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다른 사람과는 기분 좋게 나눌 수 없는 것을 부끄러움 없이 나눌 수 있다. 망설임 없이 함께 할 수 있다. 은밀한 것이 오픈되고 부끄러운 것이 유머가 된다. 서로 다른 타인이 만나 가족이란 온전한 이름을 얻게 되기까지 정말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허공 중에 흩어지고 무의미하게 낭비되는 것 같지만, 그 무의미함을 견디고, 서로 함부로 할퀸 상처를 견디고, 익숙한 권태를 견디고, 반복이라는 이름의 노동을 견뎌내면, 끊임없는 자동차경적 사이로 잠시 잠깐의 고요가 찾아들고 그 순간 아리따운 새가 우짖듯이, 이런 충만한 느낌의 순간이 있다. 아, 우리는 가족이구나.   <p. 32>

그래도 엄마는 네가 바로바로 마음을 옮기는 사람이기보다, 마음이 옮겨가고 난 빈 자리를 혼자 남아 쓰다듬을 줄 아는 사람이어서 조금은 안도가 되는구나.   <p. 65>

그날이 그날인 것만 같은 느린 시간을 살지만, 그 느린 시간 속에서 한 발자국이라도 대충 건너뛰려 하면, 아이가 다정히 내 손을 잡고 건너뛴 지점으로 다시 데려다 주고야 마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나는 아이의 질문 기습으로 인해 촘촘해진다. 모든 발자국을 성의있게 내디디려는 사람이 된다.   <p. 85>

지식은 세상을 바꿀 수는 있어도 풍요롭게 할 수는 없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오직 지혜의 선상에서만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p. 120>

세상에는 아이에게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과 무관하게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미로서의 나는 아이에게 좋은 것을 아이가 선택하기를 바라지만, 실은 아이가 그렇지 않은 것을 선택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내린 결정을 존중해줄 의무가 있다. 아이는 이미 내 품을 떠나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자신만의 <기호>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기호를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나치게 편향되지 않도록 조절해주는 정도의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p. 134>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또 다른 우주를 알아가는 일이다.   <p. 161>

나는 깨달았다. <생명의 존엄함>이란, 피를 빨고 빨리는 관계에서의 우위, 혹은, '피를 빤다'라는 생존방식 자체의 천박함(이나 고결함)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을. 어차피 먹이사슬의 일부로서 존재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는 이상, 누가 먹이사슬의 위쪽에서 우아한 자태를 취하는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생명의 존엄성이란, 바로 그 <천 번의 날갯짓> 속에 있는 것이다.   <p. 163>

멈추지 못하는 아이, 멀리 갈 수 없고
음미하지 못 하는 아이, 멀리 가도 무의미하니...   <p. 194>

때로 행복이란...
지금보다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행복인지 몰랐던 시절로,
있던 그대로의 원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란 걸.   <p. 199>

한 장소의 특징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욕망에 대한 정직한 발현이기도 하다.   <p. 203>

당신이 아이에게 하는 말 한마디, 아이를 바라보는 한 번의 눈길, 귀 기울임, 아이를 쓰다듬는 손길, 한 번의 포용, 그 모든 것이 정확하게 쌓여 <바로 그> 아이가 됩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주는 것의 총합입니다. 때로는 그들만의 신비스러운 능력으로 주는 것 이상의 합을 도출해낼 수도 있지만, 절대로 그 이하의 합을 만들어내지는 않습니다. 당신이 아이에게 주었다고 생각한 것만큼 아이가 커지지 않는다면, 그건 당신이 아이에게 주는 것의 양을 오해하고 있거나, 그릇된 방법으로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p. 235>

내게서 넘치는 것은 그에게 흘러야 하고
그에게서 넘치는 것은 내게로 흘러야 한다.
적게라도...
하루라도...   <p. 265>

 

다윗 서평 : http://blog.naver.com/gilsamo/90029552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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