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찰하는 진보
지성사 / 2008년 3월
평점 :
절판


바야흐로 보수의 시대다. 지난 4월 9일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위시한 보수정당이 200석을 넘게 획득함으로써 행정부와 지방권력은 물론 의회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지난 97년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 이후 10년간 지속된 진보의 도약은 작년 대선과 금번 총선으로 처참히 정리되기에 이른 것이다. 국민들은 왜 그토록 많은 몰표를 보수에게 몰아준 것일까. 

  사실 대한민국은 보수와 진보의 명확한 개념 정립이 쉽지 않은 국가다. 노무현 정부 때 집권당이었던 거대여당 열린우리당을 진보정당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다수였음을 감안하면 아직도 한국사회의 글로벌 스탠다드적인 보혁구도의 구분은 요원하기만 하다. 남북의 분단 상황, 짧은 민주화 기간, 국가보안법의 존치 등은 한국적 보혁의 의미가 국제 표준에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전제들이다. 

  진보지식인임을 자처하는 조국 교수는 『성찰하는 진보』를 통해 한국사회에 만연한 각종 모순과 오류를 지적한다. 더욱이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며 무능과 독선을 보여왔던 진보진영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진보의 가치와 정신이 존중되어야 하는지를 명쾌하고 기백있게 설파한다. 

  저자는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 최임 직후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전에 쓴 대통령께 드리는 글을 책의 전면부에 제일 먼저 소개한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말과 행동과 선택 하나 하나가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두 대통령 모두 과거 어느 대통령보다 국민의 기대와 성원을 녹록지 않게 받았던 만큼 시대를 변혁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는 지식인으로서 저자가 대통령에게 바치는 글의 내용은 십분 공감이 된다. 한비자가 군주에게 악이 되는 여덟 가지 장애로 열거한 '팔간八姦'의 문언과 특정 지배세력이 아닌 다수 서민층을 위한 '성공 시대'를 현직 대통령에게 주문하고 있는 저자의 기백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저자는 정치개혁을 위시하여 사회와 경제, 인권,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법률, 학문과 대학, 여성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 곳곳에 치유되지 않는 다양한 문제점들과 이에 대한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저자가 제기한 다양한 주제들 중에서 나는 두 가지 정도를 선정하여 거론하고자 한다. 

  우선 국가보안법의 존폐 문제이다. 한국사회에서 국가보안법은 인권을 위협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이다. 헌법에 개인의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명시해 놓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보안법과 같은 비인권적, 비민주적 법이 존재한다는 것이 수치스럽다. 지난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이 미개한 법으로 인해 얼마나 무고한 시민과 학생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고통을 당했던가. 국회의원들은 어설픈 논리로 국보법 문제를 건너뛰려 하지 말고 양심과 용기로 폐지(최소한 개정이라도)해 줄 것을 요구한다. 국가보안법의 존폐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리가 아니라 철저히 '자유'와 '인권'의 코드로 해석해야 한다.  

  또 다른 하나는 황우석 사태에서 드러난 한국인들의 잘못된 대중 '애국주의'이다. 2005년 황우석 사건은 한국사회가 '진실'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무감각하고 호도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진실을 밝히려는 젊은 과학자들과 MBC 보도에 대해 어설픈 애국주의로 무장한 대중은 총단결해 비난과 매도의 공세를 퍼부었다. 아무리 민주주의 시대의 대중이라 할지라도 자기성찰과 진실에 대한 바른 이해와 양심이 없으면 우중衆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징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만약 황 교수 논문의 허위 여부가 국내가 아닌 외국 과학자나 언론으로부터 밝혀졌다고 상상해보라.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저자는 많은 사회적 담론을 쏟아낸다. 저자의 논설이 힘있는 이유는 각 주제별 문제제기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의 대안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류대학의 법대교수로서 연구하고 쌓아온 지식, 지식인으로서의 양심과 용기, 한국사회의 오류와 모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통찰이 잘 버무러져 꽤 훌륭한 수준의 진보담론집이 완성되었다. 

  이 책과 비슷한 주제와 내용을 다루고 있는 한겨레출판사의 『21세기에는 지켜야 할 자존심』도 함께 비교해가며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진중권을 위시하여 각계 각층의 진보지식인들의 강연 인터뷰를 모아 놓은 책이다. 한국사회의 소외계층에 대한 진보적 접근을 비롯하여 이 책에선 다루지 않은 문화와 과학의 영역에서도 진보적 담론을 추출하고 있어 다양성을 배가할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칼 마르크스는 말했다. 학문의 임무는 '해석'이 아니라 '변혁'이라는 것을. 지식인들이 세계를 반영하고 해석하는 차원을 넘어 옳고 상식적인 세계로의 <변혁>을 꿈꾸고자 할 때에 우리사회의 미래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 진보 지식인이 설파하는 이 한 권의 얇은 진보 성찰론을 살포시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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