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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와 미스 프랭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평점 :
※ 역시 (철저하게)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선>과 <악>에 대한 통찰은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계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를 위시한 수많은 종교와 철학은 인간이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에 대해 지나치게 조명하고 끊임없이 탐구한다. 에덴동산의 창조원리를 파괴할 수 밖에 없었던 인간의 원죄성, 성선설과 성악설로 대립되는 중국 철학자들의 대극적 시각, 인간 스스로 깨닫고 해탈하여 신이 될 수 있다는 불교의 교리 등은 선악에 민감한 인류의 내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들이리라.
그렇다면 선과 악은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선의 성질과 악의 성질이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철저한 이분화로 내면적 공존이 불가능한 것인지도 매우 흥미로운 사유의 주제가 될 수 있다. 특히 이 사유에서는 인간의 내면에 무엇이 먼저 들어왔고, 또는 먼저 발산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선과 악의 공존 여부가 핵심이다. 천사와 악마로 대변되는 선악에 대한 다양한 통찰과 해석은 어쩌면 인간의 불완전성을 스스로 자임하는 인류의 고백적 히스토리라 할 수 있다.
언어의 연금술사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2000년작 『악마와 미스 프랭』을 통하여 부와 권력의 초점에서 선과 악을 탐구하고 있다. 더욱이 이 작품은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와 더불어 그의 《그리고 일곱 번째 날》 3부작 시리즈의 종결을 완성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기도 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가 '사랑'을,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가 '삶'과 '죽음'을 탐구하고 있다면, 『악마와 미스 프랭』은 부와 권력으로 점철된 인간 내면의 선과 악을 깊이있게 통찰한다.
꽤 진부한 주제이지만, 코엘료는 발군의 아름다운 언어와 특유의 독자와의 호흡 방식을 통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선악에 대한 농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 작은 마을에 악에 대한 동기부여를 위해 방문하는 이방인, 이방인의 솔깃한 제안을 받는 미스 프랭, 미스 프랭을 통하여 전 마을에 퍼지는 악의 유혹, 그리고 선악의 선택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마을 사람들의 흔들거리는 본성들은 인간의 연약함과 불완정성, 그리고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한계성의 단면을 보여준다.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아니면 악한 존재인가. 아니면 두 가지 원초성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종족인가.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신이 이 세상을 창조한 것을 인정하며, 신이 전지전능하다는 것까지를 인정하게 되면 신이 선하다는 명제에 동의하게 된다. 신의 창조 능력과 완전무결한 신성은 선의 가치보다 고차원 선행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앞서 세 가지를 인정하며 신뢰하는 나는 신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한다. 신성은 절대선이며, 그 외의 어떤 것도 선으로 포장할 수 없으며, 인간은 신성 안에서만 선을 누릴 수 있음에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선의 본질을 인간 자체에서 찾으려 하는 관점이 적지 않다. 비단 종교성을 떠나서라도 나는 원초적으로 인간은 선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의학과 심리학은 수많은 실험과 통계를 통하여 인간이 선 앞에서 얼마나 상대적이고 불완전한 존재임을 거듭 상기시켜 왔다. 질서에서 무질서를, 사랑에서 두려움을, 완전에서 불완전을 무의식적으로 생산하는 인간. 더욱이 의식과 무의식의 세계에서 부와 권력을 탐욕하는 인간 내면의 한계성은 원초적으로 선한 인간상을 거부하는 단면들이다. 인간이 선하기 위해서는 높은 차원의 절대적인 힘과 사랑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비단 나만의 믿음인가.
코엘료의 문학의 두 가지 특성을 새삼 목도한다. 독자는 문학을 통하여 작가의 우주와 철학을 정확하게 공급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작가의 질문만을 제시받은 채 답변의 미완성으로 종료되는 경우도 있다. 코엘료는 철저히 후자의 형식으로 독자와 소통한다. 코엘료의 모든 소설은 신과 삶과 사랑과 자아 등에 이르는 우주의 본질적 가치들을 관통하면서 절대로 독자에게 답의 완성을 구속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코엘료표 아포리즘은 독자가 나름의 답을 완성해가는 과정과 그 연장선상 속에 슬며시 녹아있다. 그의 활자가 심원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또 한가지 특징은 사고의 단순성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코엘료는 언제나 동시다발적 사유를 독자에게 요구한다. 그의 작품은 어떤 주제를 다루든지 <신>과 <여성성>과 <나 자신>이 동시에 내재되어 있다. 신을 통해 사랑을 조명하고, 여성성을 통해 신을 탐구하며, 삶과 죽음을 통하여 나 자신을 사유하는 것이 코엘료가 창조하는 세계의 특징이다. 책의 막장을 덮은 후에도 무언가 확실하게 답이 정리되지 않는 느낌,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의문과 사유의 연결들. 내가 매번 그의 언어에 경도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들이다.
그에 대한 전작全作을 완성하는 데에는 이제 단 두 권만을 남겨놓고 있다. 또 어떠한 우주로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할지 자못 기대된다. 단지 활자만으로 한 사람의, 아니 전 세계 수천만 명의 머리와 가슴을 일렁이게 하는 작가 코엘료는 정말로 정말로 정말로 언어의 연금술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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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