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반양장) 생각하는 숲 6
트리나 폴러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시공주니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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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읽는 이유는 간단하다. 시간의 풍파를 이겨낸 검증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동화에도 고전이 있다. 『어린 왕자』, 『아낌없이 주는 나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와 같은 책 말이다.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준 위대한 이야기들이다. 나에게도 어린 시절에 감명 깊게 읽은 특별한 동화가 한 권 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던 것 같다. 집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을 당시 진지하게 탐독했던 것만큼은 선연히 기억한다. 이후 내 '신분이 바뀔 때마다' 반복해서 읽었다.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은 1972년에 출간되었다. 지난 50여 년간 17개 언어로 번역되어 수백만 권이 팔려나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다. 작가 트리나 폴러스는 올해 나이 아흔둘이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반전, 환경, 여성 운동을 아직까지도 열심히 하고 있는 행동주의 작가다. 칼 마르크스가 주장한 대로 "세계를 변혁시키는 게 지식인의 의무"라고 한다면 폴러스는 그 가장 적확한 본보기다.

호랑 애벌레와 노랑 애벌레가 주인공이다. 애벌레 기둥에서 만난 두 애벌레가 고치를 지나 나비에 이르는 과정이 아름답게 그려졌다. 처음부터 두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길을 알았던 건 아니다. 애벌레 기둥에 올라섰다가 실패하기도 하고 거기서 떨어지는 애벌레를 보고 낙심하기도 한다. 그 여정을 통해 두 애벌레는 서로 믿고 사랑하는 사이가 된다. 하지만 생각이 달랐고 가는 길이 달랐다. 호랑 애벌레는 다시 기둥으로 향하고 노랑 애벌레는 홀로 남는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고치(번데기)의 과정을 반드시 겪어야 한다는 걸 노랑 애벌레는 알게 된다. 결국 노랑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는 기둥 높은 곳에서 발버둥 치고 있는 호랑 애벌레를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에게 나비가 되는 길이 무엇인지를 안내한다. 노랑나비의 인도에 따라 기둥을 내려간 호랑 애벌레는 노랑나비와 마찬가지로 고치의 과정을 통해 호랑나비가 된다. 둘은 함께 하늘을 훌훌 날아오른다.

이 짧은 이야기가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자그만 애벌레의 모습이 고단하고 남루한 우리네 삶의 현실을 오롯이 은유해 내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사회주의와의 체제 대결에서 승리한 건 제도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사회주의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에 더 맞았기 때문이다. 20세기는 인간에게 효율과 경쟁만 강조하는 자본주의는 일부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알려준 시기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에 희열을 느끼나 정작 다른 누군가가 나를 이기는 것에 결핍을 느끼는 게 인간이다. 경쟁은 세상을 윤택하게 하나 우리를 구원해 주진 못한다.

영업 경력 20년 차다. 지금 회사에서만 18년을 보냈다. 회사 인트라넷에 영업사원별 달성률이 전면에 배치된다. 치열히 경쟁했고 도전받았고 자극받았다. 경쟁과 실적은 나를 나 이상으로 만들었지만 때로는 나를 나 이하로 만들기도 했다. 이제는 안다. 경쟁에 끝은 없다는 것을. 정상은 누군가를 밟고 이김으로써 오르는 게 아니라는 것을. 나 스스로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올라 도달하는 것임을. 그렇기에 책 속에서 현자(賢者)와 같이 등장하는 애벌레는 "어떻게 나비가 될 수 있어요"라는 노랑 애벌레의 질문에 "한 마리의 애벌레의 상태를 기꺼이 버릴 수 있을 만큼 날기를 절실히 바랄 때 이루어진단다"라는 멋진 조언을 남긴 것이리라.

또 하나의 감상이 있다. 제목은 '꽃들에게 희망을'이지만 정작 책에는 꽃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애벌레에게 희망을'이나 '나비로 나아가는 희망을'이 맞는 제목 아닌가, 생각했던 때가 있다. 근데 지금은 그 꽃의 의미를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책을 읽고 있는 독자, 즉 나 자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책 속에서 약동하는 애벌레나 변이를 완성한 나비의 모습에 심취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꽃이란 존재에 있다. 나비의 행복은 정상에 오르는 게 아닌 꽃을 만드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꼭대기의 무의미함이 아닌 꽃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에 인간 삶의 궁극이 있다. 우리가 꽃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단순한 이야기와 가벼운 스케치의 그림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매번 읽을 때마다 다른 울림을 준다. 읽을 당시 나이에 맞는 느낌과 감동이 전달된다고나 할까. 내 경험을 말하자면 이렇다. 소년 때에는 애벌레가 나비가 된 것 자체에 환희했다. 청년 때에는 두 애벌레 사이의 사랑에 감격했다. 나이가 든 후에는 나비가 되는 것의 본질을 궁구했다. 노년이 되어서는 또 어떻게 읽힐지 자못 기대한다. 서두에 언급했듯이 내가 이 짤막한 동화를 내 신분이 바뀔 때마다 읽게 된 이유다.

유튜브 영상을 기획하는데 함께 일하는 정 PD가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추천하자고 권했다. 어떤 책을 추천할까 고민하다가 책장 한구석에 박혀 있던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책장을 연 순간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지금으로부터 32년 전 누군가에 의해 선물 받은 책이라는 것을. 정갈한 손 편지로 쓰인 문구가 당시 지독한 사춘기를 겪고 있던 중학교 1학년의 내 모습과 오버랩됐다. 이후 기나긴 고치의 과정을 겪었던 내 젊은 시절의 드라마가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 기분 좋은 기억의 복기가 책이 주는 감동과 혼합되어 내 눈가를 적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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