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꿈
손보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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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을 키우고 있다. 큰 딸의 사춘기 진입이 예사롭지 않다. 과거에 비해 말수가 줄었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으며 짜증을 많이 낸다는 걸 느낀다. 예전 같았으면 꿀밤을 한대 갈겨주었을 텐데 이제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흔히 여자아이의 사춘기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라고 한다. 어떤 의미인지 알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고민과 공부 없이 지나치기에는 아빠로서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책 몇 권을 골랐다. 우리 시대 가장 잘나가는 젊은 작가 손보미의 신작 『사랑의 꿈』은 그렇게 해서 내 손에 들어왔다.

『사랑의 꿈』은 단편 「불장난」으로 작년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손보미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6개의 단편이 미세한 연결로 이어져 있고 동시에 완전히 독립된 이야기로 배치되었다. 표제작 「사랑의 꿈」을 제외하고는 전부 10대 초중반 여자아이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였다. 그래서인지 각각의 화자들은 십 대 소녀의 기분과 감정을 잘 대변한다. 그 나이대의 관찰과 생각으로 타자와 세계를 파악하는 모습이 흥미롭게 읽힌다.

여섯 편의 단편이 공유하는 미세한 연결고리는 '정우맨션'이라는 아파트다. 사실 이 소설이 왜 '연작소설'로 분류될까 의문했다. 사건 연관성이 있는 단편을 모아 하나의 총체적인 이야기를 완성하면서 장편의 분량을 구축한 소설을 통상 연작소설로 부르는데 이 소설은 각 단편마다의 연결고리가 극히 희박하다. 그나마 연결고리가 있다면 정우맨션이다. 어렸을 때 각인된 특정 장소에 대한 기억은 유달리 오래간다. 나도 35년 전 초등학교 친구들과 토요일마다 가재를 잡았던 안양유원지를 생생히 기억한다. 또 평일 방과 후 '더블 드래곤'이라는 게임을 했던 관악역 앞 오락실을 결코 잊지 못한다. 유년 시절의 장소는 당시의 추억을 고스란히 정지 화면으로 이미지화하여 뇌에 아로새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 소설에서 정우맨션이 갖는 독특한 위치다.

『사랑의 꿈』에 등장하는 10대 소녀 중 일부는 가정의 파괴를 겪는다. 부모가 이혼(「불장난」)했거나 삼촌 집에서 길러지거나(「밤이 지나면」)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으려 하거나(「사랑의 꿈」) 등 상처가 있는 가정들이 배치된다. 가족의 분열이야말로 어린 시절에 겪을 수 있는 가장 참혹한 존재론적 균열이다. 아이는 그 균열을 통해 망가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의 극복을 통해 슈퍼맨이 되기도 한다. 친구를 향한 동경과 첫사랑의 발견 등 그 시절 여성으로서 외부 세계를 날 선 시선으로 바라보고 경험하게 하는 동인도 소설은 다룬다다. 아프기도 하고 눈부시기도 하고 분노가 치밀기도 한 유년 시절의 불가해함을 작가는 노련한 필치로 그려냈다.

개인적으로 수록작 중 「불장난」에 유독 많은 감정이 이입되었다. 이상문학상 수상이라는 외연에 영향을 받은 건 아니다. 나도 어렸을 때 아파트 옥상에서 불장난을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 기억을 절대 잊지 못한다. 다만 소설과 다른 점은 해피엔딩이냐 새드엔딩이냐의 차이다. 소설에서 아이는 아버지의 라이터로 옥상에 올라가 종이를 태운다. 훗날 중학생이 되어 과거의 그 경험을 바탕으로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받는다. 작가의 경험이 투영된 장면이라 한다. 하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하지도 않은 남의 이불을 태웠다는 오해와 모략을 받아 소위 개 패듯이 맞았던 기억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상처로 남아 있다. 소설 속 아이는 불장난을 통해 자신을 괴롭힌 수치심과 굴욕감, 외로움을 연소시켰을지 몰라도 과거의 나는 단순한 불장난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들로부터 확증편향을 당해 이웃의 이불을 태워버린 방화범이 되었다. 「불장난」을 읽는 내내 그때의 억울한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첫사랑」과 「이사」는 과외 선생과의 관계를 통해 겪게 되는 주인공의 성장통을 담았다. 「첫사랑」은 군 입대를 앞둔 대학생 오빠가, 「이사」는 주인공과 한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중학생 언니가 과외 선생으로 등장한다. 부모 외에 처음으로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탁월하다. 처음 겪은 타인을 향한 신비로운 감정은 결국 비루한 진실 앞에서 폭파되고 해체되어 다른 형태의 감정으로 양태된다. 세상 모든 아이가 겪는 고통,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지 그것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참 나'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다양한 성장통의 모습이 1인칭 시점의 발군의 묘사로 그려졌다.

소설의 막장을 덮고 많은 생각을 했다. "연약하지만 다채롭고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 속에 포함되어"(192쪽)라는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의 표현대로 사춘기는 위태롭지만 맹렬한 세계다. 기성세대로서 십 대 시기의 특질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직 위태로움에 대한 방어기제로 그 시절을 재단하려 하지 않았는지 자문했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은 딸아이의 사춘기 입성에 맞춰 아빠로서 그 시절 여자아이들의 심리와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집어 든 책이다. 최근 부쩍 말수가 줄고 가끔 내뱉는 말조차도 엄마와의 신경전에 대부분 소비하는 아이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연약하면서도 다채롭고 위태로우면서도 맹렬한 세계에 진입되고 있는 내 딸의 여정이 외롭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한다. 엄청난 성장과 함께.

서평을 정리하자. 반추해 보니 너무 감상적인 서평이 되었다. 앞서 고백한 내 진지한 현실이 반영된 탓일 게다. 픽션이 논픽션보다 진실되다는 평소의 내 독서 철학을 거뜬히 증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손보미의 소설 『사랑의 꿈』은 압도적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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