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 라틴어 원전 완역판 세계기독교고전 8
성 아우구스티누스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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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이나 읽은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읽을 당시 그은 밑줄을 따라가며 빠르게 문장을 복기해 서평을 남긴다. 이렇게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최근 교회에서 '기독교 고전 읽기'라는 수업을 개강했다. 올해 처음 부임한 부교역자가 해당 과목을 맡았다. 강의 제목이 말해주듯이 신앙에 유익을 줄 기독교 고전을 선택해 한 시즌 동안 읽고 내용을 나누는 수업이다. 그 첫 책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이 선정됐다. 소위 '아우구스티누스빠'를 자처하는 나로서는 일 순위로 수강을 원했으나 도저히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아쉬웠다. 이런 배경에서 책장에 꽂혀 있던 책을 다시 집은 것이다. 그리고 남기는 글이다.

서양 고전 가운데 흔히 “세계 3대 고백록”이라는 말이 회자된다. 그러나 세 책을 실제로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표현은 격에 맞지 않은 문학적 관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같은 범주에 놓일 작품이 아니다.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이 인간 자아의 노출이라면, 레프 톨스토이의 고백록은 윤리적 각성의 기록이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작품은 그 차원을 단숨에 넘어선다. 이 책은 인간이 자신을 고백하는 책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 존재 전체가 해석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하나님을 향한 신학적 찬가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향한 단호한 선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을 세 번 읽으며 깨달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주인공은 하나님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이 범죄하고 넘어지고 시험 들고, 어느 순간 중생을 경험하고 성화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정작 아우구스티누스의 관점은 일관되게 외부로 향해 있다. 과거의 크고 작은 일들이 현재의 나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 섭리였다는 것이다. 보존하시고 운행하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시각을 견지하지 않는 한 『고백록』은 오독되기 쉽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은 실패와 방황의 연속이다. 그는 젊은 시절 쾌락을 좇았고 명예를 탐했으며, 한때는 이단 사상 속에서 진리를 찾겠다고 헤매기도 했다. 그는 결코 모범적인 청년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과거를 가차 없이 폭로한다. 사소한 도둑질, 허영심, 정욕, 교만—그는 인간 내면의 어둠을 조금도 미화하지 않는다. 이 대목은 자연스럽게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들과 연결된다. 도스토옙스키 역시 인간 영혼의 가장 어두운 심연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작가다.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인물들이 보여주듯, 그는 인간의 죄와 자기 기만을 조금도 낭만화하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보다 훨씬 타락했고, 그 타락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도스토옙스키의 세계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은 서로 만난다. 인간 내면의 심연을 끝까지 내려가 보면 결국 하나의 진리에 도달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도덕적 개선이 아니라 구원이며, 그 구원은 오직 은혜로만 주어진다는 걸 말이다.

하나님은 의인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죄인을 변화시켜 사용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생애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야기다. 기독교 신학이 강조하는 가장 위대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은 단순히 인간을 도와주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존재의 근원이시며 역사의 절대 주권자이며 모든 것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섭리하는 분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은 이 교리를 설명하는 교과서다.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 철학적 방황, 학문적 갈망, 밀라노에서의 회심—그 모든 사건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신학자를 빚어 가신 과정이다. 인간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이던 사건들이 하나님 손에서는 신학자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이것이 섭리다. 이것이 주권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다.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창세기》 강해는 이 작품의 정점이다. 많은 독자들이 이 부분에서 당황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이야말로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핵심이다. 그는 창조 이야기를 단순한 성경 해설로 다루지 않는다. 그는 거기서 시간, 기억, 존재, 창조의 신비를 묻는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의 내재적이고 필연적인 사역은 영원 전에 자신의 지극히 거룩하고 지혜로운 경륜에 따라 이루어졌다. 시간성의 거부, 즉 영원(永遠, Eternity)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이해하지 못하면 성경과 기독교 신학은 절대로 온전히 소화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위대함은 그의 시대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이후 서양 신학 전체의 토대를 형성했다. 중세 신학은 물론이고 종교개혁의 신학자들까지도 그의 사상에서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특히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읽어 보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얼마나 자주 호출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삼위일체, 은혜에 의한 구원이라는 핵심의 교리에서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단순히 인용하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신학적 동지로 대우한다. 종교개혁자들은 자신들의 교리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분명히 가르쳤던 복음의 회복이라고 확신했다. 이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단순한 교부가 아니다. 그는 서방 교회의 신학적 지형을 결정적으로 형성한 인물이며, 이후 수 세기 동안 이어질 개혁주의 신학의 중요한 뿌리가 되었다.

흥미롭게도 아우구스티누스는 당대 교부들과 달리 헬라어를 거의 알지 못했다. 동방 교부들이 헬라어 문화 속에서 신학을 전개했던 것과 달리 그는 철저히 라틴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는 헬라어 공부를 몹시 싫어했다고 스스로 고백하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그는 교회사에서 가장 위대한 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혹독한 라틴 고전 교육을 받았다. 학교에서 그는 문장을 암송하며 수사학을 연마했다. 특히 키케로와 같은 고전 작가들의 문장을 달달 외우며 언어 감각을 단련했다. 그 혹독한 교육은 훗날 놀라운 열매를 맺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신학자가 되었다. 그의 문장은 논리적이면서도 음악적이다. 철학적이면서도 기도문처럼 울린다. 신학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문장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 바로 『고백록』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앞서 언급한 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은 한 사람의 자전적 고백이 아니다. 젊은 시절 방탕하게 살았던 한 인간이 훗날 교회사 최고의 신학자가 된다. 겉으로 보면 극적인 인생 역전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면 독자는 점차 깨닫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삶에는 우연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의 사소한 사건들, 학문을 향한 갈망, 끝없이 이어진 방황, 어머니의 눈물 어린 기도,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회심의 순간까지—그의 생애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손길이 조용히 개입해 있다. 한 인간이 길을 잃을 때마다 하나님은 그 길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않으시고, 때로는 멀리 돌아가게 하시면서도 결국 자신에게로 이끌어 가신다. 그렇게 그의 인생의 구석구석을 인도하시고 붙드시며 마침내 한 신학자를 빚어 가신다. 그러므로 이 책의 중심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서 있지 않다. 그의 삶을 끝까지 붙드신 하나님이 서 계신다. 설명은 하나뿐이다. 하나님의 은혜다. 그리고 이 책의 모든 문장은, 그 은혜를 향해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타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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