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나에겐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빈약하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친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셨고 외할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외할아버지의 인상착의 정도가 할아버지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의 전부다. 주변에 친구들이나 직장동료, 선후배들이 할아버지와의 생활이나 추억담을 얘기할 때면 상대성에서 오는 강한 부러움이 발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리라.

  나이가 들어가는 것과 지혜를 터득해간다는 것은 어림 동의어로 간주할 만하다. 나 또한 29년의 인생을 살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몰랐던 인생의 깊이와 넓이를 배워가고 있음을 많이 느끼고 있다. 이 세상 그 어떤 교과서나 전공서적이 줄 수 없는 <삶>과 <경험>에서 오는 높은 차원의 <지혜>라는 것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을 공경하며 그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자에게 쓴 편지형식의 지혜담으로, 공고히 다듬어진 노년의 혜안을 두 세대를 넘어 전달하는 <삶>과 <지혜>의 목소리다. 여느 아이들과는 심히 다른 아이(저자의 손자는 자폐증 아이임)인 손자 샘에게 저자 자신이 겪은 사랑과 상실과 아픔이라는 인생의 깊이 있는 주제를 얘기해 주고 있다. 어린 샘은 세상 어느 누구한테도 쉽게 얻을 수 없는 노년의 혜안에서 오는 득도된 자의 지혜 덩어리를 자신의 할아버지로부터 얻고 있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참으로 미묘한 특성이 있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관련된 착각을 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적잖다. <스쳐 지나가는 것>과 <영원히 지속되는 것>의 차이를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또한 지금보다 더욱 젊은 날에 삶의 혜안이 부족하여 <잠시>와 <영원>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채 <현재>라는 시간을 얼마나 무의미하게 소비했던가? 어른이 되어가면서 시간의 특질과 그에 대한 소중함을 더욱 깊이 알아가게 된다는 공식은 인생사 불변의 불문율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네 엄마 아빠는 과거의 고통을 미래에까지 가져가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샘, 너도 자라면 그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알게 될 거야. 과거에 매인 사람은 미래를 향해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단다.   <p20>

  66억의 인류가 지구라는 곳에 공존하고 있다. 다양하다는 얘기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서로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 안에서 개인의 달란트를 극대화할 때에 그 사회는 진보하고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different) 것>과 <틀린(incorrect) 것>을 혼동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것으로 간주하는 편견을 가진다. 더욱이 비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편견과 비판이야말로 정말 틀린 것이다. <나>만 있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너>만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있다는 것. 나와 너,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그것을 존중하며 살아갈 때에 지구라는 집의 평수는 더욱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샘,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건 그냥 다른 것일 뿐이다. 그렇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다. 명심해라. 네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이 네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p33>

  인간은 많은 두려움을 갖고 살아간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내 본모습을 들키는 것에 대한 두려움, 존재감을 상실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인정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주위의 기대를 버리고 본래의 자기답게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 사람들은 이런 두려움과 싸운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이러한 두려움들이 우리의 내면과 영혼을 파괴시킨다는 것이다. 절대악인 두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길은 두려움의 내포적 반의어인 <사랑>이란 단어에서 찾을 수 있다. 우주적이고 신성하며 자연스러운 존재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것이 신이든, 친구든, 부모든, 아님 사랑하는 이성이든, <사랑>은 반드시 <두려움>의 농도를 희석시킨다.
  나는 물속에 가라앉는 사람과 물에 뜨는 사람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가라앉지 않고 물에 뜨려면 물과 싸우기를 멈추고 물을 믿으면 된다. 몸에 힘을 빼고 누워서 물에 몸을 밭기면 되는 것이다.   <p67>

  적을 만들지 말라, 는 말이 있다.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일게다. 분명 좋은 말일테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이 말에 100%의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 싸울만한 가치가 있을 때에는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불관용, 거짓, 비정의, 비인권, 차별, 편견 등. 이런 것들과는 싸워야 한다. 인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하는 것들에 대해 묵과하고 비굴해하는 이들은 역겨울 정도로 싫다. 신께서 인간에게 <용기>라는 내면적 힘을 주신 이유는 반드시 써먹을 사용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용기가 없는 자들은 자기 자신과도 싸우지 못한다. 하지만 명심하자. 인류의 역사를 다시 썼던 수많은 위인들의 공통점은 바로 자기자신은 물론, 잘못된 것에 대항해 싸우는 자들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로 인해 싸울만한 가치가 있는 적을 적잖게 만들었다는 것을.
  샘, 개인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해 싸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난 네가 너 자신을 위해서도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네 분노를 잘 다스려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분노로,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에너지로 승화시켰으면 더욱 좋겠다. 그럴 수 있다면 훗날 네가 할아버지가 되었을 때, 네 손자 손녀들이 훨씬 더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라날 수 있을 테니까.   <p199>

  마음에 넓은 그릇을 소유한 사람은 좁은 그릇을 소유한 사람에 비해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높다. 미국 부의 51.7%를 차지하고 있는 유태인들을 연구하는 석학들은 동일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태민족 중에는 다분히 마음의 그릇이 큰 인물들이 많다는 것을. 넓은 마음에 나와 너와 우리를 품고, 더 나아가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우주까지 품으며 전진할 때에 역사는 다시 쓰여지는 것이다. 정치력, 경제력, 명예, 노벨상 등의 유태인들의 표상은 바로 그들의 유난히 <넓은 마음의 그릇>에서 연유했다는 것을 나는 심히 믿는다. 

  저자 고틀립 박사는 수많은 지혜의 이야기를 샘에게 전달한다. 아직 글을 읽을 수 있는 아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읽게될 샘을 기대하며 사랑의 마음으로 샘과 소통하려는 의지를 느낄 수 있다. 사랑으로 점철된 할아버지의 정신적 지혜의 유산은 두 세대의 기나긴 세월의 벽을 넘어 샘에게 반드시 빛을 발하며 전해질 것이다. 

  비록 자폐증으로 남들과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샘은 행복한 아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할아버지로부터 매우 소중한 지혜담을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샘이 자라서 이 책을 읽게될 때면 자기뿐만 아니라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할아버지가 자신을 향해 보낸 특별한 편지를 읽었다는 사실에 대한 가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보낸 할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도전을 얻고 감동을 받았다는 것. 그리고 샘을 한 번 기억했다는 것. 비록 남들보다 언어가 더디고 움직임이 부자연스럽다 하더라도 그런 특별한 행복을 자기 인생의 조각으로 채우고 있는 샘은 분명 행복한 아이임이 틀림없다. 
 

내가 어두운 터널에 있을 때,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터널 밖에서 어서 나오라고 외치며 출구를 알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기꺼이 내 곁에 다가와 나와 함께 어둠 속에 앉아 있어줄 사람. 우리 모두에겐 그럼 사람이 필요하다.
<p205>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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