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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 (반양장) ㅣ 신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다소 기독교적 관점에서 썼음.
새롭지 않다. 재미는 그저 그렇다. 핍진성이 떨어진다. 상상력의 한계가 보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 『신』은 내게 그리 대단한 재미를 주지 못했다. 기존의 베르나르표 서사가 뛰어난 상상력과 흥미있는 이야기 전개로 독자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는 점에서 금번 신작에 대한 기대는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였을 뿐이다. 전작 『파피용』보다도 못한 미지근한 몰입도로 흥미없게 두 권을 소화했다.
『신』은 제목 그대로 '신神'에 대한 이야기다. 집필기간이 9년에 이를 만큼 베르나르 자신의 에너지를 집약하여 쏟아부은 작품이다. 그중 1부인 '우리는 신'이 금번에 번역 출간된 것이다. 총 두 권으로 구성된 1부는 144명의 신 후보생들이 본래의 지구를 본 떠 만든 '18호 지구'를 대상으로 신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렸다. 전작 『타나토노트』와 『천사들의 제국』에서 각기 인간과 천사로 주인공 역할을 한 미카엘 팽송이 금번 작품에선 작중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추동한다.
소설의 구성이 이채롭다. 미카엘 팽송을 위시하여 144명이 펼치는 신이 되기 위한 이야기와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백과사전'이라는 제목의 이야기 보완 테마가 교차된다. 본래 인간이었다가 천사가 된 미카엘 팽송. 이젠 신이 되기 위한 과정을 밟는다. 하지만 인간이었던 때와 같이 시공간의 구속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아에덴이라는 섬에서 신을 향한 학습과 모험을 경험한다 . 여러 선배 신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신의 비밀을 향해 나아간다.
미카엘 팽송과 함께 각기 다양한 인물들이 신의 후보생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미카엘의 동기생으로 매우 흥미있는 인물들을 설정했다. 아나키즘의 시조격인 프루동, 영화배우 시몬 시뇨레, 비행기구 발명가 클레망 아데르,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 물리학자 마리 퀴리, 스파이로 활약했던 비운의 댄서 마타 하리 등 수없이 많은 유명인사들을 포진시켰다. 144명의 신 후보생들은 각기 다양한 성품과 철학으로 자기 앞에 주어진 18호 지구를 경영한다. 각 테스트가 끝날 때마다 탈락되는 후보생들이 생기면서 144명이었던 후보생 숫자는 점점 줄어든다.
마치 흥미있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최저 수준의 핍진성으로 읽는 내내 내 고개는 좌우로 설레설레했다. 나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작가가 그려낸 형편없는 신적 세계를 지적한다. 매작품마다 누구나 생각지 못한 발군의 상상력으로 이야기꾼의 면모를 과시했던 베르나르는 금번 작품에서만큼은 초라한 소재 차용에 그치고 만다. 베르나르가 그린 신의 세계는 전적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 기초했다. 아프로디테, 헤르메스, 크로노스, 아레스 등이 선배 신으로 등장하며 신의 후보생들을 가르친다. 새로울 게 전혀 없는 기존 신화에서의 소재 차용에 불과하며 부족한 부분은 유대교, 기독교, 불교 등의 교리를 조금씩 접목했을 뿐이다. 상상력은 온데간데 없다.
무엇보다 베르나르식 신성神性은 초라함의 극치다. 본래 신은 전지全知와 전능全能에서 인간과 선연히 구별된다. 신은 모르는 게 없고 하지 못하는 게 없다. 그렇기에 '신'임을 증명한다. 하지만 베르나르가 그린 신은 인간의 수준에서 차원만 조금 높였을 뿐이다. 상식적으로 신의 차원은 인간의 과학에서 불가해하다. 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르나르는 신이 아닌 인간의 세계를 그렸다. 베르나르가 그린 신들은 결코 신이 아니다. 시공간과 초월, 과학과 의지에 구속된 존재를 어찌 신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그가 그린 신의 세계는 그저 인간 세계의 또 다른 스케치일 뿐이다.
베르나르는 또한 다신교多神敎의 세계를 그렸다. 즉 신은 하나가 아니며 굉장히 많이 존재함을 전제한 것이다. 소설 속에서 이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그 인용 수준이 함량미달이다. 신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명사 <엘로힘>이 단수가 아니라 복수이기 때문에, 다시말해서 하나밖에 없는 신을 복수로 가리킨다는 것은 최초의 유일신 종교가 보여주는 역설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엘로힘>의 의미를 표피적으로 이해한 무지의 소산이다. '엘로힘'의 복수형은 다신의 의미가 결코 아니다.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표현이자, 힘과 탁월성의 존엄이 함의된 것이다. 요컨대 '엘로힘'이 내포한 복수형은 숫적 다수가 아닌 신의 신되심을 더욱 강력하게 드러낸 의미이다. 유대교와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기본 학습조차 결락된 작가의 지식이 씁쓸하다.
신비스럽고 고차원적인 초월의 세계를 보여주지 못한 게 아쉽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필두로 기존의 종교와 전설을 짜집기한 밋밋한 판타지 서사에 흥미는 반감됐고 체력은 지쳤다. 전제적으로 신성의 불가해성을 인정한 후 지엽적으로 신의 절대성을 그렸으면 어땠을까. 보다 높은 차원의, 보다 깊이 있는, 과히 상상키 어려운 신성을 담아냈으면 어땠을까. 신의 창조성, 전지전능함, 피조물과의 관계, 신성의 발현, 인간의 위치, 신적 세계 스케치 등 모든 것이 초라하고 실망적이다. 과히 '신성모독' 수준이다.
시작이 반이라 했다. 총 3부작 중에서 갓 1부만을 읽었을 뿐이다. 하지만 벌써부터 무료하다. 읽기 전 기대는 읽은 후 허탈로 치환됐다. 차후 출간될 2부를 손에 잡을 지 미지수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문학에서 감동과 깊이를 원하진 않는다. 그저 작은 상상력과 재미만 있으면 된다. 책을 읽은 후 남는 건 프랑스어 문장을 매끄럽게 한글화 한 이세욱의 다듬어진 번역밖에 없다. 최소한 내 문학적 취향에선, 그의 전작 『파피용』보다도 상상력이 빈곤하고 재미없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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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