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슬립 - 전2권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이수경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 있음. 그리 심각한 수준의 스포일러는 아님. 혹여 스포일러가 걱정되는 분은 마지막에서 세 번째 문단은 읽지 않기를 권고 드림. 

'시간'은 인간에게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주제이다. 오랜 기간동안 인류의 과학과 문화는 시간에 대해 끊임없이 조명하고 분석했다. 시간에 대한 인류의 채워지지 않는 공복감은 1차원 이상을 초월하지 못하는 인류 과학의 아쉬운 현주소를 반증하는 것이리라. 이미 공간(space)은 3차원의 우주를 가시적으로 입증했지만, 시간은 1차원의 선의 구조를 초월하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 먼 미래, 과연 인류는 시간을 2차원 이상으로 확장하여 누릴수 있을 것인가. 

  시간에 대한 인류의 콤플렉스적 반증은 물리학이라는 학문의 영역뿐만 아니라, 수많은 문화 분야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 수세기 동안 인간이 창조한 책과 음악과 영화와 각종 미디어 등에는 현실에서는 발생되지 않는 '시간'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들이 녹아있다. 과거에서 미래로, 또는 미래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있는가 하면, 먼 우주로의 여행에서 뒤바뀐 시간 체계를 설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다양한 시간 관련 소재들은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지속적으로 유도해가고 있다. 

  『오로로콩밭에서 붙잡아서』, 『하드보일드 에그』, 『벽장 속의 치요』 등의 작품으로 국내에서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오기와라 히로시는 그의 신작 『타임슬립』을 통하여 흥미로운 시간여행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 사람의 단수적인 시간 이동이 아닌, 두 사람의 복수적 교체적 시간 이동을 통하여 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미래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운명이 뒤바뀐 두 남자의 시간여행을 통하여 태평양 전쟁의 암울한 일본사와 9.11테러로 대변되는 우울한 21세기의 시작을 관통한다. 

  '1944년 9월 12일부터 1945년 8월 16일까지 일어난 이야기 or 2001년 9월 12일부터 2002년 8월 16일까지 일어난 이야기'라는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2001년을 살아가는 오지마 겐타는 21세기 일본청년의 초상으로, 1944년을 살아가는 이시바 고이치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조국을 위해 항전을 불사르는 충성된 청년군인의 초상으로 각각 등장한다. 두 남자의 운명적인 타임워프는 전지적 작가 시점의 교차식 구성으로 전개되면서 박진감 넘치는 스펙타클을 선사한다. 

  작가가 설정한 시대 설정이 흥미롭다. 작가는 왜 암울하고 피폐했던 20세기 최악의 전쟁의 심장부를, 그리고 21세기 시작과 함께 경종을 울린 처참한 테러를 시간적 배경의 전면에 배치한 것일까. 소설 속에서 두 남자 주인공은 끊임없이 '현실(기존)'로의 회귀를 갈망한다. 겐타와 고이치는 기존과 다른 세상, 꿈꾸는 듯한 세상, 비상식적인 세상을 목도하며 교체된 시대의 모순성을 인식한다. 죽을 이유가 없음에도 자발적으로 자살하길 원하는 청년군인들의 모습, 기존의 모든 가치관과 습속이 파괴되고 순수성을 잃어버린 자극적 문화 등은 두 주인공이 타임워프되는 시대의 모순적 단면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암울함에서 암울함으로의 여행은 어쩌면 과거의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며, 미래의 관점에서 과거를 반추하고자 하는 넓은 역사의식이 함의된 작가의 외도된 기계장치가 아닐까. 

  소설에서 매우 중요한 하나의 흐름이 있다. 미나미라는 여인에 대한 두 남자의 방향성이다. 본래 겐타의 여자친구인 미나미는 두 남자의 뒤바뀐 운명 가운데서도 그 존재감을 상실하지 않고 끊임없이 조명받는다. 이미 과거에 구속된 자신의 진짜 연인과 본성이 교체된 과거에서 온 가짜 연인으로부터 모두 사랑을 받는 여인이다. 겐타가 과거 시대에서 겪는 난관과 고생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적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추동, 그리고 고이치가 가졌던 과거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점차 수그러뜨리는 원동력이 바로 미나미의 존재성에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러브 스토리다. 

  소설이 좋은 점은 작가의 상상력을 통해 그 어떤 이야기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픽션이라 할지다로 암울한 과거 속에서 사랑하는 한 여인에 대한 방향성을 잃지 않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준비하는 겐타라는 인물에 강한 매료를 느꼈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했던 연인 미나미에게 빨려 들어가는 겐타의 행동과 의지는 무척이나 감동깊다.

  이야기는 결국 비극으로 종결된다. 아니다. 희망이 있는 비극이 올바른 정리가 아닐까 싶다. 두 남자 모두 죽음으로 운명을 완성하지만, 미나미의 몸속에 잉태한 하나의 생명은 과거로 간 겐타의 희생적 산물이요, 미래로 온 고이치의 비극적 열매가 합일되는 존재이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무언가 종결되지 않은 기분. 그 이후의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는 기대. 그것이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의 솔직하고 즉각적인 느낌이었음을 고백한다. 

  두 남자의 시간을 초월한 운명적 뒤바뀜, 이라는 흥미있는 소재를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로 멋지게 그려낸 오기와라의 작업에 박수를 보낸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의 제작을 염두한 활자처럼 읽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영상적 상상을 유혹하고 있다. 일본작가들의 넓고 튀는 이야기 창조 능력이 비단 어제 오늘의 공력은 아니지만, 활자에서 영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는 넓은 공간까지 확보해가는 그들의 능력에 새삼 부러움을 느낀다. 

  그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 애니나 드라마, 또는 영화. 그 가능성에 작은 기대를 걸어보면서 '시간'과 '사랑'의 조화로 빚어낸 오기와라의 러브 스토리를 여유있게 추천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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