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어쩌면 로마 황제 앞에 서 있는 검투사의 운명을 결정하는 수많은 민중들의 함성과 비슷한 것인지 모른다. 그들이 패배한 검투사를 살려주라고 하면 그는 살 것이요, 죽이라고 하면 죽을 것이다. 형식적 민주화가 강해진 경우도, 히틀러처럼 대중을 '조작의 대상'으로 생각한 파시스트의 경우에도 역시 중요한 사안들은 이러한 대중들의 함성에 의해 결정되었다. 10년 후 혹은 20년 후의 어느 날, 지금의 십대가 "전쟁, 전쟁, 전쟁!"을 외친다면, 결국 우리는 전쟁 속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로 그날, 더 많은 지금의 십대들이 "평화, 평화, 평화!"를 외친다면, 우리는 하나의 위기를 극복하고 그 다음 단계로 진화할 수 있게 될 것이다.   <p. 41>

경제학의 기본 모델에는 "인간은 경제적 이익에 따라서 움직인다"라는 하나의 가설만 존재하는데, 최근에는 여기에다 경제학자들이 "가끔은 이상한 짓도 한다"라는 보조명제를 넣기도 한다. 사실 이는 엄청난 고급 이론의 영역이다. 왜 사람들이 가끔 '이상한 짓'을 하는지 나름대로 경제학적 설명을 해낸 이들은 지금까지 전부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계산 자체가 어려워서 못한다고 얘기했던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진즉에 노벨상을 받았고, 명품 라벨에 속아서 이상한 짓을 한다고 얘기한 애컬로프(George Akelof)도 정보 경제학으로 노벨상을 받았다. 종교 때문에 가끔 배고파도 행복하다고 여기는 이상한 짓을 한다고 얘기한 인도 출신의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도 1990년대 중반에 노벨상을 받았다. 신념 때문에 이상한 일을 한다는 사람으로는 19세기 후반 가브리엘 타르드(Gabriel Tarde)라는 사람이 있기는 했는데, 불행히도 그 시대에는 노벨상이 없었다. 사랑 때문에 이상한 짓을 하게 된다는 분석은 아직 비어 있는데, 독자 여러분 가운데 이를 경제학적으로 이론화할 수 있다면 한번 도전해보시기 바란다. 성공하면 틀림없이 노벨상을 받을 것이다. 증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이익'이라는 단어만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이상한 행동'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증오이다.   <p. 170>

국가와 국가 사이에 '애정'을 얘기하는 것은 일상적이지도 자연스럽지도 않다. 이보다는 '우정'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하는 것이 좀더 사실적이다. 그러나 증오는 다르다. 증오는 구조 안에서 탄생하고, 경제를 따라 확산되고, 문화를 따라 재생산되며, 정치에 의해 폭발한다.   <p. 171>

만약 1세기 전에 발행된 유럽의 신문들과 지금의 한국 신문들을 찾아서 비교해본다면, 놀랄 정도로 유사한 구절이 많다는 데 독자 여러분들도 놀라실지 모른다. 당시의 '새로운 식민지'라는 단어를 지금의 '수출'이라는 단어로, '새로운 자원 개발'을 지금의 '자주 개발'이라는 단어로 바꾸고, '오페라'를 '한류'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그 당시 신문의 기사들 상당수가 요즘의 기사와 별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p. 196>

상투적 수법이기는 하지만, 이즈음에서 나름대로 유용한 질문이 하나 있다. "노아가 방주를 비가 오기 전에 만들었는가, 비가 오고 나서 만들었는가?" 물론 답은 뻔하게도 비가 오기 전에 만들었다는 것이다. 평화라는 매우 특수한 조건 혹은 매우 특수한 '공공재'도 이와 같다. 평화의 조건은 평화로운 시기에 만들어야 한다.   <p. 223>

"전쟁에 반대한다'라는 단 한 문장을 자신의 파토스로 간직하고 사는 사람이 두 사람 중에 한 명이 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울까? 마케팅 사회에서는 아주 어려운 미션이다. 그렇지만 '미션 임파서블'은 아니다. 평화는 달콤하고 감미로운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의 맛을 본 사람은 그 맛을 잘 잊지 못한다. 그래서 평화는 파토스를 요구하고, 스스로 작동할 수 있는, 그런 특수한 속성을 갖는다.   <p. 261>

한국 자본주의의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아니라 '저질 악마 자본주의'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평범한 한국 십대의 1년간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든다면, 디스커버리나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다큐멘터리보다 보존 가치가 훨씬 높은 자료가 될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고비용 노예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p. 271>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32334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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