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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쿠스의 죽음 ㅣ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1
막스 갈로 지음, 이재형 옮김 / 예담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나에게 스파르타쿠스라는 이름은 익숙하다. 대학교 3학년 1학기 당시 '그리스 로마 문명사'라는 3시간짜리 교양과목을 수강하면서 스파르타쿠스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접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1960년작 『스팔타커스』라는 영화를 강의시간에 시청하면서 스파르타쿠스의 삶과 그 시대의 역사를 경험했던 것이다. 주연이자 기획자였던 커크 더글라스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의 성격과 방향에 대해 적지 않은 논쟁을 일으켰는데 큐브릭은 로마 제국이 멸망할 수도 있었던 노예 반란 전쟁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그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더글라스는 전쟁과 러브스토리가 절반씩 섞인 영웅담을 원했다. 수많은 마찰음과 가위질이라는 치욕을 겪으면서 1,200만불을 투입하고도 밋밋한 영화가 되었다. "난 이 영화를 가능한 사실적으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스팔타커스가 누구인지에 관해 신뢰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멍청한 시나리오에 반발했다. 만약 용납될 수 있는 한계 안에서만 필요하다면, 감독이란 그저 돈많이 받는 다른 기능공이나 제작자나 다를 바 없다. 내 생애에서 『스팔타커스』가 그 증거다."라고 말할 정도니 당시의 큐브릭 감독의 불편했던 심정을 알 만하다.
막스 갈로의 로마 인물 소설 『스파르타쿠스의 죽음』을 읽었다. 읽기 전에 책 표지와 제목에서 오는 강렬한 비쥬얼에 홀딱 반했고 로마 역사 사상 가장 위협적이고 큰 규모의 노예 반란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어떤 관점으로 그릴지가 관심이었다. 크라수스, 폼페이우스, 카이사르의 삼두정치가 진행되면서 피비린내 나는 내정과 권력다툼의 소용돌이 속에서 로마가 공화정에서 제정의 정치형태로 변모해가는 발판을 마련해 준 전초가 된 역사이기에 많은 기대감을 갖고 한달음에 읽을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시대의 알렉상드로 뒤마'라고 불리며 90권이 넘는 저서를 쓴 프랑스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통한다는 막스 갈로와의 첫대면은 흥분 그 자체였다.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기다리는 것은 허탈함뿐이었다. 마치 당시의 로마제국이 수많은 노예들의 인권을 잔인하게 유린했던 것처럼 이 소설은 내 기대감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서사의 맥조차도 마음껏 유린하고 짓밟은 느낌이다. '내 이름은 가이우스 푸스쿠스 살리나토르이다.'라고 외치는 크라수스의 부관 살리나토르의 시점에서 소설은 시작한다. 자유를 갈구하는 트라키아인 스파르타쿠스, 디오니소스 신의 여사제 아폴로니아,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 그리스인 웅변술 교사 포시디오노스, 검투사 교관 쿠리우스 등의 중심인물들의 언어와 관점이 섞이면서 액자형구조 속으로 이야기를 침투시키고 있다. 하지만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삼류 번역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서사의 맥이 뒤범벅되어 스토리텔링의 형편 없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저자는 기원전 70년경에 발생한 이 노예반란사건을 독자들이 어떻게 인식하기를 원했던 것일까? 그저 고대 로마사 그 자체? 자신과 체제의 한계에 도전하는 한 남자의 영웅담? 로마제국의 공화정에서 제정으로의 변천과정을 전초하는 영웅들의 출현기? 자유로운 죽음을 위해 싸운 세계 역사에서 유일하게 정의로운 전쟁기?.. 머리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아쉬움과 씁쓸함만이 일렁인다. 번역 또한 형편 없는 수준이다. 외국도서의 경우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원작이 주는 느낌이 달라진다. 아무리 훌륭한 원작이라 할지라도 일관성 없고 깔끔하지 않은 문장으로 번역되면 작가가 제공하는 원초적인 맛이 희석될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굳이 이 소설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이 있다면 스파르타쿠스의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는 유대인 치료사 자이르의 존재이다. 실존 인물인지 작가가 만든 허구의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끊임없는 결정과 판단의 기로에 설 때마다 자신이 섬기는 전지전능한 유일신의 기준에서 조언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연인인 아폴로니아로 대변되는 디오니소스 신의 존재감과 자이르로 대변되는 유대의 유일신의 존재감이 교차되고 대조되며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듯하다. 소설의 마지막은 "오, 모든 것을 아시고 보시는 유일신이시여, 정의의 지배자시여, 고통의 십자가가 희망의 십자가가 되도록 하소서!"라고 외치는 자이르의 기도로 정리된다. 기독교의 출생과 박해와 번영이라는 역설적인 역사가 머지않아 로마제국을 뒤덮을 것이라는 작가의 예언적 메시지일까? 흥미있는 천착이 아닐 수 없다.
형편 없는 번역과 어설프게 맞추려는 이야기 전개에 적지 않이 실망한 작품이다. 뒷표지에 이 책을 평가하는 문구가 매우 흥미롭다.
고대 로마사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쉽게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은 책이다. - 쿠리에 프랑세
역사가로서의 정확성과 엄정함, 소설가로서의 재치와 입담이 어우러져 훌륭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 작품은 기독교가 탄생한 곳인 고대 로마 사회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씌었다. - 레코 드 루에스트
위와 같은 평가를 한 이들에게 김훈의 『남한산성』이나 황석영의 『바리데기』를 책여행 보내고 싶을 심정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