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 시골의사 박경철이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
박경철 지음 / 리더스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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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렸을 때 "이런 사람이 되겠다"라는 꿈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이전까지는 직업에 귀천이 있는 줄 알았다. 중학생이었을 시 내가 열망했던 직업은 뒤에 '사'로 끝나는 2음절의 세 가지 단어였다. 의사(師), 검사(事), 교사(師). 아픈 사람을 고쳐주는 의사, 법과 정의를 세우는 검사, 사람을 가르치는 교사. 이렇게 세 가지 직업에 나는 심히 경도되었고, 사춘기 청소년 시기의 꿈과 이상으로 사로잡혔었다. 

  그 중 최고는 단연 의사였다. 내게 의사는 꿈이었고, 열망이었으며, 존재가치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의 '의사' 타령에 압박된 이유도 있었지만, 한 사람의 생명을 위해 연구하고 땀 흘리는 의사라는 존재의 무게감에 대한 여망이 더욱 컸던 것이리라. 하지만 고등학교 진학 이후 의사와 나는 양립할 수 없는 관계임을 인식했다. 학업성적도 성적이었거니와, 사고가 트이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세상에는 의사 외에도 멋있고 소중한 직업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내 첫사랑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가슴 한 켠 소중한 곳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 잡아오고 있었다. 

  의사에 대한 나의 경외심은 김명민 주연의 의학드라마 〈하얀거탑〉을 시청한 이후에 산산조각이 나게 된다. 물론 연출된 드라마였지만, 인간의 고귀한 생명보다 부와 권력에 대한 추구를 우선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담이 걸렸을 때 제대로 검진하지도 않고 무작정 MRI부터 찍어야 한다는 의사, 소소한 상처임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입원부터 해야한다는 의사, 환자의 간절한 질문에 무성의하고 건조하게 대응하는 의사들을 나는 수없이 목도했다. 더욱이 지난 몇 년간 환자를 앞에 두고 자신들의 헤게모니를 위해 파업으로 일관했던 수많은 의사들의 행태는 의사에 대한 나의 냉소적 시각이 완성되는 동기가 되었다. 

  물론 이 땅의 모든 의사들이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베스트셀러였던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과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으로 대중에게 친숙한 시골 병원원장 박경철 씨는 신간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를 통하여 의사에 대한 내 선입견을 전복한다. 앞서 출간된 두 권의 책이 저자 자신의 이야기에 중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번 신간은 저자가 만나고 치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삶의 한순간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소중한 삶의 가치들을 얘기한다. 

  저자가 책에서 소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프고 소외된 이들이다. 불치의 병으로 시한부를 선고받은 사람, 가난한 형편으로 반드시 받아야 하는 수술을 받지 못하는 사람, 불안정한 가정문제로 고통받으며 아파하는 사람, 주변에 아무도 없이 외로움에 갇혀 지내는 사람, 하지만 희망이 있어 행복한 사람들의 삶의 기록을 저자는 자신의 진료일기의 형식으로 훈훈하게 들려준다.  

  저자는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진료하지만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을 상담하고 치료하면서 인간의 생명은 물론, 인간 자체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살아간다. 소비자와 공급자의 관계가 아닌,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로 환자들을 대한다. 이러한 진심어린 소통방식은 친구로서, 선생님으로서, 조언자로서, 상담자로서 의사 박경철이 존재하는 원동(動)이다.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들이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으로 이관된 이후에도 수술결과와 치료성과 등을 저자에게 알려주고 피드백하는 사연들을 통해 진실하고 훈훈한 인간미를 보게 된다.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부분은 저자의 추억어린 이야기가 수록된 마지막 파트이다. 아버지의 부음 앞에서 슬픔에 잠겨있는 저자의 양옆에는 친구 두 명이 끝까지 자리를 지켜준다. 두 명의 친구는 훗날 저자가 개인병원을 개원하는 궁핍한 상항에서도, 건강에 문제가 생겨 병원에 실려갈 때도 든든히 옆자리를 지키며 힘이 되어준다. 결국 한 친구는 저자와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면서 같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고, 다른 한 친구는 인생의 동반자로서 언제나 저자의 옆을 지키고 있다. 농밀한 우정의 인과성(性)에서 나는 진한 감동을 느꼈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당연하다며 잊고 지냈던 감사함을 곱씹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소중한 것들이 참으로 많다.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건강이다. 아무리 많은 부를 누리고, 고매한 지성을 가지고, 높은 명성을 떨친다 하더라도 건강이 없으면 그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읽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두 잃은 것이다. 모범적 이타는 안정된 이기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이기의 기초가 바로 건강이다. 정신과 육체 모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새삼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저자는 자신의 책이 청소년 우수도서에 선정되어 최근 중고등학교 강연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 누구보다 인간의 소중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기에 이 땅의 미래인 청소년들을 가르치는 것은 도전이요, 축복일 것이다. 나는 '인간' 자체에 방점을 찍고 있는 저자의 직업관을 지지한다. 병을 고치는 수준의 치료를 넘어 한 사람의 삶과 영혼과 가치관을 치료하며 다스리는 치유의 마술사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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