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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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선각자의 말대로 삶과 죽음은 매한가지일까. 삶과 죽음이 매한가지라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고 사는 것이 죽는 것인데 무얼 두려워한단 말인가. 그렇지만 인간은 대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보면, 주변 지인들의 모습과 책에서 만난 수많은 인간상의 양태는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죽음을 적극적으로 즐거워 한 이는 없다. 인간에게 죽음은 쿨하지 않다. 죽음은 공포다. 두려움 자체이며 본질이다. 그렇기에 삶과 죽음이 매한가지라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다. 내 생각이다.

인간답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어느 경제학자는 인간의 본성은 자유와 이기심이라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인간은 자기 위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게 자연스러운 종족이다. 반면 어떤 철학자는 인간의 본성을 평등과 이타심으로 규정했다. 아무래도 앞선 경제학자의 말보다는 멋져 보인다. 이타적 인간이란 얼마나 세련되었나. 인간 종족의 품격이 느껴진다. 20세기 지구는 이를 실험하는 실험장이었다. 많은 직업정치인들이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도를 만들었고 집단을 창설했다. 천국과 신세계를 주장했다. 혁명에 가담했고 사람을 선동했다. 결국 수많은 인간이 죽었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점점 생각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종족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인간 활동의 많은 부분이 기계로 대체되는 중이다. 인간의 기계 필요 욕구는 점차 의존성으로 바뀌고 있다. 과학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편리함을 누리지만 정신적으로는 소외되는 중이다. 가끔 섬뜩함을 느낄 때가 있다. 스마트폰이란 작은 기계를 만지작거릴 때면 스마트폰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내가 스마트폰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헷갈릴 때가 있다. 존재가 희미해지는 것이다. 이러다 의식마저 가늘어진 조악하고 비루한 존재가 되지 않을까 두렵다. 

우리 시대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김영하가 새로운 작품을 들고 왔다. 신간 『작별인사』는 김영하가 『살인자의 기억법』 이후 9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 로봇의 이야기를 다루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주인공 철이는 유명한 IT 기업의 로봇 연구원인 아버지와 함께 인간으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외출한 어느 날 등록되지 않은 휴머노이드로 지명되어 수용소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수용소에서 여럿 로봇과 뒤엉켜 지내면서 자신이 인간인지 로봇인지를 고민하고 의심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깊은 사색에까지 도달한다.

수용소에서 만난 '민이'와 '선이'는 철이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준다. 민이는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하는 로봇이고 선이는 진지한 복제인간이다. 두 친구의 도움으로 철이는 낯설고 위험한 수용소 생활을 적응하고 견디어간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는다. 어느 날 수용소에서 동요가 생기고 그 틈을 타 셋은 수용소를 탈출한다. 자신을 인간으로 굳게 믿고 있는 철이는 아빠를 찾아 그걸 증명(확인)하기를 원한다. 아빠와 만나 집에 돌아온 철이는 자신이 몰랐던 거대한 진실과 마주한다. 독자는 철이의 여정을 통해 '인간'과 '인간답다'는 것 사이의 웅숭깊은 여백의 의미를 탐구하게 된다.

소설은 주인공 철이의 시선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쉽고 흥미로운 SF 동화와 같은 느낌으로 읽히기도 한다. 하지만 소설의 질문은 묵직하다. 로봇공학, 종교, 의식, 감정, 죽음 등과 같은 여러 철학적 주제를 조명하고 부각시킨다. 결국 소설은 거대한 하나의 명제로 나아간다. 인간성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진짜 인간, 복제인간, 휴머노이드, AI 로봇 등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종족들(?)은 끊임없이 이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한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지구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살지 못하게 만드는 장본인이 바로 인간이라는 통찰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안에서 충돌하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사유가 이 소설의 포인트다.

인간성의 탐구야말로 인류의 오랜 학문 대상이다. 문학의 목적도 인간에 대한 성찰이 아니던가.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인간성을 천착하고 탐구하는 데 있다. 이 대목에는 나만의 사색이 있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다양한 책을 읽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점점 더 명징하게 깨닫는 게 있다. 인간은 부족하고 미천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종족이라는 것이다. 인간만큼 증오스럽되 사랑스러운 종족은 없다. 인간의 과학은 위대하되 절름발이이고 이성은 탁월하되 모순적이다. 어쩌면 인간으로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은 본인의 유한함과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오직 겸손함으로써 타자와 우주를 공부(관계)하는 데 있지 않을까.

소설은 끝내 '작별'로 종결된다. 이야기의 말미는 인류의 절멸이다. 종국 기계 의식 시스템의 생존만이 남는다. 이 지점에서 소설의 제목 '작별인사'는 탁월한 작명이다. 작가가 2년 전 초고를 쓸 때의 가제가 '기계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개작을 거치며 소설 제목이 바뀌었다. 어떻게 보면 무섭고 소름 돋는 작별이다. 하지만 나는 소설의 전개처럼 인류가 작별될 것으로 예상치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이 세상 유일한 '단 하나의 나'로서 과학과 철학으로 복제되지 않는 신성한 개별성을 가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차피 아주 먼 과거와 먼 미래는 과학이 아닌 믿음의 영역이다. 어쩌면 소설과 영화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휴머노이드와 복제인간이란 소재는 현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식적이나 무의식적으로 기대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게 아닐까.

진부한 소재를 명료한 이야기 속에서 촉촉한 철학 담론으로 뽑아낸 역량은 순전히 작가 김영하의 내공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문장은 활력을 띠고 빠른 호흡 가운데서도 소설은 서사적 흡입력을 잃지 않았다. 김영하라는 이야기꾼이기에 가능하다. 역시 김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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