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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큼의 애정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노재명 옮김 / 다산책방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 연애와 관련된 책이나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극 특유의 기름기가 느끼하고, 톡톡 튀는 상쾌발랄한 로맨틱 코미디의 가벼움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흔히 접하는 대부분의 러브 스토리가 느끼하고, 가볍고, 그저 그런 비슷한 스토리로 귀결되는 것에 지쳐있기에, 더욱이 남자라는 생체학적 감성밀도의 부족함을 극복하지 못한 채, 연애장르는 어느새 내가 피하고픈 부분이 되어있다.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얼마만큼의 애정』은 철저한 연애소설이다. 일본소설의 붐이 한국문단에서 하나의 큰 주류로 존재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시라이시 가즈후미의 존재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더욱이 무슨 무슨 상을 받았고, 저명한 문학가들로부터 추천사로 도배가 되어 있는 일본소설 특유의 과장된 홍보문구를 감안한다면, 『얼마만큼의 애정』의 표지 비쥬얼은 담백하고 간결하기만 하다. 출간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주변의 평이 상당히 좋았던 터라 평소 갖고 있던 연애소설에 대한 얼마만큼의 편견을 묵과한 채 양장본의 첫 하드커버를 넘길 수 있었다.
소설의 도입부는 큰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다. 여느 연애소설과 마찬가지로 그저 그런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질 뿐이다. 전복적이지도, 가슴이 두근거리지도 않는 서사의 흐름은 소설의 절반의 분량을 넘어가면서 급반전된다. 물론 예상치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야기의 반전(?)이 발생하면서 여느 연애소설과는 다른 깊이와 무게감을 건드리고 있다.
인간과 동물이 확연하게 구별되는 것 중에 하나가 실존하는 것과 실존하지 않는 것을 대하는 차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구속력과 그에 따른 상상력의 존재 유무로 큰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동물은 눈에 보이고, 냄새를 맡고, 귀에 들리는 것 이상의 상상추론이 불가하다. 하지만 인간은 특유의 고도로 발달된 두뇌와 이성과 상상력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감지하는 위대한 존재다.
신체적 감각을 초월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의 능력도 <사랑>이라는 절대적인 가치 앞에서는 감각 안에 종속되는 경우가 많다. 눈에 보여야 하고, 귀에 들려야 하고, 냄새를 맡아야 하며, 만져져야만 사랑을 확인하며 증명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더욱이 이성간의 사랑은 그 경향이 다분하여 수많은 에로스의 사랑의 분쟁 속에서 이를 목도하기도 한다. 영원히 사랑하고 평생 헤어지지 말자며 약속하는 수많은 무리들의 외침이 어쩌면 신께서 보시기에는 소음수준의 가벼움으로 비춰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동일한 기준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사랑을 이루는 가장 큰 자원으로 <믿음>이 존재한다. 가장 큰 믿음이 가장 큰 사랑을 추동한다. 소설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랑한 마사히라에 대한 아키라의 마음, 그리고 뜨겁게 사랑했지만 믿음이 결락되어 5년의 시간을 원망과 그리움으로 보낸 마사히라의 모습은 사랑에 있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차이, 그리고 믿음이라는 절대적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하겠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적 소재로 사용되는 <실명>이라는 것을 생각했다. 사전적인 의미로는 시력을 잃어 앞을 못 보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주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존하는 것이 많이 있다. 그런 차원에서 실명의 의미를 보다 넓고, 고차원적으로 받아들이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져지지 않지만, 반드시 실존하는 것을 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할 수도 있을게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3차원의 세상. X축과 Y축과 Z축만이 존재하는 3차원의 우주가 인간의 오감으로 감지할 수 있는 한계다. 하지만 보다 높은 차원의 것을 보고자 하며, 볼 수 있을 때에 인간을 창조하신 신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사유가 밀려온다.
제목 『얼마만큼의 애정』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사랑에 있어서 얼마만큼 보이는 것과 얼마만큼 사랑한다는 것이 절대 동의어로 성립될 수 없다는 깊은 인식을 확인한 채, 그로테스크한 표정을 짓고 있는 책의 앞표지의 여자를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를 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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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