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5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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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국의 1920년대를 '풍요와 쾌락의 시대'로 명명한다. 1920년대는 미국뿐 아니라 서방세계가 여러 분야에서 호황을 맛본 시기다. 미국에선 '재즈 시대'로 불렸고 독일에서는 '황금의 20년대'라고 불렸다. 경제적 풍요뿐 아니라 문화, 예술, 사회 모든 면에서 활활 타오른 역동적인 시기였다. 하지만 20년대의 번영은 1929년 월스트리트 주가의 대폭락으로 끝을 맞이했다. 이후 1930년대는 대공황의 시대였고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 않던 기존 체제의 모순이 하나둘씩 폭발되기 시작했다. 결국 1939년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의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1인칭 화자 닉 캐러웨이가 소설의 실질적 주인공 제이 개츠비를 관찰하고 조명하는 이야기다. 대략적인 스토리는 이렇다. 뉴욕의 큰 섬 롱아일랜드에 닉의 대학 동창 톰 뷰캐넌이 살고 있다. 톰은 닉의 친척인 데이지와 결혼한 사업가다. 자신감 넘치지만 건방지고 거만한 성격을 가졌다. 톰은 데이지 몰래(?) 정부와 바람을 피운다. 그 때문인지 부부 사이가 좋지 않다.

개츠비는 닉의 옆집에 산다. 개츠비는 수시로 지인과 유명 인사를 자기 집에 초대해 화려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유명하다. 평소 개츠비에 호기심을 갖고 있던 닉은 우연히 그의 파티에 초대를 받아 처음 그를 만난다. 개츠비의 첫인상에 엄청난 매력을 느낀 닉은 그와 점점 더 가까워지며 여러 가지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된다. 개츠비의 엄청난 재력에 대해 세간에 여러 소문이 떠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금주법 시대에 불법 밀주와 도박으로 돈을 벌었고 데이지의 과거 연인이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설의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며 긴장을 배가시킨다.

단순히 보면 데이지를 잊지 못한 개츠비가 과거 사랑을 되찾기 위해 발버둥 친 사랑가로 읽힌다. 하지만 소설은 더 무겁고 복합적인 여러 상징을 심어놓음으로써 그 시대의 미국적인 것과 미국적이지 않은 것 사이의 긴장과 충돌을 묘사한다. 숭고함과 비루함, 정신과 물욕, 인내와 욕망이라는, 개인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가치를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탐구하고 고발한다. 통속적인 연애소설을 넘어 1920년대의 미국 사회의 모순적 단면을 상징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전은 문학사에 영웅을 남긴다.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를 통해 피예르와 나타샤를 남겼고, 괴테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와 로테를 남겼다. 카뮈는 뫼르소를, 도스토옙스키는 로쟈(라스콜니코프)를, 헤세는 싱클레어를 남겼다. 이 소설도 여지없이 매력적인 인물을 탄생시켰다. 개츠비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데이지를 향한 개츠비의 일편단심은 눈물겹다. 순수하고 진지하고 희생적이다. 개츠비의 모든 관심과 언행은 오롯이 데이지를 초점으로 한다. 가난에서 거부(巨富)가 되고, 매일 성대한 파티를 열고, 닉에게 접근한 것도 모두 데이지와의 사랑을 되찾기 위함이었다. 개츠비의 사랑은 대상의 실체와 무관하게 불변적이었다는 점에서 진한 감동이 있다.

반면 데이지는 속물적이다. 품위 있고 교양 있는 척하지만 내면에는 물욕이 가득 찬 여성이다. 남편 톰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개츠비에게 다시 돌아가는 건 쉽게 용기를 내지 못한다. 자신에게 다시 오라는 개츠비의 요청에 데이지는 잠시 흔들린다. 하지만 개츠비가 밀수와 도박이라는 불법으로 떼돈을 벌었다는 사실을 알린 톰의 고발에 마음이 다시 닫힌다. 개츠비의 사랑은 무조건적이었지만 데이지의 사랑은 조건적이었다. 개츠비는 자동차 사망사고를 낸 데이지를 대신해 범인이 되고자 한다. 이 사건의 오해로 결국 총에 맞아 사망한다. 자기 때문에 죽게 되었는데도 개츠비의 장례식에 얼굴조차 내밀지 않는 데이지의 모습은 악랄하기까지 하다. 시대의 상징성 면에서 개츠비가 정신을 은유한다면 데이지는 물질을 은유한다.

소설에서 마음을 뺏긴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자기 집에 처음 데려온 장면을 묘사한 문장이다. "그는 (...) 그녀의 무척 사랑스러운 눈이 보이는 반응 정도에 따라 집에 있는 모든 것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 같았다." 시인이자 번역가인 황유원은 일간지 칼럼에서 이 문장을 인용하며 "타인은 가끔 지옥이지만 세상을 새로이 보는 창문이 되기도 한다"고 해석했다. 매일 보는 집안의 풍경이 사랑하는 사람(데이지)의 눈으로 보니 전혀 새롭게 보인다는 의미다. 사랑이 자기 자신의 시각과 통찰을 더 깊고 넓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에게 너무 몰입한 나머지 그의 눈이 내 눈을 대체하기 때문"이라는 황유원의 관찰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소설의 명장면(명문장)을 제대로 읽어내는 계기가 됐다.

또한 소설의 마지막 문장도 인상적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조류를 거스르는 배처럼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앞으로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이다.(So we beat on, boats against the current, borne back ceaselessly into the past.)"라는 마지막 문장은 영미문학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무리로 평가받는다. 언뜻 보면 문장이 모순된 것처럼 보인다. '과거로 떠밀려가는 것'과 '앞으로 계속 전진하는 것'은 양립 난해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문장의 여백이다. 과거로 떠밀리면서도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서는 불가능이란 현실을 이겨내는 '일관된 노젓기'가 있어야 한다. 이 노젓기는 한 사람이나 한 세대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의, 여러 세대에 걸친 누적된 공감과 노력에 기반한다. 그것이 개인의 삶을 바꾸고 우리의 인생을 바꾸며 세계의 역사를 바꾼다. 작가는 물질주의의 팽배로 정신과 신앙이 오염된 미국 사회가 언젠가는 위대하게 부활할 것임을 유려한 명문장으로 희망하고 있다.

소설의 제목을 고찰하자. 개츠비는 왜 위대한 것일까. 매력적인 인물이긴 하지만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끝내 사랑을 되찾지 못한 채 총에 맞아 죽은 비극적인 인물에게 '위대함'을 수여하기엔 쉽지 않다. 그 위대함이 데이지에 대한 사랑의 집념일 수도 있고, 아메리칸드림의 화려함일 수도 있고, 화자 닉의 시선에 비친 '위대함'일 수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나는 '아이러니로서의 위대함'으로 풀이한 문학평론가 사라 처치웰(Sarah Churchwell)의 견해를 지지한다. 즉 첫사랑을 되찾기 위한 성공과 열정의 외면적 찬사를 뜻함과 동시에 도덕적·실체적 삶의 붕괴와 비극적 죽음의 허망한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함의한 것이다. 이러한 긍정과 냉소의 다층적 의미는 독자에게 열린 해석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소설의 폭을 과히 넓히는 특별한 장치가 된다.

서평을 정리하자. 대학생 때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서 처음으로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알게 됐다.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만 자신과 친구를 할 수 있다"라며 이 작품을 극찬했다. 하루키의 미화에는 호불호가 갈릴 것이지만,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인기 순문학 작가의 극찬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분명한 건 개츠비라는 매혹적 인물을 탄생시킨 것 하나만으로도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가치는 충분하다. 시대와 나이, 정신과 물질, 좌절과 희망이라는 인간 세계의 여러 층위를 묘사하고 탐구한 고전 『위대한 개츠비』를 이웃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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