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평점 :
절판


소중한 블로그 이웃님의 추천으로 처음 만나게 된 장 자끄 상뻬는 글과 그림으로 매우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다. 나는 그의 대표작 『얼굴 빨개지는 아이』를 통해 사람 사이의 좋은 관계가 어디서부터 전제하는지를 잔잔하게 사유할 수 있었다. 그의 책이 좋은 이유는 전면에 내세운 주제를 위해 가장 적확한 그림을 배치, 그리고 이를 완성하는 간명한 글에 있다.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이 상뻬의 얇은 그림소설에 진한 감동을 느끼고, 자아를 성찰하며, 다시금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곱씹게 되는 이유는 이러한 그의 글과 그림의 연금술적 조합에 기반하는 것이리라. 

  작가는 두 명의 인물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프랑스의 작은 마을 생 세롱에 사는 자전거포 주인 따뷔랭. 그리고 언제나 최고의 사진을 찍어내는 사진작가 피그뉴. 둘은 각기 자전거 수리와 사진 촬영에서 최고의 탤런트를 갖고 있지만, 그 밝음 뒤에 가려진 어두운 비밀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아이러니한 인물들이다. 자전거의 왕인 따뷔랭이 정작 자신은 자전거를 전혀 탈 줄 모른다는 점,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는 전혀 손색이 없는 사진작가 피그뉴가 촬영의 결정적 순간을 잡아내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 둘은 서로 이러한 내밀한 비밀을 숨기면서 우정을 쌓아간다. 

  하지만 모든 거짓은 양심과 시간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법이다. 피그뉴가 따뷔랭의 자전거 타는 모습을 멋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사진 촬영을 제안하고 따뷔랭은 어쩔 수 없이 그의 제안에 응하게 된다. 험난한 언덕 정상을 배경으로 한 사진 촬영은 자전거를 전혀 탈 줄 모르는 따뷔랭의 사고로 인해 우연찮게도 매우 멋진 장면을 포착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둘 사이의 감추어진 비밀 숨기기의 긴장감은 서로의 콤플렉스가 조화되면서 가장 멋진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다소 서먹해진 둘 사이. 언제나 그렇듯이 자전거를 수리하고 있던 따뷔랭에게 피그뉴는 두 달만에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 잠시 아무 말 없이 쳐다본다. 따뷔랭이 먼저 말을 열어 비밀을 털어 놓으려 하지만 말은 도중에 끊기게 된다. 왜냐하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더이상 서로의 비밀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책의 맨 마지막 따뷔랭과 피그뉴가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그림은 둘 사이의 내밀한 긴장감이 해소되면서 독자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최고의 명장면이다. 정말 좋은 관계는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나누며 인정하는 것임을 마지막 명장면은 아무런 소리없이 알려주고 있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콤플렉스를 안고 살아간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완벽한> 존재성을 성립하지 못한다. 내 장점이 타자의 단점이 되고, 타자의 비범함이 내 범상함이 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구분하는 객관성이다. 인간의 본성인 이기적 자아, 불완전한 사유의 잣대, 상대적 결핍성의 추구를 감안한다면 '콤플렉스'는 어쩌면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관점이 있다. 바로 '관계'에 관한 것이다. 각기의 전문분야에서 말하기 힘든 가슴 아픈 콤플렉스를 가진 두 남자가 미묘한 긴장의 벽을 넘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친구가 되는 과정에는 자기의 아픔 속에 녹아 있는 상대의 또 다른 아픔의 투영을 목도했기 때문이리라. 가장 좋은 관계는 반드시 <진솔함>을 내재한다. 은밀한 것이 오픈되고 부끄러운 것이 유머가 될 때에 가장 자연적인 <믿음>과 원초적인 <동질성>이 발산되는 것이 아닐까. 

  상뻬의 책은 묘한 매력이 있다. 그 묘한 매력을 나는 두 가지 비전으로 승화시키고자 한다. 하나는 책장 가장 좋은 자리에 위치시켜 읽고 싶을 때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는 마음가짐이며, 다른 하나는 훗날 태어날 내 아이에게 아빠로서 읽어줄 소망이다. 좋은 책은 아무리 곱씹어도 질리지 않고, 활자는 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기 때문이다. 

 

Thanks to 햇살박이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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