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Second Edition]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다시 읽었다. 작년에 출간된 이 책을 다시 집어든 이유에는 내 나름의 고민과 답답함이 뒤석여 있다. 지난 두 달여간 수도 서울에서 펼쳐지고 있는 촛불집회를 보면서, 출범한 지 불과 세 달밖에 되지 않은 정부가 허우적되는 것을 보면서, 유가·원자재와 물가의 상승, 성장 둔화로 이어지는 스테그플레이션에 직면한 한국 및 세계 경제의 침체를 보면서 작금의 세계 시장을 움직이는 '신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오류와 모순을 곱씹고자 했던 것이리라.

  자본주의는 진화를 거듭해왔다. 사회주의와의 대결에서 승리한 자본주의의 포효는 전세계 모든 국가들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재성에서 그 역사적 인과성을 의심할 수 없다. 지난 백여년 동안 자본주의의 발전은 매우 빠른 속도로 급변했다. 상업 자본주의, 산업 자본주의, 독점 자본주의, 수정 자본주의를 거쳐 현재의 신자유주의로 변천하여 왔다.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에 의해 더욱 강도높게 학습받고 있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헤게모니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에 과연 어느 누가 반기를 들겠는가.

  그렇다면 과연 신자유주의는 절대성을 부여받은 체제인가.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미국 정부와 석학들은 당연히 그렇다고 대답한다. 소위 '시카고 보이스'로 불리우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지식 전도사들은 아무런 의심없이 시장에서의 경쟁 제일주의를 웅변한다. 그들은 시장에서 투명한 경쟁의 극대화야말로 효율성과 합리성을 보증하는 최고의 가치라고 주장한다. 이들에 의해 전도되는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물결은 세계 주류경제학으로 굳어지며 다수의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고 있다. 하지만 정말 신자유주의가 절대선일까.

  이에 대해 장하준 교수는 '아니오'라고 대답한다. 장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들의 경제 개발 내면 속에 신자유주의와 배치되는 정책이 태반이었음을 언급한다. '자유 무역', '외국인 투자', '공기업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 체제의 분자들은 선진국에게만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증거한다. 또한 '지적 재산권', '재정 건전성', '부정부패', '민족성' 등의 관점에서 경제논리를 천착하고 있어 자못 흥미롭다. 요컨대 신자유주의는 경제 개발의 결과였지 과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장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선진국들의 과거 경제 개발 역사의 구체적인 사례와 통계를 통하여 더욱 구체적으로 입증된다. 이미 선진국들은 강력한 보호무역과 외국인 투자 규제, 그리고 국영기업의 활발한 운영을 통하여 선진국에 진입했다. 그리고 이후에 사다리를 걷어찼으며, 선진국이 되고자 하는 개발도상국들에게 개방의 압력을 가하고 있다. WTO, 세계은행, IMF는 이러한 선진국들의 경제 제국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는 세계화의 삼총사이기도 하다. 이러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아이러니한 행태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통찰력있는 목소리는 명료하고, 신랄하며, 풍성하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세계 경제는 유가 폭등과 물가 상승, 성장 침체로 인해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부자가 많아지는 이상으로 극빈층은 더욱 많아지고, 이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의 심각성은 결코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양극화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OECD 30개국 중에서 멕시코와 한국은 양극화 부문에서 최고 수준을 뽐내고 있다. 현재 한국의 '소득 5분위 배분율'을 보라. 매년 증가하는 부자와 극빈자간의 심각한 괴리현상의 실재적 수치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답답하다. 자살율은 OECD 국가 중 단연 1위다. 미칠 노릇이다.

  한국뿐만 아니라 GDP 2만불 내외에 있는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의 사정 또한 답답하기 매한가지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대로라면 철저한 시장주의와 개방으로 탄력을 받아 먹고살기가 더 좋아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왜 2만불에서 3만불로 가는 중진국들의 성장속도는 더디기만 하는가. 그리고 극빈국들의 경제사정은 더욱 힘들어져만 가는가.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교수의 신랄하면서도 명료한 통찰은 이에 대한 명징한 답을 제시한다. 신자유주의는 선진국이 된 이후에 비로소 먹히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말이다. 선진국이 '나쁜 사마리아인'으로 메타포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계속해서 불거지고 있는 쇠고기 사태 또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모순에 궤를 같이 한다. 국가간 자유무역협정(FTA)은 신자유주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GDP 14조 달러를 자랑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미국 시장에 대한 통상국가 한국의 군침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외교협정이라는 것은 엄연히 '주고 받음'을 전제한다. 자동차 관세 2.5%를 내려받기 위해 한국은 너무나 많은 무리수를 두었다. 문제는 농업과 축산업이 아니다. 한미FTA의 핵심 키워드는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이다. 비단 관세만 내리는 게 아니라 미국의 구미에 맞게끔 국내의 법과 제도를 손질하는 데 있는 것이다. 더욱이 투자와 지적재산권 부문의 손실액은 과히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이에 대한 이해없이 무조건적으로 무역량 증대를 위해 한미FTA에 찬성하는 이들을 보면 무식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한미FTA의 위험성을 제대로 응시해야 한다. GDP 1조 달러를 넘지 못하는 인구 5천만의 대한민국이 세계 최대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패권국가 3억의 미국과 맞장을 뜨자는 용기는 가상하지만, 실재적 경제 현실에 있어 매우 불합리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개방 자체는 나쁜 것이 결코 아니지만, 잘못 개방할 경우 나라가 망할 수 있음을 우리는 세계사에서 수없이 봐왔다. 실례로 1996년 김영삼 정부의 꼴불견같은 금융시장 개방으로 인해 불과 1년도 되지 않아 국가를 부도사태로 몰아넣지 않았던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 신자유주의의 폐해와 무서움을 잘 알 법도 한 한국의 위정자들이 또 다시 맹목적으로 성장지상주의와 시장주의에 목숨을 거는 것이 코미디가 아니라 무엇이랴.

  작금의 이명박 정부는 철저한 신자유주의 신봉 정부다. 그들에게 신자유주의는 종교에 가깝다. 대단한 신앙이다. 더욱이 미국의 진돗개를 자처하며 끌려다니는 형국은 개콘 수준이다. 그들이 공약으로 내건 정책들을 보면 오금이 저린다. '의료보험 민영화', '수도사업 민영화', '인터넷 종량제' 등 얘기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정책들이다. 오히려 대운하가 낫다. 그냥 땅 파는 게 낫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능수능란하게 다룰 수 있을 만큼 한국의 경제와 경쟁력은 대단한 수준이 못 된다.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외연의 확대가 아닌 보다 장기적이고 실재적인 국민의 행복과 안녕을 꾀하는 게 올바른 위정자의 모습이 아닐까.

  횡설수설하며 글로 발설한 나의 이러한 요동은 비단 나만의 번민과 답답함은 아닐 것이다. 장하준 교수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명료하게 갈파한다. 신자유주의는 개발도상국과는 맞지 않는 시스템이라는 것을. 이미 선진국이 된,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을 위한 체제라는 것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한국정부의 신자유주의 맹신 정책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선포한다. 미국은 결코 우습게 볼 나라가 아니며, 한국은 그리 대단한 나라가 아니다. 자신감은 제대로 된 현실인식의 전제 하에 발동될 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청와대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책여행 보내고 싶은 심정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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