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기술 -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의
하지현 지음 / 미루나무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시대가 바뀌면서 인간에게 필요한 가치의 기준도 바뀌고 있다. 지능지수IQ가 절대우선가치였던 시대가 지나가고 감성지수EQ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그러다가 '의사소통지수CQ: Communication Quotient'가 매우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물질만능주의의 팽배와 심각한 이기주의의 심화에 따른 비사회적 현상들이 빈번히 벌어짐에 따른 인류의 건조화가 지능과 감성 못지 않게 의사소통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이끌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대인관계, 대 사회관계의 중요성을 더욱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공존지수NQ: Network Quotient'의 중요성까지 강조되고 있는 세상이다. 시대가 아무리 바뀐다 하더라도 사회적 존재로 창조된 인간의 근본적 경향은 계속해서 재확인될 수 밖에 없음을 인간 스스로 자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소통을 해야할까? 어떤 소통이 나 자신 뿐만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가?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 박사는 『소통의 기술』이라는 책을 통해 다양한 소통의 방법과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소통의 가장 큰 볼륨이 언어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내용을 언어습관에 대한 방법과 주의점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더욱이 저자의 전공이 정신분석학임에서 알 수 있듯이 수많은 국내외의 연구와 실험의 사례를 소개하며 의사소통에 관한 다양한 기술에 대해 설파하고 있다.

 

  저자는 네 가지 챕터를 나누면서 총 18가지의 소통의 기술을 얘기하고 있는데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01. 백 마디 발보다 진심이 통하는 한마디가 필요한 이유

02. 말하는 습관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

03. 차이를 인정하면 소통이 쉬워진다

04. 선입견을 버리면 소통이 열린다

05. 때로는 지혜로운 거짓말로 소통하라

06. 자존심을 살려주면 관계가 술술 풀린다

07. 마음을 헤아리고 체면을 살려줘야 특별한 관계가 된다

08. 통할 수 있는 '코드'를 반드시 찾아라

09. 소통은 일반통행이 아니라 주고받는 대화이다

10. 주파수를 맞추고 맞장구를 치며 공감대를 형성하라

11. See you again! 처음 만난 사람을 평생 만날 사람처럼 대하라

12. 주는 만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자기 만족을 즐겨라

13. 첫 단추를 잘 끼워라

14. 상대에 대한 기대치를 조절해야 관계가 행복하다

15. 마음을 읽으면 관계가 보인다

16. 관심과 애정이 담긴 질문이 소통을 살린다

17. 현명한 화술로 대화에 날개를 달자

18. 솔직함은 누구라도 마음을 여게 하는 열쇠다

 

  상기 18가지 제목을 주제화한 뒤 자신의 경험과 역사적 사건, 해외 저명한 석학들의 연구와 실험 사례를 통하여 이를 입증하고 있다. 더욱이 'LET'S THINK ABOUT IT!'라는 박스를 통해 과거 일간지에 실린 소통과 관계된 기사를 부연하고 있으며 'CHECK IT!'이라는 자그만 박스에서는 독자의 소통지수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또한 '한국인과 통하는 특별한 공감 코드'라는 두 번째 챕터를 통하여 한국인들의 성향에 맞는 소통방법과 주의점 등을 얘기해주고 있기도 하다. 개인계발서, 특히 의사소통과 관련된 도서는 수도 없지만 대부분 외국 저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어서 외국 문화와 사례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다반사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 문화와 한국인의 성향을 간파하여 그에 적합한 소통의 기술을 설파한 점은 매우 실재적이고 효율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해 나는 별다른 감흥을 얻지 못했다. 그리 큰 도전도 얻지 못했음을 토로한다. 최근 자기계발서와의 다양한 만남이 희소성의 가치를 떨어뜨린 이유도 있지만 책 자체가 주는 시원함의 농도가 너무 얕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최근 접한 자기계발서와 굳이 비교한다면, 『소통의 기술』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의 강렬함과 자신감 있는 논지에 있어 『이기는 습관』보다 못하고, 자기계발이라는 식상한 주제의 반복적 외침의 한계를 극복키 위한 접근방법의 신선함에서는 『프레임』만 못했으며, 심리학적인 다양한 임상실험 및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면에 있어서도 슈테판 클라인의 『행복의 공식』메 못미쳤다. 게다가 내용의 소재로 사용된 몇몇 이야기와 연구 실험사례, 위인들의 명언에 있어서도 이미 이전의 자기계발서에서 적지 않이 접했던 것이 많아 재탕,삼탕을 느끼는 기분도 적지 않았다. '누구와도 쉽게 통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감 코드'라는 흥미있는 부제를 저자의 사진과 함께 앞면에 배치하고 있지만 책의 내용은 그저 그런 평이한 수준의, 기존의 자기계발도서의 반복적 외침의 정리라고나 할까? 중고등학교 도덕교과서를 읽는 느낌이었다면 너무 가혹한 평이 아닐까 싶다.  물론 작금의 시대가 소통지수CQ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고 그런 측면에서 소통의 기술을 알고 터득하고 정리하여 올바른 사회성을 가져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제기와 집필의지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같은 얘기의 지루한 반복이라 할지라도 옳고 좋고 따뜻한 얘기의 반복이라면 인간의 망각적 뇌구조를 감안할 때 분명 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책 내용 중에서 한 가지 크게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관계에 있어 솔직해져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야구에서 다양한 변화구는 보조 역할을 할 뿐이지 결국 영원한 승부수는 직구에 달려있는 것처럼 대화에서도 나만의 솔직한 직구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응당 맞는 얘기다. 체면치레로 하는 말, 관계 때문에 싫어도 좋은 척 하는 것, 이 사람 앞에서는 저런 척, 저 사람 앞에서는 이런 척 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모두 다양한 변화구다. 하지만 변화구는 영원한 승부구가 되기 어렵다. 투수가 경력이 오래 되고 힘이 떨어질수록 직구보다 변화구에 의존하게 되고, 던질 줄 아는 변화구의 수가 늘어난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회경험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대화에서도 직구보다는 변화구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변화구가 싱싱하던 어깨를 혹사시켜 빨리 망가뜨리듯이 변화구에 의존한 관계는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이건 아닌데'하는 기분이 종종 들게 한다. 솔직한 직구가 주는 강하고 무거운 힘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평소 친하게 지내는 교회 후배 녀석의 얘기를 하는 것으로 서평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매우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있다. 그 후배의 경우 말을 그리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성격도 다소 내성적인 편이다. 자신감과 용기, 리더적인 기질에 있어서도 크게 부각이 되지 않는 녀석이다. '남자녀석이 왜 저럴까?'하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몇 년 전 내가 갖지 못한 그 녀석만의 찬란한 보물을 확인한 후 그는 내게 작은 멘토가 되어 있다. 내가 받은 충격은 이런 것이었다. 당시 미국생활을 하다가 2년만에 돌아온 후배녀석은 제일 먼저 나를 찾았고 오랜만에 저녁을 함께 먹게 되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가 나는 개인적으로 최근에 일어났던 집안의 좋지 않았던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당시의 힘듦과 마음앓이를 고백하니 내 자신의 기분이 한결 나아진 느낌이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녀석의 반응에 있었다. 녀석은 나의 얘기를 듣는 동안에 아무런 답변과 위로를 하지 않았고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어떤 위로와 답변보다 강렬한 빛을 발산할 수 있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남자의 눈물을 나는 목도했던 것이다. 말은 내가 하고 있었지만 그 녀석은 철저하게 말하는 이의 마음이 되어 가슴으로 소통하는 경청의 극치를 보여준 것이었다. 당시 녀석이 보여준 눈물과 함께 수준 높은 경청의 태도는 화자역할을 하기 좋아했던 내 자신에게 큰 깨달음과 지혜를 주었다. 그리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 진솔하고 솔직함이 그 어떠한 자기관리보다 강할 수 있다는 깊은 혜안을 얻기도 했다. 최대한 자신의 가면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솔직하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고결하고 찬란한 인간미의 극치일 것이다. 소통에 있어 가장 큰 기술과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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