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내 나이 열다섯 살 시절을 생각한다. 그 때 나는 누구였고, 무엇을 했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떤 사람이었을까. 중학교 2학년의 시절. 학교와 집을 왕복했고, 수학 공식과 영어 단어를 외웠으며, 외모와 여자들의 눈길에 민감했던 시절.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 누구를 믿는다는 것, 누구를 잃어버린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경험과 학습이 없던 시절. 어설픈 이기가 다듬어진 이타를 압도했던 그 시절에 과연 나의 아름다운 추억은 무엇이 있을까. 곱씹고 곱씹지만 내 머릿속은 떠오르는 영상을 합성해 내지 못한 채 일렁이기만 한다.

  죽음을 앞둔 할아버지와 열다섯 살 손녀의 아주 특별한 이별이야기인 『리버보이』는 해리포터의 아성을 무너뜨린 팀 보울러의 역작이다. 수영을 좋아하는 열다섯 살 소녀 제스와 그녀의 할아버지 사이의 깊고도 특별한 사랑을 아름다운 판타지로 승화시키며 읽는 이의 영혼을 두드리는 감동적인 작품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1차원의 시간은 정지가 없이 연속적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삶의 희로애락은 수없이 반복되며 우리의 삶을 채우고 또 채우게 된다. 어떨 때는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떨 때에는 너무 느린 시간의 감각으로 무료할 때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시간은 분명 절대적인 속도로 일관성 있게 흐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느끼는 시간 속도의 감각과는 전혀 다르게 말이다.

  감정과 이성이 체계있게 확립되지 않은 어린 시기에 사랑과 이별을 농밀하게 경험하는 것은 대단한 축복일 수 있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넘어 성인과 노년의 시기를 거치는 우리네 인생은 수도 없는 사랑과 이별, 행복과 아픔의 반복으로 채워진다. 하나의 존재성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그로 인한 행복, 그리고 이별과 아픔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어쩌면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부터 미리 계획하신 인간사의 시나리오일지도 모른다. 결국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존재가 인간이다.

  『리버보이』에서 '강'은 매우 중요한 우의(意)다. 시간과 인생, 사랑과 이별, 포기와 분노, 행복과 아픔에 이르는 인간성의 본질적 감정을 '강'이라는 메타포에 녹여 놓는다. 큰 바위가 있고, 방향이 바뀌고, 굴곡이 있고, 좁아지고 넓어진다 하더라도 그냥 흐른다. 저 멀리 '바다'라는 넓은 세계에 도달할 때까지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흐른다. 그것이 강이다. 그리고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전두엽이라는 특이하게 발달된 뇌의 구조에서 증명된다. 과거 어느 순간에 겪은 기쁨이나 슬픔을 머릿속에 알고리화하여 먼 훗날에 다시 끄집어 내어 감상에 젖을 수 있는 낭만과 정념(念). 추억이라는 것은 인간만이 행사할 수 있는 고도의 지적 작업이자, 아름다운 낭만의 재창조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하더라도 과거의 추억을 곱씹으며 그 사람을 지금 이 순간 추억의 이름으로 불러낼 수 있는 힘과 능력. 그것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나는 『리버보이』를 청소년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에 단호히 거부한다. 강처럼 흐르는 세월의 흐름은 청소년기에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시간 원리는 언제나 동일하게 흐른다. 엄마의 자궁을 박차고 나올 때, 부모와 어른의 사랑을 받으며 말을 배울 때,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할 때, 사회에 진출하여 사회인으로 살아갈 때, 결혼하여 한 가정의 주인이 될 때,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될 때, 훗날 자식의 자식을 보며 미소를 지을 때, 다른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느낌을 얻을 때 등. 모든 인생의 편린들마다 시간은 동일하게 '강'과 같이 흐른다. 그렇기에 『리버보이』의 감동은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참 아릅답다. 너무 감동스럽다. 팀 보울러가 창조한 감동은 활자가 아닌 판타지 영상으로 내 가슴속에 아로새겨졌다. 나의 삶, 인생, 사랑, 도전, 상실, 꿈에 이르는 폭넓은 사유의 바다 속으로 침투한다. 그리고 과연 내 '리버보이'는 어떤 존재일지를 상상한다. 그리고 미소 짓는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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