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 지식인,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장 폴 사르트르는 "다른 사람들이 해방되지 않으면 지식인도 해방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지식인은 시대의 모든 갈등과 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했다. 칼 마르크스도 "지식인의 의무는 세계에 대한 해석을 넘어 '변혁'에 있다"고 피력했다. 만약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사르트르와 마르크스가 역설한 지식인의 의무에 제대로 복무했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나는 한국의 현대사를 구도적인 측면에서 이등분하는 기준으로 '4·19의거'와 '87년 6월항쟁'을 꼽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한국 민주주의사의 핵이라 할 수 있는 두 사건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가 어떠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피플파워'의 승리였다. 1987년 이후 완성된 형식적 민주주의는 20년을 지나오면서 그 안정성과 발전성이 더욱 공고해졌다. 나는 이제 더이상 한국정치가 과거 독재정치로 회귀하지 못할 것임을 확신한다. 성숙한 민주주의 대중으로 거듭난 우리 국민이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87년 체제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안착되면서 우리 사회는 수많은 변화의 물결을 맞이했다. 87년 이전에는 '군사정권'이라는 누구에게나 분명하던 악이 존재했지만, 민주화가 달성된 이후에는 선과 악의 선명한 이분법적 전선이 사라졌다. 이전에 민주주의를 위해 저항했던 지식인들의 실재적인 공공의 적이 사라지면서 다양한 담론들이 형성되었다. 과거 저항적 지식인의 아우라는 희미해졌고, 보다 진보하고 고차원적인 지식인상이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지식인의 흔들리는 위상과 번민은 시작된다.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으로 획득한 형식적 민주주의의 실현 이후 20년간의 지식인들의 냉정한 현실을 담고 있는 책이다.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은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헤게모니가 얼마나 모순되고 오류로 점철되어 있는지를 생생하게 담아냈다. '의무'보다는 '권리'에 익숙한 한국 지식인의 과거와 현재, 더 나아가 급변하고 있는 지식인의 정의와 역할을 폭넓은 각도에서 신랄하게 조명한다.

  세계적으로 한국만큼 지식인에게 명예와 돈과 권력이 동시에 몰리는 경우는 드물다. 지식인이라는 자체로 존경과 선망이 되는 게 바로 한국 사회다. 그렇다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사회로부터 받는 과분한 명예와 권리에 대해 응당 행사해야 할 기여와 의무는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지 자문자답해야 한다. 이 책의 근본적 출발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책의 강점은 넓은 관점에서 지식인의 현재성을 꿰뚫고 있다는 점이다. 87년 체제 이후 지식인의 역할과 기능이 어떻게 변하였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지식인 패권주의의 현실은 어떠하며, 정치·경제를 위시한 각 분야와 지식인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로 인해 현실 지식인의 위기적 본질은 무엇이며, 앞으로 지식과 지식인의 정의가 어떻게 진화해갈 것인지를 분석한다. 더욱이 현실 지식인들의 대담과 인터뷰를 실어 무게감을 더했고, 현실에 대한 분석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조망까지 내다보고 있어 균형이 잘 잡혀있다.

  사실 교수사회로 위시되는 한국의 지식인들은 돈과 권력에 너무 많은 부분 밀착되어 있다. 군사·민간 정부 할 것 없이 교수의 정·관계 진출은 당연시되어 왔으며 최근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서는 하나의 붐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폴리페서(polifessor)'라는 부정적 맥락의 신조어가 탄생했겠는가. 전문 관료를 의미하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는 달리 폴리페서는 '정치 지향의 교수'를 지칭하는 용어로 한국 지식사회의 망령적 징후로 표현되곤 한다.

  교수의 정계 진출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다.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문화, 시민운동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교수들은 진출해 있다. 한국사회의 보수적 구도도 문제거니와 교수들의 소신과 일관성에 맥이 없음은 더욱 큰 문제이다. IMF 이후 신자유주의의 도도한 흐름에 온전히 편입된 한국의 경제체제에 대해 정·재계에 몸담고 있는 교수들의 소신없는 행태는 씁쓸하기만 하다. 성장지상주의, 시장주의, 미국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알리바이 삼아 오직 신자유주의가 '절대선'인 것처럼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외침은 정작 본심일까.

  한국의 지식이 미국에 너무 종속되어 있는 것 또한 문제다. 미국이 한국 지식인을 생산하는 최대 공장으로 여겨질 정도다. 1948년부터 2007년 6월까지 학술진흥재단에 해외 박사 학위 논문을 신고한 이는 2만4,691명이고, 이 가운데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은 1만3,782명(55.8%)라고 한다. 또한 2007년 6월 서울 소재 9개 대학(경희대·고려대·서강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이화여대·중앙대·한양대)의 정치외교·경제·사회학과 교수 365명의 국가별 박사 학위를 조사한 결과, 미국 박사는 306명(83.8%)이고, 한국박사는 24명(6.6%)라 한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 박사가 아니면 아예 인정을 하지 않는 미국 박사 맹신주의의 저속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미국 박사 출신 교수들의 헤게모니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단적으로 알려주는 코미디를 하나 소개한다. 정태인 교수가 <경향신문>에 칼럼을 써 지식사회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2007년 『나쁜 사마리아인』을 출간하여 신자유주의 구호에 가려진 선진국들의 경제발전 역사의 내밀한 속성을 파헤친 케임브리지 대학 장하준 교수는 세계적으로 매우 저명한 경제학자다. 전문 학계에서 노벨상보다 권위를 더 인정받는 뮈르달상과 레온티에프상을 최연소로 수상했고, 사회과학논문인용지수(SSCI) 3위의 『케임브리지 경제학 논집』의 편집자이기도 한 유능한 경제 전문가다. 그런 장교수가 서울대학교에 교수 신청을 세 번 지원했지만 계속 떨어졌는데, 이를 두고 서울대의 어떤 교수가 "삼류 잡지 에디터가 무슨....."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시카고 보이스'로 대변되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학파의 철옹성이 얼마나 코미디처럼 굳건한지를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사회 도처에서 확인되는 지식계의 오류와 모순은 무수히 많다. 이전부터 있어왔던 이러한 한국 지식사회의 그늘진 단면은 87년 이후부터 공유했던 보편적 목적과 이상을 상실하면서 그 심각성을 더해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지식인은 냉엄한 현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으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안목과 용기가 있어야 함은 자명할 것이다. 

  근자에 '대중지성(mass intellect)'이라는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 지식인의 의미는 이미 구시대적 지식인으로 낙인되고 있다. 지식의 소비자인 대중이 생산자로서의 기능을 함께 병행하는 대중지성의 세상이 도래했다.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에서 처음 사용한 '일반지성(general intellect)'의 의미에서 한발짝 더 나간 대중지성은 그 유전자적 의미를 확대하여 '다중지성(swarm intellect)'으로 진화하기도 한다. 인터넷의 급속한 발전과 온라인 컨덴츠·커뮤니티의 질적 향상에 탄력을 받아 이미 지식은 대중의 품 안으로 들어가 다양하고 신속하게 생산·소비되고 있다. 실례로 <노사모>, <오마이뉴스>, <네이버 지식in> 등은 대중지성의 상징적 아이콘이다. 이러한 지식·지식인의 의미와 형태의 변화 속에서 기존 지식인의 구분된 역할과 기능은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가. 과연 그들은 죽은 것인가.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는 말했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만을 설파하는 지식인이란 무지나 권력의지의 산물일 뿐이라고. '지식인의 종언'은 무엇보다 지식인 자신에 의해 천명된 것이나 진배없다. 이제 한국의 지식인은 변해야 한다. 뛰어난 자기반성 능력으로 새로운 차원의 삶을 역동적으로 지휘할 의무가 있다. 그들이 지식인 본연의 책무를 상기하며 인간의 삶을 물질에서 정신으로, 결과에서 과정으로, 감각에서 의미로 전환시키는 선구자적 실천에 흔들림없이 복무한다면 마르크스가 주창했던 세계를 '변혁'하는 자로서의 지식인의 존재성은 찬란하게 빛을 발하지 않을까. 

  다시 책에 대한 평으로 회귀하자. 탐구 대상을 대학교수로 접사화하여 작가, 언론인, 논객, 법조인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다루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절차적 민주주의 달성 이후 둥개기만 하는 한국사회의 본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요원한 단면을 '지식인 코드'로 풀이한 점은 매우 유의미한 작업이라 감히 평한다. 의식있는 저널리즘의 좋은 본보기로 상찬한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도사리고 있는 지식인 헤게모니의 현실 단면을 세세하게 잘 파헤친 이 책은 민족·탈민족이나 좌파·우파의 이데올로기를 떠나 순수한 애국의 마음으로 한국 사회의 변화를 희망하는 이들에게 읽혀져야 할 소중한 보배이다. 20세기와 21세기를 잇는 가교적 이해와 통찰을 위해서 이 책은 반드시 필요하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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