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인생을 역전시켜라 - 최윤희가 제안하는 이 시대의 성공학
최윤희 지음 / 여성신문사 / 2005년 12월
평점 :
품절


특별한 독서습관이 있다. 내가 구입한 책보다 남에게 선물받은 책을 먼저 읽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남이 나에게 선물을 하는 의도에는 여러 특질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의 독서기호와 책의 내용과 메세지를 고려하여 선물하는 것이 대체로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여기에 중요한 것 하나를 추가하자면 바로 <현재성>이라는 것이다. 책을 건네는 이가 나에게 건네주는 시간의 현재성은 결코 묵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상대방의 손을 떠나 내 손에 책이 들어온 시간과, 그 책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의 갭이 멀면 멀수록 마음의 양식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한 현재성이라는 시간가치가 퇴색될 수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내가 내 자신이 아닌 다른 이로부터 받은 책을 나름대로 소중히 여기며 빨리 읽기를 원칙으로 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뜻하지 않은 책이 손에 들어왔다. 지인에게 선물받은 것도 아니고, 이벤트로 당첨된 도서도 아니다. 이벤트에 당첨되었던 『바람이 흙이 가르쳐주네』를 흥미있게 읽은 후 쓴 서평이 인터파크 이 주의 우수 독자리뷰에 선정되면서 해당 출판사인 여성신문사로부터 감사의 의미로 『당신의 인생을 역전시켜라』를 받은 것이다. 여성신문사에서는 동봉된 편지를 통해 이 책이 자사의 스테디셀러임을 피력한 뒤 은근히 빨리 읽기를 독려하는 뉘앙스(?)를 풍겨주었다. 그리하여 <Right Now 정신>을 발휘하여 읽어야 할 수많은 책들을 뒤로 미룬채 한달음에 달려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의 인생을 역전시켜라』는 [절망하기보다 오히려 희망이라는 보석을 '캐'낸 사람들]이라는 책의 앞표지 문구가 말해주듯 절망 가운데서 좌절하지 않고 용기와 열정으로 새로운 삶을 영위했던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저자 최윤희는 자신의 고백을 전체 분량의 2할정도 할애하고 있으며, 나머지 8할은 지인들의 다양한 삶의 편린들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여성들의 힘을 믿는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과거 여성들이 가진 달란트는 유교가 만들어낸 습속과 남성우월주의의 영향 아래 잘 발휘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작금에 이르러서는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참여가 당연한 것으로 장려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남성보다 뛰어난 것이 입증된 여성들의 논리&언어 능력과 섬세한 감성이 리드미컬하게 활동력을 갖고 우리사회에 침투할 때에 더욱 발전되고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은 자명하다.  

  저자 자신을 위시하여 소개되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역경 속에서 희망을 잃지 않고 작고 크게 승리한 삶을 살았다. 이혼, 사별, 남편의 사업 부도, 건강의 문제 등 생각지도 않게 쓰나미처럼 덮쳐버린 인생의 순간에서 그녀들은 충분히 <강>했고 훌륭히 <승리>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완벽하게 소외계층을 벗어낫다고 할 수 없는 여성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그녀들의 인생 역전담을 박수와 경외로 상찬하는 데 전혀 인색할 필요가 없다 하겠다.  

  한 가지 지적하고픈 부분이 있다. 저자는 개구장스런 문체로 활력있고 열정적으로 인생을 역전시킨 여성들의 삶을 대변하고 있다. 저자가 대변하는 대부분의 내용이 좋았지만 한 가지 거슬리는 저자의 관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가 남성을 바라보는 안목에서 다분히 강성적 페미니즘을 목도했다. 여성에 대해서는 절대적으로 상찬하지만 남성에 대해서는 비아냥거리는 표현의 문구가 적잖다. 57페이지에 실린 저자의 주장을 보자.

  사회적으로도 여성의 힘은 절대적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씨랜드 사건에서도 이장덕이라는 여성이 없었다면 아마도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흐지부지되었을지 모른다. 신창원 사건에서도 역시 최은이라는 여성이 없었다면 그렇게 신속하게 해결될 수 없었을지 모른다.
  지금 우리나라를 한번 보자.
  남자들에게 맡겨놓은 우리나라의 모습은 참담 그 자체다. 입으로는 개혁입네 사회 정의입네 떠들어대면서 과연 그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가.   <책 내용중, p57>

  과거 몇몇 사건에서 드러난 여성의 활약이 사회적으로 여성의 절대적 힘을 대변하는 논거로 제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최근 불거진 신정아씨 사건을 논거로 '역시나 여자들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엇과 다른 것인가? 더욱이 작금의 대한민국 사정을 거론하며 <참담>하다고 평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강한 거부감이 발생한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절대로 참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 세계 어느나라와 비교해도 꿀릴 것이 없는 살기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쑥대밭이 된 세계 최빈국이 불과 몇 십 년만에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 희생하며 승리한 남자들의 존재감은 보이지 않는단 말인가? 더욱이 GDP 2만불을 넘어 3~4만불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사회적 일렁거림을 <참담>하다고 표현하며 남자의 탓으로 돌리는 저자의 안목은 좌정관천이요, 정저지와의 극치를 보여준다. 

  19세기 여성의 인권회복을 기치로 등장한 페미니즘은 본래 좋은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페미니즘의 색깔이 변색되고 성향이 무서워지고 있다. 어느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의 존재감을 부정하며 여성의 절대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이 본래 동등하며 평등하다는 인류 보편의 이상과 상식을 넘어선, 여성우월주의라는 또다른 역발상적 신조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본질과 비본질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이러한 행태에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다. 간간이 책에서 남성을 바라보는 저자의 경향을 목도하면 다분히 여성우월적이며 여성주권적인 냄새를 강하게 느낀다. 절대 공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라는 속담에 저자는 심히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듯 하다. 세 번에 걸쳐 인용하면서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잘된다는 의미로 수정하여 인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윗속담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대에서 결코 맞는 말이 아니다. 하지만 저자가 위의 속담을 반박하는 논거가 수준미달이다. 암탉이 우느냐 울지 않느냐의 문제는 비본질이다. 본질은 <어떻게 우느냐>는 것이다. 나는 저자보다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내 앎과 이상과 가치관의 기준에서 확신하는 나름의 진리가 하나 있다. 여자의 <지혜>는 자신을, 가정을, 국가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우냐 안우냐의 문제가 아닌 어떻게 우느냐의 문제. 그것이 본질이다. 

  내가 지적한 저자의 페미니즘적 성향에 대한 반박이 책 전체의 존재감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남성관에 대해 일부분만 보고 성급하게 일반화하여 반론하는 것일 수도 있을게다. 책 전체의 내용이 주는 풍성함의 색깔은 충분히 역동적이며, 충분히 유머스럽고, 충분히 힘이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인생의 IMF에서 열정과 도전을 갖고 희망찬 삶을 살았던 수많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오롯하게 감동적이며 경외스럽다.  

  여성은 위대한 존재다. 침묵적이며 수동적이기보다 자신과 가정과 사회에서 적극적이며 역동적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나는 지지한다. 단! 또다른 위대한 존재인 <남성>을 존중하며 함께 나아갈 때, 라는 전제 앞에서 말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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