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거짓말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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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인간은 불가분의 함수관계이다. 문학은 인간에 갈증하고 인간은 문학을 창조한다.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한다. 인간이 존재하는 시간인 시대와 인간이 존재하는 공간인 사회를 관찰하며 조명한다. 마치 X-Ray가 육체의 내부를 촬영하듯, 문학은 X-Ray로 인간의 감정과 이성을 감찰하고, 자기공명검사로 인간의 내면을 단층 단층 샅샅히 파헤친다. 문학의 존재목적이 종국에는 인간이라는 만물의 영장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이러한 함수관계에서 문학은 인간에게 다양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한다. 여러가지 문학의 기능 중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는 데, 교화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서 문학은 인간에게 교훈과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정이현의 신작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을 읽었다. 워낙 글을 잘 쓰는 소설가이자, 최근 한국문단에서 부각받고 있는 여류작가이기때문에 그녀의 신작 소설집을 대하는 마음가짐은 출간 이후부터 첫 장을 넘기는 순간까지 온갖 기대감과 설레임으로 점철되었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제 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고 『타인의 고독』으로 제 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 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한 이력은 그녀가 한국문학의 차세대 작가임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달콤한 나의 도시』는 나와 정이현의 첫만남이었다. 신문연재라는 연속성의 한계에서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그녀의 뛰어난 현재적 감각과 도시적 삶의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날카롭고 경쾌한 필치는 꽤 인상적인 것이었다. 책 구입 시 미니북으로 증정되어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 다시 한번 읽어볼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이번 그녀의 신작 소설집은 『타인의 고독』과 『삼풍백화점』을 위시한 총 10개의 단편소설을 소개하고 있다. 동시대인들의 초상을 전면에 내세우며 현재성이라는 그녀만의 탁월한 시간감각을 녹여놓고 있다. 누구나 한 번 쯤 고민했을 내용들을 도시적이고 현재적인 배경으로 안내한다. 서사의 하나하나가 현실적이다. 마치 일기장을 넘기는 기분으로 도시민들의 일상을 만날 수 있다. 냉소적이고 싸늘하기도 하며, 유머러스한 그녀의 문체는 뛰어난 스토리텔링과 조합되어 읽는 이에게 한달음의 속도로 읽을 수 있는 독서스피드를 지원하고 있다. 

 

  『삼풍백화점』은 가장 뛰어난 단편이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을 그대로 소설 속에 재현해 놓고 있으며 그 시공간 속에 '나'와 친구 R의 일상을 결합시킨다.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친구 R의 죽음은 정작 필요할 때만 돌아보았던 친구에 대한 죄의식을 수면 위로 불러내었다. 그곳을 떠난 뒤에야 나는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고 말하는 '나'의 마지막 고백은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을 마음 속의 친구 R의 존재감을 암시한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독특하다. 정이현의 소설에서 낯설다 할 수 있는 반전의 반전(?)이 펼쳐지며 섹스리스 부부 사이의 미묘하고 특별한 긴장관계를 날카롭게 그리고 있다. 살인사건의 범인은 소설 속에서 끝내 침묵으로 봉인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부의 일상도 바뀐 것은 없다. 굳이 바뀐 것이 있다면 여자 화자의 사고방식 하나 뿐이다. 지난한 희생의 과정을 거쳐야만 사람은 비로소 어른이 되며 완전한 가정을 이루려면 반드시 대가가 필요하다, 는 노인들의 충고를 인정하며 반드시 임신을 해야한다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의 변화가 가정이라는 소중한 공동체의 파괴를 차단하고 있다.

  『익명의 당신에게』도 소재의 추출이나 접근방식의 독특함에서 『어두워지기 전에』와 맥을 같이 한다. '종합병원 항문외과 새벽 항문 촬영 사건'이라는 독특하고 자극적인 설정을 통해 연애하는 두 남녀의 심리를 그렸다. 남자가 괴로워할 때는 아무것도 캐묻지 말고 무조건 위로해주어라, 라는 남자의 두뇌구조를 꿰뚫는 진리에 가까운 연애법칙이 인용된다. 익명의 당신에게 보내는 연희의 편지는 사랑하는 이에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 걸까?, 아님 관용에서 온 걸까? 병원장을 못 만난다면 부원장을, 병원의 모든 보직 교수들을, 아니면 B대학 총장이라도, 국무총리라도, 대통령이라도, 그 누구라도.. 그녀의 용기는 진정한 사랑일까?

  그 외의 단편소설들도 TV 시트콤과 같은 색상으로, 드라마 단막극과 같은 느낌으로 부담없이 읽혀진다. 하지만 가볍지는 않다.

 

  정이현은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인물을 택한다. 또한 다분히 여성적이다. 여성을,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소설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30대의 젊은 여성들이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것도 이러한 정이현 소설의 물리적 특질에서 오는 당연한 인과관계일 것이다. 은희경과의 차이가 여기서 목도된다. 은희경은  남성화자를 많이 택하는 편이다. 은희경은 소설을 쓸 때 방해가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남성화자를 통해 말하려 할 때 객관적인 거리 유지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은희경의 무게감을 생각하면서 정이현의 소설에서 무언가의 결핍을 느낀다면 나만의 생각일까? 아쉬운 부분이다.

 

  모두가 모른 척 해왔던 바로 그 이야기를 날카롭고 경쾌하게 그리는 것이 소설가 정이현의 강점이자 매력이다. 동시대인들의 초상을 전면에 배치하며 세태를 읽어가는 뛰어난 감각과 현재성은 당분간 정이현표 브랜드로 굳어질 것이라 기대한다. 문단에 나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평단과 대중들에게 정이현이라는 소설가는 작금의 한국문학의 위기에 단비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기업이 매년 매출을 증가하여 자기존재를 유지하며 보존하듯이 예술이라는 장르도 한 단계 한 단계씩 발전해야 장수할 수 있음은 자명하다. 여기서 문학도 예외일 수 없다. 앞으로 펼쳐질 정이현 문학의 미래가 끊임없이 진보되고 진화되어 서두에서 언급한 문학의 교화적 기능과 쾌락적 기능을 동시에 공급해줄 수 있는 힘 있는 문학으로 서나가길 기대하며 지지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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