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 제19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문미순 지음 / 나무옆의자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세계문학상 수상작은 거의 찾아보는 편이다. 재미있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상은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히며 스토리가 탄탄한 소설이 주로 선정된다. 초기 수상작인 김별아의 『미실』은 너무 재미있고 흡입력이 있어 드라마 <선덕여왕>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백영옥의 『스타일』, 정유정의 『내 심장을 쏴라』는 각기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중으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문학의 주요한 기능 중 하나가 '재미'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세계문학상은 대중이 좋아할 만한 보편의 문학적 기호를 담아내고 걸러내는 관문의 역할을 잘 수행해왔다. 내가 세계문학상 수상작을 탐독하는 이유다.
제19회 세계문학상은 문미순 작가의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이 수상했다. 소설은 무거운 주제를 다룬다.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른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이 나라 대한민국의 서민 가족의 이야기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부모 간병의 문제를 해학적인 이야기로 풀어냈다. 묵직한 주제가 흥미로운 인물과 사건을 통해 더 진지하게 고찰하게끔 만든다. 독자는 웃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오금이 저리기도 하면서 진지한 주제를 관통한다. 작가의 탁월함이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아파트 옆집에 사는 중년 여성 명주와 젊은 청년 준성이 각자 치매와 뇌졸중으로 쓰러진 부모를 홀로 감당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이와 성별과 상황이 다르지만 둘의 중요한 공통점은 경제력이 여의치 않은 채 홀로 노부모의 간병을 책임진다는 것이다. 남편과 이혼하고 13평 임대 아파트에 홀로 사는 모친을 간병하는 50대 여성 명주의 삶은 비루하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대리운전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26세 청년 준성의 삶도 박복하긴 마찬가지다. 소설은 두 화자의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다가 어느 결정적 시점에서 만나 이야기의 절정을 이룬다.
소설의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엽기적으로 흘러간다. 명주는 엄마의 연금 때문에 엄마의 죽음을 숨긴다. 엄마의 시신을 아마포로 둘러싸 미라로 만들어 작은방에 모신다. 준성도 마찬가지다. 욕실에서 넘어져 사망한 아버지의 시체를 어떻게 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른다. 결국 명주의 도움으로 사체은닉 공범이 된다. 하지만 두 사람의 범죄가 그저 '죄'로만 보이지 않는다는데 이 소설의 핵심이 있다. 작가의 문제 제기는 간명하다. 치매와 뇌졸중과 같은 노인 중증 환자의 간병을 오직 가족에게 일임하는 게 옳으냐, 하는 것이다. 결코 남일 같지 않고 남일이 되어서도 안 되는 이 거대한 사회적 문제를 작가는 흥미진진한 픽션으로 풀어냈다.
명주와 준성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이지만 보다 궁극의 화자는 명주다. 시간 순서상으로 먼저 범행(?)을 일으켰고 자신의 말과 행동에 자의식이 강하게 묻어 있는 인물이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와 남동생의 이른 죽음, 이혼과 화상 사고 장애 등 어느 누구보다 기구한 삶을 살았지만 그 처절한 현실에 짓눌리지는 않는다. 자신과 엇비슷한 처지의 준성을 설득해 '공범'으로 만들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명주라는 캐릭터를 적극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단순하고 엽기적인 돌아이로 보아서는 곤란하다. 엄마의 시체를 은닉하면서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라며 묵직한 한방을 날릴 줄 아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명주의 일갈은 작가의 말을 대신 전한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이 소설은 전통적인 소설의 구조, 즉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의 순서를 충실히 따른다. 엄마를 미라로 만든 명주의 비밀이 들킬랑 말랑하는 이야기로 전개되면서 손에 땀을 쥐게 한다. 특히 정체불명의 남자가 명주의 집으로 전화해 "당신이 저지른 죄를 알고 있다"며 협박하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면서 소설의 성격은 미스터리로 전환되는 듯하다. 그렇기에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며 읽는 묘미가 제법이다. 부양과 간병이라는 우리 사회의 무거운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되 누구에게나 마음속 깊은 누추한 양심 어딘가에 한 번쯤 상상해 봤을 조악한 인간성을 그려냈다는 것에 이 소설의 생명력이 있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더욱이 치매와 같은 병은 아무리 효자라 해도 감당하기 힘든 인간성 너머의 시험 거리다. 인간의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젊은이보다 노인이 많은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우리 사회도 간병과 부양의 문제를 세밀하고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명주와 준성처럼 부모의 시신을 유기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냐마는 중요한 건 그 지옥 같은 일상에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준성이 술 취한 아버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상상으로 아버지를 때려죽이고, 그 죄책감에 아버지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걸 시사한다. 부양과 간병의 문제에 신음하는 우리 주변의 여러 사람들의 불편하고 내밀한 '진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첫 장편이다. 작가 자신의 실제 체험이 집필에 토대가 되었다 한다. 코로나 시기 때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75일 동안 간병하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런 작가의 암묵지가 소설 속 명주와 준성의 특질에 투영된 듯하다. 간병 일 자체의 디테일은 모르겠으나 노부모 간병을 어려운 조건에서 홀로 떠안은 사람의 존재론적 고뇌와 감정이 잘 살아있다. 소설을 읽으며 다시 한번 부양과 간병의 문제를 천착했다. 나에게도 아직까지는 건강하시지만 곧 팔순을 앞두고 계신 아버지와 허리가 좋지 않아 주기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어머니가 계시다. 그렇기에 외아들로서 많은 사유가 남았다. 개인의 책임인지 국가의 과제인지 논하기 앞서 인간성의 본질과 상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새삼 곱씹었다. 이 무거운 메시지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낸 작가의 연금술에 박수를 보낸다.
http://blog.naver.com/gilsam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