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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4일 거리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05년 9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이라 할 수 있는 아쿠타가와상 수상경력의 요시다 슈이치의 『7월 24일 거리』를 읽었다. 본래 이 소설의 존재도 모르고 있던 터에 『한밤중에 행진』을 구입하면서 함께 동봉된 이벤트도서로 만나게 된 것이다. 200페이지가 채 안되는 자그만 양장본의 이 연애소설은 꽤 섬세한 여인상의 묘사를 읽는 즐거움에 한달음의 속도로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의 도입부터 주인공 혼다의 감상적 성격은 여실히 드러난다. 가본 적도 없는 포르투칼의 리스본이란 도시의 지형을 자신이 살고 있는 자그만 지방도시에 대입한다. 예컨데 버스를 타는 '마루야마 신사 앞'이란 정거장 이름을 '제로니모스 수도원 앞'으로 부르며, 재개발 덕분에 항구에 조성된 '물가 공원'은 '코메르시오 광장'으로 부르는 식으로 말이다. 일본의 소박한 지방 도시를 리스본 시가지와 완벽하게 겹쳐서 생각하는 혼다의 공상이 소설 전체의 연애의 맥을 암시하는 것처럼 인상적이다.
주인공 혼다는 남동생 코지의 여자친구인 메구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어렸을 적부터 학교와 동네에서 최고의 얼짱이며 인기가 높은 남동생의 비쥬얼과 비교하여 메구미의 별볼일 없는 평범함에 경제적 손해가 계산되었기 때문이다. 어느새 코지의 아이를 갖게된 메구미 앞에서 냉담하기 그지 없는 혼다는 메구미의 솔직한 연애관을 듣게된다. 인기 많은 남자가 좋다는 것부터 <실수>하고 싶지 않은 의지에 이르기까지 메구미의 연애관은 혼다에게 웃음과 냉담함을 동시에 안겨준다.
정작 흥미있는 것은 메구미의 처지와 연애관이 혼다의 그것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혼다 자신도 고등학교 시절에서부터 동경해왔던 사토시와 여러가지면에서 어울리지 않는 관계가 아닌가? 혼다 자신이 메구미를 싫어했던 그 이유 그대로의 기준에서 사토시와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힘겨운 관계인 것이다. 메구미의 존재는 마치 혼다 자신의 거울임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혼다는 메구미를 싫어하며 거부한다. 그것이 자기 자신의 모습인지도 모른채..
그토록 사토시를 동경하며 갈망해왔던 혼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토시의 작은 마음을 얻은 혼다는 행복하다. 하지만 사토시의 마음에 대한 확신과 믿음이 서지 않는다. 메구미에게 코지를 좋아하는 것은 힘겹고 버거운 일이며 <실수>로 단정하고 훗날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얘기하는 혼다. 비슷한 처지인 자신의 상황을 인지하면서 소설의 마지막, 사토시를 향해 도쿄로 향하는 혼다의 방향성은 역설적이지만 강렬하다.
"그러니까 나도, 한 번쯤은 실수를 해보겠다고."
나는 열차에 올라타면서 그렇게 말했다. 실수하지 않기 내내 웅크리고 있는 것보다, 실수를 저지르고 우는 한이 있어도 움직여보려 한다. <책 마지막, p188>
한 사람의 존재를 색깔로 표현할 수 있을까? 예컨데 조용하고 침묵적인 사람에게 검정, 튀기 좋아하고 독특한 이미지를 풍기는 사람에게는 빨강, 여성스럽고 현모양처의 느낌을 준다면 분홍 등으로 말이다. 사실 색깔이라는 것은 다분히 시각적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시각적인 관점에서 보고 그 느낌 안에서 시각적으로 색깔화하는 것은 무리가 없는 흥미있는 것일게다. 하지만 외연적 비쥬얼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 습관, 가치관을 모두 포함하여 상징적으로 색깔화하는 것은 상당한 무리가 있다. 인간은 <시각적>인 것으로 단정될 수 없는 훨씬 고차원적 존재감을 지닌 영장이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소설 속에서의 주인공 혼다와 사색적인 경비원 남자와의 인간 색깔론은 매우 흥미롭다.
하늘의 별은 아름답다. 맑은 날 시골하늘에서 보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하다.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대한 특질을 사유해 보자. 하늘의 별은 우리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며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급함과 그에 따른 최소한의 신비감. 그것이 <별>이라는 존재가 갖는 <아름다움>의 성격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며 갈망한다. 하지만 정작 내 것이 되었을 경우, 즉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경우, 신비감은 줄어들고 초심은 반감된다. 이런 측면에서 어쩌면 인간의 <사랑놀이>는 <신비감놀이>와 동의어로 견주어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신비한 것에 대한 열망과 갈증, 그리고 그것을 성취한 뒤의 변화는 인간의 사랑이 얼마나 유한적이며 경제적인가를 보여준다 하겠다.
"저, 댁에게는 무슨 색깔로 보이는데요?"
나는 그를 마주 쳐다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의 시선이 내 머리끝에서 발끝으로 내려간다. 그러고는 그만 입을 다물어버리고 만다.
"안 보여요?"
나는 슬쩍 장난을 치듯 물었다. 그는 안타깝다는 듯이 "네."하고 대답한다.
"아마, 말을 해서 그럴 거예요. 말을 나눈 사람은 색깔이 안보이는 것 같더라고요." <책 내용중, p153>
과연 혼다는 사토시와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소설은 사토시에 대한 혼다의 방향성만을 확인한 채 함구한다. 어쩌면 혼다의 사랑은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이미 그녀도 그것을 알고 있을터. <실수>하지 않기 위해 웅크리고 있기보다는, <실수>를 저지르고 우는 한이 있어도 한번 해보려 한다!, 라고 다짐하는 혼다의 강렬한 의지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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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다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