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집
전경린 지음 / 열림원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1990년대는 무거운 사회적 담론을 벗어나 다양한 브랜드를 가진 작가들이 한국문단에 등장한 시기다. 더욱이 여류작가들의 활약은 눈부시기만 하다. 후일담 문학으로 시작해 세월이 흐르면서 더욱 진화하고 있는 작가 공지영, 발군의 섬세한 문체로 굳건한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신경숙, 냉소적 페미니즘 소설의 선두주자 은희경 등을 대표적으로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한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쓴다고 평가받는 전경린도 응당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전경린의 『엄마의 집』은 기존의 그녀의 작품과는 다소 코드를 달리한다. 전작들에서 대부분 세상과 조화하지 못하고 한과 정열에 빠져 에너지를 소비했던 여성상을 소개했던 전경린은 『엄마의 집』을 통해 주체적이며 적극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이혼녀를 내세운다. 남편과 자식에게 비종속적인 여인은 자신만의 '집'에서 일상과 사랑을 완성해간다. '집'이라는 가정의 외연적, 아니 어쩌면 내면적 테두리에 대한 기존의 남성적 통념을 도발하는 이 작품은 이혼한 엄마와 아빠의 존재성을 진지하게 곱씹는 한 여대생의 사유를 깊이있게 그리고 있다.  

  소설의 제목은 서사 속에서 더욱 많은 가지를 뻗어나가며 웅숭깊은 의미를 이끌어낸다. 전경린이 창조한 '엄마의 집'은 딸이 이혼한 엄마를 이해하고자 하는 통로이자, 아빠를 새롭게 조명하는 재해석의 공간이며, 모성이라는 여성성의 위대한 우주를 미시적으로 알아가는 특별한 형상화다. 작가 전경린은 '모성'이라는 위대한 여성성의 집대성적 아이콘을 '집'이라는 단어로 우의하여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엄마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소설 속에서 딸 호은은 엄마의 이혼과 또 다른 사랑의 시작, 그리 일과 고뇌 등을 탐구하게 된다. 갑자기 나타나 재혼한 여인의 딸 승지를 맡기는 아빠. 호은은 승지와 엄마의 집에 함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사유의 울타리를 넘나든다.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조건없이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의 존귀함. 그것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태초때부터 '엄마의 집'에 거하며 삶을 시작했던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머리속에 그리는 장면으로 소설은 종결된다.  

  한국사회의 오래된 가부장제의 습속과 문화는 우리집, 다시 말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아빠의 집'으로 고착화시키는 자연스러운 결과를 초래했다. 엄마로 대변되는 여성성의 자유와 표현은 최대한 절제되고 수동적일 때에 박수를 받곤 했다. '아빠의 집'에서 아빠의 리더십으로 엄마의 순종과 내조로 움직이는 가정. 그것이 근현대사 한국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가정의 아이콘이 되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 보면 세심한 곳곳에서 창조자에 의해 발현된 모성의 현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신의 성품은 물론 산과 바다의 대자연, 과학의 법칙, 경제의 원리, 삶과 사랑의 체계, 그리고 이 세상 편안한 것들의 모든 분자들 속에 모성은 내재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위치, 이 시간, 다시 말해 우주의 전체적 시공간은 바로 엄마의 집으로 메타포되는 여성성의 안정된 영토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존의 자신의 브랜드와 살짝 빗겨간 전경린의 잔잔한 소설을 읽은 후 엄마로 대변되는 '여성성'의 존재성을 새삼 사유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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