다. 

  소설은 주인공 강인호가 기간제교사로 일하기 위해 향하는 무진시의 안개 낀 풍경을 제시하면서 시작된다. 작가는 안개로 뒤덮여 있는 무진시의 적막함과 그곳 대형교회의 주일예배 풍경, 그리고 철길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어느 소년의 죽음을 소설 전면에 단 세 페이지의 짧은 분량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작가가 전면에 배치한 세 군데의 시공간에 동일하게 존재한 것은 '안개'였다. 작가는 소설 곳곳에 안개의 존재성을 부각하며 주기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무진시를 뒤덮고 있는 안개는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지방의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지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과 이를 밝히고자 하는 소수의 진실과 덮으려는 다수의 거짓이 대결하는 구도가 이 소설의 기본 얼개다. 이야기의 절반 가까이가 법정을 배경으로 할 정도로 치열한 대결이 펼쳐진다. 진부할 수도 있는 선악의 대결을 작가는 독자 자신이 마치 법정에 있는 한 명의 분노자인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생명력있게 담아냈다. 공지영의 노련한 감수성은 읽는이의 오감을 자극시키며 온 정신을 처참한 서사에 몰입시킨다.

  소설을 읽어나가며 나는 주인공 강인호라는 인물에 강한 연민을 느꼈다. 한 가족의 가장으로서의 무능력, 자애학원에서 목도한 충격적 진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결단, 쉽지 않은 싸움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는 용기, 대의를 위한 이상과 가족 행복의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간상 등 인간 강인호의 입체성은 이 소설을 읽는 가장 큰 묘미라 할 수 있다. 소설의 마지막, 과연 나는 강인호의 선택에 대해 자신있는 비난을 던질 수 있을까. 작가의 연금술에 의해 또 하나의 강인호가 된 내 자신을 바라보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이야기는 종내 정의의 승리로 종결되지 않는다. 얼핏 보면 악의 보수화로 점철된 거짓의 단합이 승리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정의가 비정의를 오롯하게 제압하지 않는 결말을 보여줌으로써 독자에게 무거운 해석의 의무를 토스하고 있다. 책장을 덮은 후 독자는 강인호가 된다. 또한 서유진이 된다. 그리고 끝내 이기지 못한 처절한 싸움의 결말을 응시하며 이 소설의 간절한 메시지를 우리네 현실성에 대입하게 된다.

  공지영이 제시한 '도가니'는 도덕과 양심의 폐허가 수구화되고 단합되어진 공간을 상징한 것이기도 하고, 인간의 내면 속에 존재하는 악마적 본성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며,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의 암울한 단면에 대한 축소판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분명한 정의가 비정의의 카르텔을 오롯이 재단하는 데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에너지가 지불된다는 현실성의 한계를 소름이 돋도록 재인식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당위와 존재 사이의 괴리는 인간의 현명함과 악마성이라는 모순된 이중성을 이끌어내며 인간 본성에 대한 보다 웅숭깊은 곱씹음을 유도한다.

  참담한 실화를 다루었음에도 차분함을 잃지 않고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공지영의 힘이 놀랍다. 이제 더이상  공지영은 징징대는 이야기만을 만들어내는 감성 과포화 소설가가 아니다. 공지영의 서사와 문장 어느곳에서도 감정 과잉과 가벼움은 찾아볼 수 없다. 뼈아픈 실화를 담담하고 섬세하게 다듬어 유려한 문체로써 독자에게 전달한 냉정함이 돋보인다. 또한 독자 한사람 한사람을 도덕과 상식의 폐허라는 광란의 도가니에 집어넣음으로써 진실과 정의가 재단된 엄연한 실재의 세계를 조망하고 이에 대한 자아의 현재상을 궁구하게 하는 의무감을 각인시킨 작가의 마력에 전율을 느낀다.

  소름이 돋도록 너무나 잘 쓴 소설 『도가니』에 나는 아낌없이 별 다섯 개를 선사한다. 이 소설을 통하여 공지영을 거부했던 이들의 비판논거는 더욱 궁색해질 것이다. 어려운 소재를 냉정하고 담담히 서술한 소설가 공지영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잘 쓴 소설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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