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왕 이야기 - 양장본
진 에드워드 지음, 허령 옮김 / 예수전도단 / 200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누군가 내게 와서 "가장 감명 깊에 읽은 책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한다면 주저없이 답변할 수 있는 준비태세가 되어있다. 『세 왕 이야기』라는 내 인생 최고의 책이 흔들리지 않고 내 중심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999년 생일 당시 교회 후배의 선물로 처음 접하게 된 이 책은 나에게 신앙, 권위, 인내, 리더쉽, 용기, 겸손에 이르는 굵직한 삶의 본질적 요소들을 비춰주었다. 하나님의 말씀이자 기독교의 경전인 성경을 제외하고는 내게 절대 불변의 지혜의 보물로 각인 되어왔던 것이다.

 

  『세 왕 이야기』는 이스라엘의 3명의 왕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 두 번째 왕 다윗, 그리고 반역의 왕 압살롬.. 세 왕의 기질과 특성, 그리고 무엇보다 권위에 대한 그들의 상이한 이해와 행동을 보여주는 책이다. 책이 두껍지 않고 어린 아이들도 읽을 수 있는 평이한 문체여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한 편의 동화라고나 할까?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종류의 '창'을 만난다. 인류의 아픈 역사의 내면에는 공격성과 이기성으로 중무장한 '창'의 던져짐이 있다. 국가, 가정, 이웃, 학교, 회사, 친구, 동료 등에서도 '창'은 다양한 모습으로 포장되어 상대를 향해 던져진다. 크게는 국가간의 전쟁에서부터 작게는 개인의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창'의 질주는 인류역사의 한 흐름이 되어 있다. 사랑과 절제, 희생의 인류의 절대가치를 부서뜨리고 도발하는 '창'은 상대를 향해 날라가서 상대의 가장 아픈 곳에 박혀 크고 작은 상처의 흔적을 남기곤 한다. 그리고 '창'을 맞은 상대방은 그 상처에 아파하며 치유와 회복의 번민에 빠져 애통한다.

 

  지금으로부터 3,000여년 전, 이스라엘의 한 남자의 삶에도 날라오는 '창'에 자유롭지 못했다. 그를 시기하고 언제나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던 국왕의 '창'은 언제나 서슬 퍼랬다.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은 자신의 권위를 '창'으로 대변하며 '창' 던지는 일에 몰두했다. 왕의 '창' 던지기 제일의 목표였던 다윗은 날라오는 '창'을 감내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매우 중요한 관찰이 필요하다. 사울의 '창' 던지기 실력보다 다윗의 '창' 받는 실력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다윗은 언제나 자신을 향해 날라오는 '창'에 대해 어떠한 비판과 반격을 하지 않았다. '창'을 던지는 자와 던지는 행위에 대한 비판권과 재판권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닌 다른 존재에 있다는 진리를 인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인식과 행동이 종국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고차원적 축복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권위에 대한 다윗의 올바른 이해는 언제나 그의 삶에서 풍성한 자유와 안식을 누리게 해주었다. 사울의 '창'을 피해 도망다닐 때에는 권위의 주인이자 원천인 그분에게 모든 것을 맡겼고 원수같은 사울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앞에서도 모든 결정권을 그분에게 돌려드렸다. 또한 압살롬의 반역의 '창'이 던져질 때도 그는 감내하기만 했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수많은 '창'이 자신에게 던져질 때마다 그는 그것을 주워 다시 되던지지 않았다. 그리고 중심을 잃지 않았다. 이 놀랍고 경이로운 다윗의 '창' 받기 실력은 그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자, 하나님으로부터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사상 초유의 닉네임을 선사받은 주인공이자, 메시야가 그의 직속 혈통에서 오게되는 영광의 계보의 중심에 서 있게된 동기가 되었다.

 

  다시 시공간의 초점을 3,000년이 지난 작금의 우리 자신으로 맞춰보자. 우리는 과연 우리 앞에 놓여진 수많은 권위에 대해 어떤 행동들을 취했던가? 날아오는 '창'을 방패로 막기에 급급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 '창'의 주인을 비난하는 동시에 죄를 논하는 재판관으로 서있지 않았는가? 어쩌면 내 자신이 '창' 던지는 자로서 상대방의 마음과 영혼을 유린하는 주체가 아니었던가? 다윗의 삶이 보여준 권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참된 권위에 대한 철저한 순종은 인간의 유한성과 오류, 불완전한 속성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지를 알려주는 지혜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내가 하지 못하는 것. 내가 해야하는 것과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몰이해는 자신이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자신의 주권영역이 아닌 곳에도 손을 뻗쳐 소중한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 나아가 본질과 비본질의 우선순위의 헷갈림 속에서 영혼이 황폐해지며 패배자로 추락하는 삶을 살게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겸손한 자신감만이 가능을 입증할 수 있다. 다윗은 이미 3,000년 전에 이 이치를 깨달았고 현재의 감정보다 미래의 축복을 기대하는 믿음이 있었기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창'으로 대변되는 세상의 권위에 대한 득도의 안목을 가져 를 올려다 보는 동시에 '창' 앞에서는 겸허할 수 있는 그릇이 되기를.. 그리고 내면의 상처와 아픔을 되돌아올 미래의 축복과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승리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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