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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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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난감하다.

  서평을 쓸 때 반갑지 않은 책들을 간혹 만나곤 한다. 비문학보다 문학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매우 뛰어난 걸작이 그러하고, 아주 조악한 졸작이 그러하며, 이도 저도 아닌 밋밋한 작품이 그러하다. 더욱이 가장 힘든 건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강력한 찬사를 받은 명작임에 불구하고 내 자신이 그들의 평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럴 때 서평 쓰는 자의 번민은 깊게 마련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생각해보면 굳이 나쁠 건 없다. 동일한 책을 읽은 후 나와 다른 느낌과 생각을 갖고 있는 이들로부터 얻는 다양성 획득이라는 가치는 독서라는 우주의 폭과 깊이를 팽창시킨다는 차원에서 반가운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소설에 요구하는 가장 일차적 기능으로 '감동'을 꼽는다. 감동의 발현 방식은 소설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감동적인 소설은 어떤 종류의 감동으로든지 독자의 가슴속 한 켠에 소중히 남아 책읽기에 대한 보람과 희열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감동이 없는 소설은 죽은 소설이며, 문학으로서의 가치를 논하기 어렵다 하겠다. 활자가 눈과 머리를 지나 가슴에 안착될 때에 비로소 '좋은 소설'로서의 최소한의 자격요건이 성립된다고 나는 믿는다.

  이러한 문학의 감동을 위해 활자는 굳이 난해할 필요가 없고, 무게잡을 이유가 없으며, 작가 자신의 나르시시즘에 빠질 필요는 더욱 없다. 어려운 문장이 곧 수준 높은 문학이 아니며, 철학적 문구가 많다고 해서 무게감 있는 활자는 더더욱 아니다. 그저 좋은 문장이 좋은 문학인 것이다. 심원한 척 하면서 뭔가 있는 듯한 기교로만 조합되어진 활자로 인해 독자는 속고 종이는 낭비된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작가로 잘 알려진 소설가 코맥 매카시는 저명한 평론가인 해럴드 블룸으로부터 상찬을 받은 세계적인 작가이다. 묵시록적인 걸작이라 평가받는 그의 대표작 『로드』는 '2007년 퓰리처상 수상', '아마존과 뉴욕 타임스 베스트 1위',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스티븐 킹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 등 다양한 수식어구를 두르고 있는 화제작이다. 더욱이 '미국 현지에서 감히 <성서>에 비견되었던 소설'이라는 책 표지의 강렬한 문구는 기독교의 권위에 도전할 만큼의 강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작가 코맥 매카시는 대재앙으로 파괴된 황폐한 지구를 배경으로 희망을 찾아 걷고 또 걷는 두 부자父子의 이야기를 극도의 건조하고 담담한 문체로 그려냈다. 한밤중에 밤의 한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난 두 부자의 모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서사의 구도와 흐름은 단순하다. 일관되게 음울하다. 마지막 단 세 페이지를 제외한 전 서사는 고통스럽고, 어두우며, 우울하고, 절박하다. 따옴표, 쉼표, 숫자 등의 기호들이 일체 누락된 채 오직 건조한 문장으로만 서사는 조합된다. 작가는 활자가 만들어낼 수 있는 최고치의 어두움으로 인류 최후의 암울함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굳이 언급할 만한 이 소설의 특징은 딱 거기까지다.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고, 내 사유를 비틀어 보다 높은 세계 위로 견인해주지 못했다. 마지막 구원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너무나 지루한 문장을 감내해야 했다. 시종일관 지속되는 심원한 철학적 문장과 암울한 미래상의 스케치는 결과적으로 이 정도 수준의 묵시록을 만드는 데 사용된 '오버'로밖에 인지되지 않는다. 신과 자아에 대한 성찰은 『연금술사』보다 못하고, 인류 미래에 대한 상상력의 흥미 수준은 『파피용』보다 못하며, 인류의 희망과 구원에 대한 질문과 접근방식은 『바리데기』보다 못하고, 암울한 미래상에 대한 묵시록적 그림은 『생존자의 회고록』보다 못하다.

  그들(아버지와 아들)이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목적과 대상에 대해 작가는 일언반구 없이 묵묵하기만 하다. 남쪽으로 길을 따라 계속해서 걷기만 하는 단선적 플롯은 마지막 구원의 빛을 향해 쏠려가는 듯 보인다. 하지만 작가가 제시한 '희망'은 서사 속에서 작은 이야기 전복에 불과하며, 시원한 해답을 주지 못한 채 고통의 또 다른 연장을 의미할 뿐이다. 세계의 시작과 마지막을 명징하게 제시하면서, 인류를 인간이 상상하기 힘든 차원에서 구원하고자 하는 사랑의 맥락으로 쓰여진 <성서>와 비견된다는 이 책의 홍보문구는 코미디와 같다. 이야기의 풍성함, 제시한 질문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문학적 진수에 있어서도 이 책은 <성서>와 비교할 수 없는 저차원이다.

  이 정도의 감동을 얻기 위해 굳이 매카시의 문장을 읽을 필요는 없다. 엇비슷한 주제로 코엘료는 더욱 다양하고 깊이있는 주관적 언론을 선사한다. 이 정도는 정이현의 산문으로도 충분하다. 헤럴드 블룸과 오프라 윈프리가 극찬했다고 해서 내 자신까지 경도될 필요는 없다. 내 돈 주고 직접 산 책이다. 솔직한 평에 대한 권리는 응당 내게 있다. 지루하고, 별 것 없고, 외연적으로 요란하기만 한 활자에 대한 호오는 바로 '내'가 판단하는 것이다. 

  시간이 아까웠다. 정말 별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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