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 (반양장) 공지영이 들려주는 성서 속 인물 이야기
공지영 지음, 조광호 그림 / 오픈하우스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어린이날이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다. 동시에 어른을 위한 날이기도 하다. 나는 매년 돌아오는 어린이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 이유는 정갈하다. 한 시절 동심의 세계에서 거짓과 거리를 두고 오롯한 순수의 삶을 살았던 때를 기억해보기 위함이다. 나에게도 그 시절이 있었는가. 나도 순수할 때가 있었는가. 그 시절을 사유하며 세상의 온갖 찌든 때에 물든 내 서른살의 자화상을 목도한다.

  어린이날에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유명한 일본 게임기기, 옷과 신발과 장난감 등. 어린이들은 자신이 갖고 누리고 싶은 것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어린이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어린이를 위한 수많은 선물들 중에 '책'이라는 것은 과연 인기가 있을까. 책을 통해 지혜를 얻고, 꿈과 상상력을 키우며, 다양성을 학습할 수 있다면 한 권의 책은 한 어린아이의 인생에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린이들이 읽어볼 만한 매우 좋은 책이 출간됐다. 우리시대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공지영과 그리스도교의 경전 성서가 만났다. '공지영이 들려주는 성서 속 인물이야기 시리즈'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포근하고 교훈적인 문체로 재구성한 동화다. 나는 시리즈의 첫 편 『천사』를 손에 들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 높은 텍스트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과 한계,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웅숭깊게 담았다. 구약은 메시야가 오기 전까지의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 사도들의 가르침과 복음 전파 등을 다루고 있다. 우주와 인간의 총체성을 충분하고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기에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불멸의 고전이 된 것이리라.

  첫 시리즈 『천사』는 제목 그대로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존재했던 천사들의 신비한 이야기를 들여준다. 작가는 루시엘,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의 대천사 4명을 전면에 배치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보기에 전혀 낯설지 않게 읽혀진다. 성경의 핵심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지영이 전하는 천사들의 이야기는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대천사였던 루시퍼의 타락은 하나님 한 분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의 구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징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천사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점을 주지한다면 피조물로서의 본질과 의미를 자아 스스로 궁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인기와 명성의 허울에 젖어 하나님을 배반했던 루시퍼의 요란한 삶은 심히 안쓰럽고 처량해 보인다. 하지만 내 자신의 모습 속에도 작은 루시퍼의 형상이 투영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리라. 어쩌면 '겸손'과 '교만'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둘 다 주어와 서술어는 동일하다. 내가 무언가를 자랑하는 것이다. 단지 목적어가 다를 뿐이다. '신' 아니면 '나'.

  또 하나의 메시지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울림이다. 천사 중에 가장 작은 존재였던 미니멜은 자신의 왜소함과 초라함에 상처를 받아 우주에서 사라지고 싶어한다. 이러한 미니멜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은 직접 찾아가신다. 그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는다. 다른 존재와의 '차이'가 곧 아름다움의 본질이라는 것을 미니멜에게 알려준다. 모든 아름다움은 그것이 다 다른 데서 오는 것이라며 미니멜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따뜻하게 읽힌다. 이는 내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며 위안을 준다. 세상에 나는 단 하나의 존재이다. 우주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 공지영은 자신의 동화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읽히기를 소원한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 책의 정체성을 어떤 종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세상을 움직이는 데 기본이 된 인류의 문화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지는 이야기 속 용어와 문체에 그대로 드러난다. 종교적 느낌의 '하나님'이라는 호칭보다 대중적이고 친숙한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카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번역한 '공동 번역' 중 카톨릭용을 참고했다. 그만큼 많은 어린이들이 부담없이 읽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보고 느끼며 자라는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순간성 놀이 몇 시간의 투자보다 깊은 울림을 던져주는 책 한 권의 경험이 더욱 소중한 나이가 있다. 책은 소중하다. 책의 힘은 강력하다. 러셀의 말처럼 책 속에는 '지식'과 '사랑'과 '연민'이 있다. 이 땅의 어린이들이 책을 벗삼아 지혜가 깊고 사랑이 풍성하며 연민을 지닌 훌륭한 동량으로 자라나길 기도한다. 그 희망을 꿈꾸는 수많은 책더미에 공지영의 성서 동화가 작게나마 보태지길 기대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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