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 살아있는 미국역사 -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그 진실한 기록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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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부인할 수 없는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이다. 정치와 경제는 물론, 사회와 예술과 과학과 교육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의 표준을 리드해가는 나라다. 두 차례의 거대한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존재감은 더욱더 절대적인 것이 되었다. 가장 큰 경제 시장과 넓은 구매력, 세계 최고의 강력한 군대, 다양하게 발전된 문화와 예술, 현대적이고 진보적인 도시와 빌딩 등은 '팍스 아메리카나'라 불리는 미국의 국가브랜드를 완전한 것으로 보이게끔 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수식어들이 미국 내 상위 5%의 상위계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면, 과연 미국을 '행복한 나라'로 명명할 수 있을까. 

  노엄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불리는 하워드 진은 『살아있는 미국역사』를 통해 조국 미국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얘기한다. 저자는 약 500여년 전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부터 작금의 부시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대중들이 인지하고 있는 주류 역사와는 궤를 달리하며 내밀하게 가려진 어두운 미국사를 소개한다. 신대륙 발견부터 부시 정권까지, 가려져 있고 호도되었던 역사를 용기있고 진실하게 기록하고 있어 매우 흥미진진하다. 

  저자는 미국의 역사를 총 네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서 설명한다. 1부에서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후 정복과 차별의 역사가 시작되었고, 현재까지 앓고 있는 흑백의 인종 갈등과 여성의 빈약한 인권, 노동자 및 사회적 약자의 소외 등은 바로 그 때부터 태동되었음을 언급한다. 2부에서는 인디언들을 핍박하고 내쫓으면서 끊임없이 서쪽(태평양)으로 팽창하는 야욕의 시대를 소개한다. 더욱이 이 파트에서는 노예 문제와 노사 갈등, 부의 독점과 국가의 제국화 등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또한 3, 4부에서는 '전쟁'이라는 암울한 아이콘으로 대변되는 미국의 근현대사를 언급하면서 미국 사회에 불거진 다양한 문제점들에 대해 서슴없이 비판한다. 

  저자는 강력히 주장한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개척의 이면에는 피비린내 나는 종족의 말살이 있었고, 미국이 자랑하는 독립선언서에는 여성, 흑인, 인디언이 제외되었으며, 링컨이 일으킨 남북전쟁의 본질적 목적은 노예 해방이 결코 아니었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엄청난 경제적 장사를 일구었으며, 베트남 전쟁의 목적은 자유민주주의의 전파가 아니라 고무, 주석, 석유 등을 얻고자 함이었고, 고어와 부시의 선거 결과는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석유를 위한 전쟁'이었음을 말이다. 그 외에도 많은 양심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있다. 마치 붕대에 가려진 곪은 상처를 잘라내 처참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과 같이 저자는 일관된 '진실 코드'로 미국사를 해부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의 역사를 '지배층'이 아닌 '피지배층'의 관점으로 관통한 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갖고 있는 상대적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저자가 5%의 '지배층코드'가 아닌 95%의 '민중코드'로 미국사를 천착한 점은 응당 귀한 작업이다. 사실 '세계 제일의 부자 국가'라는 타이틀의 내면 속에는 '세계 제일의 양극화 국가'라는 아이러니한 현실이 엄연히 내재되어 있다. 세계 제일의 부자들과 수천만 명의 극빈층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미국. 흑인과 여성과 노동자의 비인권과 이로 인한 갈등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미국. 1조 달러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국가 채무로 안고 있어 국방비보다 많은 달러를 빚을 갚는 데 지불하는 나라 미국. 이러한 미국의 내밀한 현재적 아픔을 이해하는 데 그네들의 진실된 민중사만큼 적확한 것이 어디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사실 현재의 미국은 위기감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이겼지만 실패한 전쟁인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미국 국민은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쌓고 있다. 또한 오래전부터 활력을 잃고 있던 미국 경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그 위기 수준이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초강대국과는 맞지 않은 후진적 의료보험제도는 수많은 국민들을 의료의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다. 게다가 국제적으로는 푸틴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러시아는 점차 강대국으로의 체질 변환을 꾀하며 미국을 뒤쫓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중국에게 추월당하기 직전의 상황에 있어 미국의 형편이 꼴이 아니기도 하다. 현재의 암울한 미국의 주소가 하워드 진이 설파한 거짓되고 굴곡진 미국사의 업보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헤게모니는 현재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직시하고 미국의 현재성을 제대로 천착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주류인가 비주류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비본질이다. 사실인가 아닌가, 혹은 옳은 것인가 아닌가, 좋은 것인가 아닌가가 본질이다. 90세에 가까운 한 미국 사회학자의 연구와 저서가 많은 대중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이유의 내면에는 바로 역사에 대한 진실된 접근에 공감하는 깨어있는 자들의 욕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비단 미국뿐만아니라 어떤 국가와 사회든지간에 역사에 대한 진실된 접근과 용기있는 고백은 반드시 그 공동체를 도약케 하는 원동임을 나는 확신한다.  

  역사는 반드시 <사실>이어야 한다. 사실의 전제 하에 역사라는 학문의 본질은 완성된다. 한국 사회 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한 트라우마에 자유롭지 못하다. 애국자를 빨갱이로 알았고, 쿠테타를 혁명으로 알았으며, 민주항쟁을 불순한 무리들의 폭동으로 알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한국은 참 빠른 사회다. 번영도 빠르고, 잘못도 빠르며, 회복도 빠르다. 호도된 진실을 신속히 바로 세워가고 있는 한국 현대사의 힘은 '진실'에 갈증하는 한국민들의 용기와 투쟁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밝은 미래는 보증된다고 믿는다. 

  지식인은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지식인의 의무라 생각한다. 자신의 지적 수준의 유지나 자기방어에만 관심이 있는 지식인은 지식으로 세상을 낭비하는 자의 전형이다. '지식'이 '진실'과 '양심'을 만나 서로 호흡하고 세계 속에서 작동하며 움직일 때에 우리사회는 올바르고 상식적이며 행복한 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에도 그러한 용기있고 양심있는 지식인들의 활개가 풍성하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갈망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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