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
김용희 지음 / 생각의나무 / 2009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을 쓸 때 가장 큰 고민이 있다. 개인적 기준에서 별 한 개 주기도 아까운 텍스트를 만날 때다. 이럴 때 리뷰어의 번민은 크다. 저자나 작가가 응당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작품일진대, 독자의 주관적 평가라는 이유로 텍스트를 향한 조소와 비판을 함부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뇌가 든다. 하지만 이러한 고민은 종국 냉정함으로 회귀된다. 어차피 서평은 글쓰는 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쓰여지는 게 아니던가. 서평으로 쓰여진 글에 글쓴이의 주관적 판단이 배제된 채 일방적인 긍정 문구만 있다면 간접광고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다시 냉철한 주관으로 돌아가 텍스트를 씹는다.

  비평의 역할은 소중하다. 비평은 비평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피드백 시스템(Feedback System)이다. 작품에서 잘 된 부분을 부각하여 격려하고 미흡한 부분을 비판하여 후에 보다 나은 창작물을 만들어달라는 요구와 기대가 비평 속에 오롯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평론가 해럴드 블룸의 글을 즐겨 읽는다. 하지만 그의 모든 논지가 내 신념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평론만큼 '주관'의 만개가 전제된 곳은 없다. 이는 어느 장르에서나 마찬가지다. 책도 당연하다.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의 손에 들어온 이상 그 책은 독자의 것이다. 작가는 없다. 독자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천착을 매우 중요한 포인트로 삼는다. 문학은 결국 인간 성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인간의 구체성을 잘 그려낸 소설은 분명 좋은 소설이다. 인간의 총체성과 사상성은 내가 소설을, 더 나아가 문학을 읽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형편없는 소설들이 있다. 나는 소설 같지 않은 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소설의 형태나 구성 등의 외연적 뼈대와는 거리가 있는 얘기다. 흔히 문학의 기능으로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되는 '유희'와 '교훈'의 교과서적 문구를 인용치 않더라도 소설은 독자에게 무언가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최소한의 '울림'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의무다. 최저점의 무게감이 결락된 소설들로 인해 종이는 낭비되고 독자는 불쾌하다. 

  문학평론가 김용희 씨의 첫 장편소설 『란제리 소녀시대』는 밋밋하고 별 볼 일 없는 텍스트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 어떤 재미와 감동도 없다. 더욱이 공감조차도 없다. 70년대에서 80년대로 넘어가는 한국 내의 굴곡진 시대를 담고 있지만 시대성은 온데간데 없고 극도의 가벼운 상황들만 연이어 펼쳐진다. 한 시대를 담아내는 수고로움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1970년대를 2009년의 방법과 색채로 포장해놓았을 뿐이다.

  이 소설은 분명 성장소설이다. 작가는 한 여인의 사춘기를 솔직하고 발랄하게 담아내려고 한 듯하다. 1인칭주인공시점의 화자 정희의 학창시절이 서사의 본류를 이룬다. 가정과 학교에서의 일, 친구들과 남자아이들과의 관계, 고3 수험생 시절과 대학 입시 등이 소설의 주된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굴곡진 시대적 상황에 대한 최소한의 진정성이나 그 시대를 거쳐야 했던 사춘기 소녀의 원형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마치 작가의 과거 일기를 현재의 문체와 방식으로 덧칠한 듯하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어설픈 성장소설과 싸구려 칙릿을 짬뽕해놓은 수준이다.

  각 장이 시작될 때마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 수 있는 짤막한 문장 몇 개가 굵은 글씨체로 삽입되어 있다. 작가가 왜 이와 같은 장치를 해놓았는지 의문스럽다. 소설의 내용이나 얼개 등 그 어떤 것과도 매치되지 않는 불필요한 요소다. 어차피 이 소설은 시대적 배경인 1979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체와 분위기를 담고 있지 않은가. 시대의 구체성을 짤막하게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로 보기에는 너무나 부자연스럽고 부적합하다.

  이런류의 소설을 논거로 하여 문학의 가치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다소 민망스럽다. 중요한 것은 소설의 역할이다. 가벼워도 좋고 밋밋해도 좋다. 하지만 소설은 인간과 시대에 대해 매순간 고민해야 한다. 최소한의 의미와 가치를 궁구해야 한다. 이것이 결락된 소설은 한낱 종이 쓰레기에 불과하다. 독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작가는 작가후기에서 수상한 소녀들의 사소한 사생활을 밝히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웃기면서 슬프고 유쾌하면서도 쓸쓸한 이야기. 때로 질투거나 동지애, 자유거나 혹은 솔직함에 대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가의 이러한 의도는 소설에서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수상한 소녀들의 사소한 사생활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자신의 일기처럼 묵묵히 풀어내는 한 소녀의 의미없는 아우성만 요란하다. 한 시대를 소녀로 살아야 했던 그녀들의 원형도 없다. '란제리 소녀시대'는 소설 어느곳에도 없다. 작가의 내공 부족만 있을 뿐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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