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데기
황석영 지음 / 창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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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인터넷서점이라는 YES24는 1년 365일 다양한 이벤트를 시행한다. 현재 진행중에 있는 이벤트중에서 다소 감질맛나는 것이 하나 있는데 '제 4회 네티즌 추천 한국의 작가'라는 코너가 그것이다. 이 코너는 각기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눠 네티즌투표를 하고 있다. '우리시대 대표작가', '차세대 우리작가', '다시 만나는 작고작가'. 이렇게 세 가지 항목으로 네티즌들의 투표를 유도하고 있는 코너다. 뒤의 두개의 항목은 차치하자. 첫 번째 '우리 시대 대표작가'에 대한 네티즌 관심도와 투표율이 단연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의 경우 '노벨문학상 후보감'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 네티즌들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현재 투표가 진행중이어서 아직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투표집계로 보아 1위가 바뀔 것 같지는 않다. 1위에는 단연 황석영이라는 이름 석자가 올라 있다.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보다 높은 지지율인 24%를 획득하여 그 유명한 조세희나 그 위대한 이문열을 멀찌감치 앞서고 있다. 왜 네티즌들은 황석영에게 '우리 시대의 대표작가'이자 '노벨문학상 후보감'이라는 영광의 몰아주기를 감행하고 있는 걸까? 다시말해서 황석영은 왜 네티즌과 독서매니아들로부터 이 시대의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데 주저되지 않는걸까? 그 의문점과 황석영의 현재가 만나는 곳에 『바리데기』라는 작품이 있다. 

  황석영의 신작 『바리데기』를 만났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한 여인의 청춘을 설화 '바리공주'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아 20세기말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대략 20여년의 시간동안 북한과 중국과 영국이라는 공간에 녹여놓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소설 내의 모든 것을 설명하는 1인칭주인공시점의 화자, 바리가 있다. 

  바리는 태어날 때부터 기구한 운명이었다. 아들을 몹시 갈망하는 집안에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나 출생하자마자 어머니로부터 산속에 버려진다. 다행히 기르는 개 흰둥이가 산속에 버려진 바리를 물고 집으로 돌아와 구사일생한다. 
  바리는 어렸을 때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살 때에는 여느 집안 부럽지 않은 평범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점점 심해져 가는 기근과 고약한 북한의 정치체제로 인해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때 바리는 바로 윗언니인 현이언니와 할머니, 그리고 자신의 생명의 은인인 흰둥이의 일곱번째 새끼인 칠성이와 함께 두만강을 건넌다. 
  중국땅에서도 고난은 연속이다. 불법체류자라는 신분때문에 산속에 기거하여 살다가 아버지가 떠나가고, 할머니와 현이의 죽음,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의지처였던 강아지 칠성이까지 죽음을 맞이한다. 배려심이 많은 미꾸리 아저씨를 만나 발맛사지업소에 취직하여 마사지도 배우고 샹언니를 만나 나름대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도 잠시, 역시나 불행은 바리의 삶을 덮쳐온다. 
  샹언니와 함께 먼 이국땅으로 향하는 배에 몸을 옮기게 되고 그곳에서 인권말살의 잔혹함을 겪으며 간신히 살아서 영국에 도착한다. 어린 나이여서 몸이 팔리지 않은 채 중국집에서 일하게 되고 마음씨 좋은 사장의 소개로 다시 발마사지업소에 취직하게 된다. 그곳에서 여태까지 경험했던 것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되는 바리.. 같이 일하는 루나언니의 집에 동거하게 되고 파키스탄 남자 알리를 만나 결혼을 한다. 결혼의 행복도 잠시, 전쟁이 터져 알리는 사라지고 알리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시간이 지나 알리와 다시 조우하게 되고 그와의 사이에서 두 번째 아이가 생긴다. 
  알리와 함께 런던시내를 거닐던 어느날 폭탄테러를 목격하면서 소설은 종료된다. 

  여기까지의 스토리는 『바리데기』의 이야기 분량의 딱 절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바리데기』는 오직 주인공 바리의 관점에만 의지하여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축은 두개다. 하나는 바리의 하루하루 일상이고, 또 하나는 바리의 영험한 능력이 빚어내는 꿈과 환상의 몽환적 경험이다. 이 이야기의 양대 축이 끊임없이 교차되면서 소설의 흐름을 진행하고 있다. 바리는 죽은 자와 소통하며 동물의 마음과 교통할 수 있는 영험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 능력에 의지하여 현실에서 직면하는 의문과 번뇌를 꿈과 환상에서 풀어놓는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관찰하기도 한다. 더불어 이미 죽은 칠성이와 할머니의 혼을 만나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기도 하고 할머니로부터 '바리공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무엇보다 꿈과 환상에서 끊임없이 찾아 질주하는 '생명수'에 대한 존재의식과 모험심이 바리 자신의 의지를 점점 불태우고 있다. 작가 황석영은 북한에서 태어나서 중국을 거쳐 영국에 이르기까지의 바리의 20여년간의 인생여정을 일상적인 일기체로 말하는 동시에 바리의 영험한 능력에 기인하는 꿈과 환상을 매개체로 현실에 대한 해석과 그 소중한 '생명수'에 대한 갈급함을 교차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바리데기』는 매우 우울한 소설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바리의 관점은 이성적이면서 건조한 문체로 불행으로 점철된 자신의 삶을 관찰하고 있다. 바리의 시선이 닿는 곳은 전부 암울하다. 바리의 시선은 자신의 기구한 삶에서부터 주변 사람들의 다양한 불행함에까지 관조한다. 더나아가 남북분단, 북한의 기근, 빈부 및 국가적 양극화 현상, 911 테러,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 런던 테러, 쿠바 콴타나모 수용소 등으로 대변되는 20세기말 세계사의 어두운 장면까지 관통하고 있다. 어쩌면 바리가 자신의 꿈과 환상가운데 찾아나선 '생명수'에 대한 갈급함은 현실에서 관찰했던 세상의 어둡고 암울하고 억울한 것에 대한 해결책을 기대하는 갈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소설의 뒷부분에 '생명수'를 찾기 위해 서천의 끝까지 여행하는 바리의 여정을 압권의 몽환적 문체로 묘사하면서 생명수의 존재를 철저히 차단하고 있다. 과연 바리가 구한 생명수는 어떤 것이었을까? 생명수는 과연 존재하는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황석영의 대답은 역시나 단호하다!
"숨은그림찾기입니다. 글쎄요, 이 작품에서 생명수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리고 바리는 그것을 찾기라도 했을까요? 이는 독자들께 던지는 질문이 될 것입니다."   <p301, 작가인터뷰中> 

  작가는 생명수의 존재여부와 생명수의 실체에 대한 답을 독자가 찾아야 할 과제임을 피력하면서 생명수에 대한 폭넓은 해석, 그리고 이 세상의 어둡고 암울함에 대한 책임의식을 독자들에게 은근히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 황석영은 '생명수' 자체보다는 '생명수를 알아보고 찾고자 하는 마음'이 본질이며, 바로 그것은 빈부와 국가와 인종과 체제에 초월하여 진행되어야 할 인류의 숙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표준어와 함경도사투리, 현실세계와 몽환적 꿈과 환상의 세계, 한 여인의 기구한 청춘과 20세기말 현대사의 어두운 사건들이 교차되고 반복되는 이 대서사시는 작가 황석영의 상상력과 고집, 작가의식과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는 걸작이라 할 만 하다. 앞서 서두에서 언급한 YES24의 '우리 시대 대표작가' 투표의 황석영 쏠림 현상은 바로 이러한 그의 괴물스러움을 입증하고픈 문학매니아들의 마우스 클릭이 모아진 결과가 아닐까?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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