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 마음을 얻는 지혜 위즈덤하우스 한국형 자기계발 시리즈 2
조신영 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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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ond Edition Review]

'활자'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영구성에 있다. 구두문화가 직관적이기는 하나 시간의 흐름 속에 변질되고 퇴색되는 한계를 갖는 반면, 문자문화는 절대불변의 원리를 갖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문자문화의 찬란한 기반 위에서 그 시대와 지역의 부흥이 성립되었음을 명징히 보여준다. 내가 '책'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서 출발한다.  

  최근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입에서 출력되는 에너지의 양이 적으면 적을수록, 귀로 입력되는 에너지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대인관계를 이뤄갈 수 있음을 새삼 인식해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결국 말 많은 내게 많이 들어야만 하는 의무감을 안겨주곤 했는데, 최근 이러한 최소의 의무감마저 사그라진 듯하다. 듣는 것, 정말 쉽지 않은 것이다. 

  작년에 읽은 위즈덤하우스의 『경청』은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지혜 '경청'의 소중함을 잔잔하게 그려낸 책이다. 갑작스런 건강의 악화로 일상의 반전을 겪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무심코 잊으며 살아가는 '듣는 것'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아름다운 우화이다. 자기계발서임에도 불구하고 딱딱하거나 건조하지 않은 훈훈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와 호흡하는 이 책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스테디셀러이다.  

  책장 속에 꼽혀있는 책에 다시 손이 가게 된 이유는 근자에 '화자'로 살아가는 내 자신을 재인식하며 '청자'로서의 삶이 요원한 자아를 성찰했기 때문이리라.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말하는 것은 호흡과 같은 삶이다. 수시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말을 한 후, 뒤에 남는 것은 허전함뿐이다. 아는 것을 말하고, 멋있게 말하며, 상대방을 설득하게끔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말을 많이 한 뒤에는 개운치 않은 맛이 뒤따른다.  

  『경청』이 출간될 당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책의 홍보 소재로 자주 회자되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회장은 말 안하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도 이 회장은 말하는 경우가 드물다. 각 계열사 사장들의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언어들을 그저 주의깊게 <듣기>만 한다. 듣고, 또 듣고, 끊임없이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마지막에 <결정>만 내린다. 최근 특검이다 해서 말이 많지만, 어쩌면 이 회장은 아들에게 '회장'의 자리를 물려주기 앞서 '듣는 것'의 소중한 정신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었으리라. 

  "내가 함께 일했던 탁월한 리더들은 대부분 키도 크지 않았고, 특별히 잘 생기지도 않았다. 연설도 대개 보통수준으로 돋보이지 않으며, 똑똑한 머리나 달변으로 청중을 매료시키지도 못했다. 그들을 구별짓는 것은 명료하고 설득력있는 생각, 깊은 헌신, 끊임없이 배우려는 열린 마음이다."
  세계적인 저명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의 말이다. 성공한 리더의 공통된 특징은 지성이나 달변이 아닌, 헌신과 배움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나에게서 분출하는 것이 아닌 남으로부터 공급받는 요소에 의해 탁월한 리더는 완성된다는 얘기다. 타인의 지식과 생각, 철학과 의견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는 사람이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다고 통찰한 드러커의 명문장에 나는 온전히 매료된다.

  말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듣는 것은 예술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듣는 능력에 있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은 말은 잘 못해도 오직 듣는 것으로만 사람의 마음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다. 귀와 머리가 아닌, 가슴과 심장으로 듣는다. 그 어떤 계산과 이익을 배제한 채, 진심을 다해 마음으로 경청하는 자들이다.  많이, 정확하게, 그리고 깊이있게 듣는 능력이야말로 상대방의 마음속에 자신의 존재감을 심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다. 

  말하기를 열심으로 특심으로 좋아했고 즐겨했던 최근의 일그러진 자아상을 사유하며 다시 한 번 읽은 『경청』의 잔잔하면서도 강렬한 깨달음을 곱씹는다. 그러면서 귀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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