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 - 마음의 길을 잃었다면 아프리카로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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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여행작가 오소희가 있다. 그녀는 여행을 사랑한다. 또한 사람을 사랑한다.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으로 '명소'와 '복닥거림'은 그녀에게 그리 중요한 요소가 아니다. 비본질보다 본질을 보고, 외연보다 내포를 보며, 비인간보다 인간을 보는 뚜렷한 여행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창조해내는 여행수필 속에는 깊은 향기가 배어 있다. '인간'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의 향기가 말이다.

  그렇기에 오소희는 유명하고 화려한 곳보다는 조용하고 사람 냄새 나는 곳을 찾는다. 터키에서는 올림포스에 경도되어 시간이 정지되었다. 라오스에선 욕망이 멈추는 것을 체감했다. 9개월여만에 선보인 그녀의 신간은 어떤 '공간'을 담아냈을까. 그녀의 공식적인 세번째 여행에세이 『하쿠나 마타타 우리 같이 춤출래?』는 '하쿠나 마타타'라는 스와힐리어 문구를 제목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독자의 궁금증에 살포시 귀띔한다. 지구상에서 가장 부족하고 빈곤하며 소외된 공간 '아프리카'의 이야기라는 것을.

  아프리카가 어디인가. 에이즈와 말라리아가 기승을 부리는 비운의 대륙이자 물과 식량이 없어 수없이 많은 어린아이들이 굶어죽는 대륙이 아니던가. 또한 문명사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미개한 문화와 원시적인 생활환경을 갖고 살아가는 대륙이며 인간의 욕망과 인권이 최소한의 분량조차 보장되지 않고 정지된 곳이기도 하다. 신조차도 버린 대륙이라 불리며 인류의 소외와 결핍이 하나의 대륙 안에 집대성된 어둠의 공간 아프리카. 우리의 상식은 아프리카를 척박하고 막막하며 우울한 땅이라 부르고 있다.

  반면 아프리카는 또 어떤 곳인가. 넓은 초원에서 수많은 야생 동식물들이 천국과 같은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땅이자 장엄하고 웅장한 자연 환경으로 인간의 오감을 압도하는 거대한 대륙이 아니던가. 극도의 느긋함과 여유로 '태초적' 인간다움이 서려있는 공간이며 가장 낮아져 있어 더이상 낮아질 수 없기에 높아질 미래를 소원할 수 있는 희망의 땅이기도 하다. 어쩌면 작가 오소희는 아프리카가 그녀에게 선사할 것을 믿기에, 더욱이 그 '선사'가 파생해내는 예기치 못한 '기대'와 '설레임'을 소망하고 있기에 아프리카행 비행기에 올랐던 것이리라.

  책이 꽤 두껍다. 할 말이 많았을 게다. 작가는 장장 500페이지가 넘는 거대한 지면 위에 아프리카를 담아냈다. 아들 중빈과 함께 한 한달여의 여행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떨 때는 배꼽이 빠질 정도의 코믹함으로, 어떨 때는 코끝이 찡할 정도의 감동으로, 어떨 때는 주옥같이 정제된 명문장으로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추동한다.

  책의 구성은 일반 여행수기의 포멧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총 45개의 테마로 구성된 에피소드가 텍스트의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각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텍스트를 수식할 만한 적확한 사진을 실었다. 작가가 직접 디카로 찍은 다양한 사진은 작가 특유의 정갈한 문장과 함께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대륙 아프리카를 잘 소개한다. 탄자니아를 시작으로 우간다를 거쳐 르완다에 이르는 한 달간의 동아프리카 여정을 적절한 템포와 높낮이로써 흥미있게 담아냈다.

  그녀가 담아낸 아프리카는 기쁜 곳이다. 춤추는 곳이며 걱정이 없는 곳이다. 모든 것이 느리고 여유있고 부담없이 흘러간다. 우리에게 '심각한' 것들이 그곳에서는 '대충대충'이라는 미명으로 신비롭게 부드러워진다. 또한 아프리카에서 속도는 '선善'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느린 것이 미덕이 되고 그 수치를 측량하지 않는다. 실존 자체가 행복이 되고, 그 행복의 원초성이 춤추는 이유가 된다. 

  또한 그녀가 담아낸 아프리카는 아픈 곳이다. 가난과 질병이 만들어낸 인간의 거짓과 비굴함이 어린 아이의 순수한 심장마저 왜곡시킨다. 우간다와 르완다의 접경지역 부뇨니의 고아원에서 겪은 '닭 사건'의 충격으로 그녀는 '여행자'에서 '관광객'으로 추락한다. 모든 여행마다 배터리가 방전되고 충전되는 주기가 있기 마련인데, 아프리카의 주기는 유난히 짧기만 하다. 아프리카의 아픈 단면을 목도할 때면 어느새 여행자는 길 잃은 미아가 된다.

   오소희의 발군의 관찰력은 아프리칸의 구체적 면면까지 꼼꼼히 포착한다. 소소하고 다양한 피사체를 잡아내되, '인간'과 '본질'이라는 그녀 특유의 관찰력 브랜드의 속성을 벗어나지 않는다. 아프리칸의 각기 다양한 말과 행동, 표정과 인식 등은 모두 그녀의 탐구 대상이다. 그러나 관찰과 탐구로만 끝나지 않는다. 그녀와 아들 중빈에겐 '느낌'과 '조화'가 있다. 서로의 '다름'으로 상대를 재단하지 않는다. 관계를 맺을 때, 순간, 하나의 소우주를 건설하여 그 우주 속에서 상대와 하나가 된다. 인간에 느끼며 조화하는 열정이 두 모자의 마음속에 오롯이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지금까지 여행이 그들에게 가르쳐준 가장 큰 지혜의 선물이 아닐까.

  에필로그가 자못 인상적이다. 여행의 네 가지 단계를 정리했다. 작가가 언급한 여행의 네 단계는 이렇다. 처음엔 '나'만을 보다가, 나를 떠나 '그곳'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 그 다음, 그곳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것을 나누어 그곳을 더 아릅답게 한다. 하지만 어느 단계의 여행자이든, 아프리카에 가면 평범해진다고 작가는 일갈한다. 아프리카가 시공간의 지엽성으로 조망하기엔 너무 크고 무거운 땅이기에, '지구'라는 가장 큰 공감대로 묶어질 수밖에 없는 역할과 의무를 선사하는 신비한 땅이기에 그럴 것이다. 

  결국 아프리카를 권하는 문장으로 에필로그는 끝맺음된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우리가 같은 행성에 공존하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이 2세들의 미래를 축복하는 '지구인'이라는 공동체적 삶과 사랑에 대한 일깨움에 있었음이리라.

  작가 오소희를, 그녀의 문장을 만난지도 어언 1년하고도 반이 지났다. 참 좋은 '만남'이다. 내가 그녀의 문장을 흠모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깊은 사색에서 우러나온 삶과 우주적 통찰이 멋진 글귀 위에 용솟음치며 나를 정지시키기 때문이다.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게 있다. 그녀의 내공은 여행을 통해 공급받은 경험과 깨달음에 기초한다. 어쩌면 그것이 그녀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동시에 내가 그녀의 여행수기를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백하건대, 그녀의 여행 목적과 내 독서관의 오롯한 부합, 그것이 이 아름다운 만남의 연원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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