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철학적인 오후
하인츠 쾨르너 외 지음, 이수은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어떨 때는 자기계발서보다 아름다운 동화 한편이 보다 깊이 있는 지혜와 성찰을 비춰줄 때가 있다. '이렇게 저렇게 하세요', '이건 하지 말고 저건 이렇게 하세요' 등의 어투로 일관하는 자기계발서의 건조한 문체가 부담된다면 잔잔한 동화 속에서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더 강한 포스를 던져줄 때가 있다는 얘기다. 『아주 철학적인 오후』라는 책도 나에게 그런 무게감으로 읽혀졌다.

 

  이 아기자기한 소설집은 6명의 독일작가들의 단편동화 13편을 묶어 놓은 동화집이다. '삶에 두 번 일어나는 일은 없고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는다'라는 강렬한 부제를 달고 있는 이 동화집은 표지로 흑백의 모노톤을 사용했다는 점이 매우 특이하다. 다양한 색상의 비쥬얼이 말하고자 하는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이라는 내용의 무게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고도의 계산에서 나온 디자인일까? 흥미있게 의문을 던져보며 양장본의 첫 장을 넘긴다.

 

  여기에 실린 이야기들은 모두 우리 자신의 삶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책은 인간과 삶에 대한 깊이 있는 천착을 아름다운 동화 속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나무 이야기』, 『나무 이야기 2』, 『네 갈래 길』, 『새인지 몰랐던 새』, 『하루』, 『사랑은 선물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진리는 조각낼 수 없다』, 『악수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는 손』, 『고래의 노래』, 『중심에서 사는 사람』, 『꿈에 대한 일곱 가지 질문』, 『관계』.. 이렇게 13가지의 동화 속으로 독자들을 침투시키고 있다. 어떤 것은 잘 읽히고 바로 머리속에서 정리되어 가슴으로 운반되는가 반면 어떤 것은 읽다가 다시 앞장을 넘겨가면서 읽는 등의 진도의 더딤을 경험키도 했다. 하나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두뇌를 지나 가슴으로 오기까지 수없이 내용을 되새김질하며 내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춰볼 수 있었다.

 

  인간의 사랑의 에너지는 유한한 듯하다. 아니 유한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입으로는 사랑을 외치고 있지만 막상 자기 자신만의 렌즈를 통해 사랑하고 싶은 것만 골라내서 사랑하는 경향성을 갖는다. 상대방이라는 그 자체를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이 그린 사랑의 지도를 펼친 채 거기에 맞추는 작업이 비일비재하다. '인류는 사랑할 수 있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사랑하기 힘들다'는 말이 있다. 남과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구체적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힘! 그것은 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인류에게 우선되어야 할 가치일 것이다.

 

  꿈이라는 것은 좋은 것이다. 아무런 꿈과 도전 없이 인생을 무료하고 드라이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세상의 어떤 인간도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미래는 꿈꾸고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꿈 사이의 폭과 거리를 합리적으로 가늠할 수 있는 혜안 또한 중요하다. 꿈이 없이 사는 것도 문제지만 허황된 꿈과 몽상으로 자신의 인생을 헛되이 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화살같이 날라가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이해, 그 후에 머뭇거리면서 오는 미래에 대한 꿈과 도전을 갖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성공과 행복이라는 기다림이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망각하고 지나갈 때가 많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1년마다 찾아오는 생일, 운동을 할 때 경험하는 러너스 하이의 희열, 마음 맞는 이와 함께 하는 소주 한잔의 시간 등등.. 소소한 일상가운데 지나치기 쉬운 소중한 인생의 조각들이 많이 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은 무언가 크고 특별하고 유별난 것만을 지향하는 경향에 익숙하다. 하지만 언젠가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기 바로 전의 시간 앞에 직면했을 때를 그려보자.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소소한 일상가운데 감사와 행복을 인식하지 못했던 후회가 엄습할지도 모를 일이다. 작은 것에서 감사할 줄 알고 소소한 것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음이 필요하다.

 

  인간의 지식과 경험은 유한하다. 과학이 빛의 속도로 발전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인류의 공간은 지구 안에 묶여 있고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의 순서로 밖에 갈 수 없는 1차원의 시간을 초월하지 못한다. 1차원의 세상을 포함하는 2차원의 세상이 있고, 2차원의 세상을 포함하는 3차원의 세상이 있듯이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을 훨씬 더 고차원적으로 포함하는 세상이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다만 인간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영국의 저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를 위시하여 수많은 과학자들은 우주가 최소한 11차원 이상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천착하고 있다. 머지 않아 이 또한 과학적으로 밝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의 지식과 경험이 유한하고 지엽적인 것임을 자각하여 주마간산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겸손함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깨달음과 지혜의 일렁임이 머리속에서 진행된다. 삶과 죽음, 행복과 사랑, 기쁨과 슬픔, 욕망과 꿈, 지혜와 어리석음 등의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그리고 있는 이 아름다운 동화는 「아주 철학적인 오후」의 제목의 의미를 넘어서 「매우 지혜로운 오후」로 내게 존재했다. 인간의 다양한 속성을 예리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동시에 인간의  관대함과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힘을 제시하는 이 소중한 동화를 삶을 보다 충만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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