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지도를 넓혀라 - 광개토 태왕 코드 27
윤명철 지음 / 마젤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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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부터 시작된 대한민국 내 고구려 열풍은 아직도 가실 줄을 모른다.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되었던 「주몽」을 위시하여 「연개소문」, 「대조영」 등의 사극은 고구려 열풍을 불러일으킨 주역이기도 하다. 더욱이 9월에 방송될 「태왕사신기」는 배용준이라는 한류스타와 더불어 큰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당분간 고구려 열풍은 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우경화와 중국의 동북공정 등 동아시아 강대국들의 위험한 역사인식 가운데 '고구려'라는 민족사 최대의 중흥기에 대한 조명이 한국인들에게 강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의 현재성의 본질을 깊이 사유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은근히 '약자 콤플렉스', '크기 콤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난 수 천 년동안의 민족사를 반추하면 이런 한국인들의 콤플렉스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외세의 침략을 당하기에 바빴고, 작은 반도국가로서의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으며, 현대사는 이마저도 절반으로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작은 나라이자 약소국으로서의 한맺힌 유전자가 한국인들의 몸 속에 흐르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최근 대한민국에 고구려 향수가 만연하게 퍼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구려는 '약한 것', '작은 것'으로 대변되는 보편적인 한민족 DNA와는 역설적으로 동아시아의 중핵이자 초강대국이었기때문이다. 바로 그 찬란했던 초강대국 고구려의 중심에는 광개토 태왕이라는 위대한 군왕이 있다.

  광개토 태왕을 모델로 삼아 새로운 세계와 이상향을 실현시켜가는 완벽한 리더의 자세를 현재적 환경에서 재조명한 『생각의 지도를 넓혀라』를 읽었다. 이 책은 '광개토 태왕 코드 27' 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더욱이 책의 띠지에 '꿈을 실천한 완전한 인간모델', '잃어버린 땅, 만주의 광활한 대륙을 달린 광개토 태왕을 따르라!' 는 문구가 적혀 있어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신감을 은근히 발산시키는 듯 하다. 저자는 역사학과 교수답게 1,600여년 전의 광개토 태왕의 혼과 지혜의 유전인자를 현재의 시간대로 타임워프시키고 있다. 광개토 태왕의 지혜와 경험을 창조, 개방, 조화라는 3가지 측면으로 나누고, 이를 다시 27개 코드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학자로서 고구려를 공부하면서 광개토 태왕이란 존재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그가 태어나 성장하고 왕이 되어 고구려를 다스렸던 시기가 우리가 사는 현시대와 꼭 닮아 있다고 언급한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21C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시대이다. 예측하지 못했던 신지식의 탄생, 정보과학이나 생명공학의 급속한 발달, 세계화의 이름으로 세계질서의 전면적인 재편 등이 그 동안과는 너무나 다른, 낯선 환경으로 점철된 시대임을 증명한다. 특히 한국, 중국, 일본 및 러시아 일부 지역의 경우, 자국의 안녕을 지키고 서구인들과 경쟁할 수 있는 힘을 갖추기 위해 동아시아공동체를 수립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가 반면, 동아시아 내부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팽창하고, 특히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 작업을 통해 중화제국주의를 노골적으로 꾀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국력과 세계화라는 논리가 절대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작금의 혼란스러운 시대에 고구려라는 국가, 그리고 광개토 태왕이라는 인물의 존재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광개토 태왕이 누구인가? 그는 18세에 왕위에 올라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소국 고구려를 동아시아의 중핵으로 만든 불세출의 영웅이다. 사실 그가 태어난 당시의 고구려 사정은 좋지 못했다. 백제와 벌인 대결에서 패배한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데다, 동아시아의 국제질서가 새롭게 재편되면서 북방에서 내려온 선비족과 요동지방을 놓고 군사대결을 벌이고 있었다. 나라는 어지러웠고 백성들은 굶주렸다. 그런 어려운 시대에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백성들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백제와 거란을 공격해 국민들의 패배감을 씻어주고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또한 신라에도 관심을 기울였고 가야까지 세력권에 넣으려 했다. 요동지방을 완벽하게 장악했고 북부여지역까지 직접 통치하기도 했으며, 동으로는 두만강 하구와 연해주 남부를 차지했다. 

  광개토 태왕은 정복자를 넘어서는 영웅이었다. 강력한 국가의 건설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군사까지 아우르는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을 창조해냈다. 그는 만주벌판을 누비는 정복자이기에 앞서 훌륭한 정치가였으며, 담덕이라는 그의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철학자였으며 종교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예술가적인 섬세한 감성과 뛰어난 학자 못지않은 지성을 함께 갖고 있었으며, 시대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예리한 통찰력을 지니고 있기도 했다. 21C 작금의 혼란스럽고 변화무쌍함 속에서 광개토 태왕의 이러한 다양한 리더쉽의 편린들이 재조명되고 연구해야 할 가치가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나는 고구려 시대의 역사를 잘 인지하고 있지 못하다. 광개토 태왕 하면 영토를 넓힌 왕, 정복자 정도로 각인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리더쉽이 큰 것과 작은 것을 동시에 추구했던 균형적이고 조화의 리더쉽이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크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힘이 느껴진다. 큰 것은 선이 굵고 장엄하다. 뭔가 한계를 뛰어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유가 분명치 않은데도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너나 할 것 없이 큰 것을 지향하는지 모르겠다.   <p20>
  작은 것은 귀엽다. 못나도 아름답다. 괜스레 안아주고 싶어진다. 포악한 맹수일지라도 새끼는 귀엽에 느껴지지 않는가. 또한 보는 사람을 위축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한다. 목표지향적인 큰 그림가ㅗ 함께 때로는 잠시 앉아서 쉬어갈 수 있는 작은 그림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큰 것만 추구하다 보면 작은 것을 보지 못하기 쉽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큰일 또한 이룰 수 없게 된다. 결국 그랜드 디자인에는 비전과 함께 작은 그림을 포함하는 함축적이고 포용적인 내용이 함께 들어가야 한다.   <p22>


  광개토 태왕의 그랜드 디자인에 큰 것만이 들어갔다면 그는 아마 지금의 평가보다는 절하되었을 것이다. 만약 그가 영토의 팽창이나 국가의 부강만을 목표로 하는 큰 그림만 그렸다면 다른 전제군주나 성공한 폭군들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뛰어난 전략가나 영토를 넓힌 정복군주 정도로 후세에 기억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백성들의 삶이 풍요롭도록 농사를 발전시키고, 무역을 활발하게 전개했고,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평양에 9개의 절을 세우기도 했다. 큰 것과 작은 것의 가치를 정확히 통찰했고,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워 실행한 유능한 왕이었다. 큰 그림을 우선으로 하되, 여기에 작은 그림을 잘 섞어서 그려놓은 태왕의 리더쉽을 본받을 필요가 있음은 당연하다.

  고구려는 다민족국가이자 다문화국가였다. 주변국가들과 속국들을 최대한 흡수했다. 그리고 각기의 장점들을 균형있게 조화시키는 힘이 태왕에게는 있었다. 유목민과 농경민, 수렵민과 해양민의 강점들을 조정하고 정리하여 국가의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승화하였다. 한때 '노마드'라는 단어가 메스컴에서 유행을 했었다. 이동과 가속의 논리로 대변되는 유목민들의 특장점이 무조건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다. 21C는 기동성만 갖고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은 물론이요, 특히 국가나 기업은 말 그대로 안정과 정착을 최고 목표로 삼고 있다. 전근대사회에서의 농경문화의 중흥과 21세기 디지털문명도 정착문화의 산물임을 기억하자. 정답은 자명해진다. 유목민의 기동성과 수렵민의 민첩성, 농경민의 안정성, 해양민의 회귀성을 접목한 광개토 태왕의 혜안과 통찰력은 '노마드'의 그들보다 훨씬 선진적인 것이다. 섞임의 문화, 나눔의 문화가 바로 고구려를 이루는 근간이었던 것이며 이는 20세기 초강대국 미국이 다시한번 입증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광개토 태왕의 자존심 회복 정신에 크게 매료되었다. '자의식'이라는 것의 개념이 무엇인가? '내'가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 내가 바로 내 삶과 일의 주체임을 자각하는 것이다. 고구려는 철저하게 조선(고조선)의 후예임을 자각했다. 고구려의 정체성이 명확했던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고구려 창업정신인 '다물'은 '되찾자', '회복하다'의 뜻이라고 한다. 광개토 태왕은 왕위에 오르자마자 가장 먼저 백제를 공격했다. 태왕의 할아버지인 고국원왕이 바로 백제 근초고왕과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왕이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는 전무후무한 자존심의 상처를 회복키 위해 4만대군을 이끌고 남으로 향해 할아버지의 원수이며 오랜 숙적이었던 백제를 쳐서 석현 등 10여 성을 빼았었다. 위축된 국민들의 사기는 한껏 진작되었고 고구려 사회를 자신감으로 불질렀다. 또한 거란을 정벌했고 요동을 되찾았으며 신라를 속국으로 두기도 했다. '다물' 정신의 승리이자, 국민적 자신감의 만연함이었다.

  최근 고구려 향수의 열풍 속에서 광개토 태왕의 강력한 힘이나 정복정신, 카리스마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들이 의외로 많은 듯하다. 이는 태왕의 리더쉽을 잘못 이해했거나 지엽적으로 일반화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작금의 시대에는 박정희식 리더쉽이 필요하지도 않으며 통하지도 않는다. 어설픈 영웅주의나 마키아벨리즘적인 생각이 한국민들에게 만연해 있는 이상 더이상 발전이 없다고 하겠다. 새로운 리더쉽이 필요하다. 더 이상 영웅이나 군주, 혹은 총수 같은 특별한 사람이 군림하면서 전체를 끌어가는 시대가 아니다. 허브코헨의 협상의 법칙에 따르면 세상의 8할은 협상이다. 협상을 통해 파국을 막고 서로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온갖 자유의 만개에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조화와 설득의 리더쉽, 더 나아가 깊은 통찰력과 공동체를 향한 희생의 리더쉽이 필요한 시대다. 1,600년 전의 광개토 태왕의 리더쉽은 바로 이러한 리더쉽의 가치와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는 무게감이자 존재감이다.


[인상깊은 구절]
현재는 미래라는 희망과 무한한 가능성의 대평원에서 빌려온 목표이며, 과거는 미래가 찾아가 본받고 가르침을 청해야 할 스승이다.   <p42>
위기란 성공과 실패라는 이란성 쌍둥이다.   <p174>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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