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 주변에서 리더십의 대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두 곳인데 하나는 회사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다. 전자는 오랜 시간 동안 동고동락한 내 바로 위 팀장이 회사를 떠난 것이고 후자는 교회 후임목사 청빙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두 곳이 가정과 더불어 내 삶의 가장 중요한 시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변화는 전회(轉回)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런 거대한 전환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이 대전환에 내가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게 가장 놀랍다. 회사에서는 조직 최고 선임이 되었고 교회에서는 청빙위원으로 임명된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작년 연말부터 리더십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읽기 시작했다.

리더십 전환기에는 큰 혼란이 따른다. 제국이나 왕조가 바뀔 때마다 또는 왕 한 명이 바뀔 때조차도 엄청난 변화와 혼란이 있었다. 간혹 좋은 변화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지 않은 변화가 뒤따랐다. 중요한 건 어떤 변화든지 간에 인간 역사는 끝내 발전했고 그 변화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문명을 도약시켰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기독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것도, 가장 지능이 높은 종이 살아남는 것도 아니다.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라는 찰스 다윈의 말에 공감하는 편이다. 변화를 예민하게 읽어내고 그것을 기회로 하여 한두 단계 도약해 내는 지혜와 용기는 신이 인간에게 준 고결한 선물이다.

가장 먼저 손에 집어 든 책은 진 에드워드의 『세 왕 이야기』이다. 젊은 시절에 다윗이라는 고대(성경) 인물에 빠져들게 한 이 얇은 책은 왕권의 본질이 어디에 있는지를 추적한다. 가끔 삶에 지치고 영혼이 목마를 때마다 펴서 읽곤 했는데 이번에는 작정해서 연속 3독을 했다. 문장 하나하나를 꾹꾹 누르며 읽었다. 놀라운 건 이 책을 처음 선물한 사람이 교회 담임목사님의 아들이라는 점이다. 나와 동갑인 그 친구는 현재 국내 모 대학 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오래전 교회 청년부 리더가 된 나에게 리더십의 정수를 도전 주기 위해 선물했던 것이다. 그런 책을 22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의 아버지의 목사 은퇴를 준비하며 다시 읽고 있다는 점에서 전율을 느낀다.

그다음 읽은 책은 『왕들의 이야기』 1, 2권과 『우리에게 왕을 주소서』이다. 전자는 한국교회에 리더십 도전을 강조해온 한홍 목사의 <열왕기서> 안내서이며 후자는 김진수 합동신학원 교수가 쓴 <사무엘서> 깊이 읽기이다. 잘 알다시피 <열왕기서>와 <사무엘서>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다. 이스라엘 왕조사를 다루는데 과히 술술 읽힌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면 『삼국지』보다 재미있고 『초한지』보다 감동적이다. 다윗, 솔로몬, 히스기야, 이사야와 같은 불세출의 인물들이 고대 이스라엘 왕국의 주·조연으로 등장한다. 두 권의 책을 연이어 읽으며 느낀 건 <열왕기서>는 결국 <사무엘서>로 회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구도적으로 조망하면 <사무엘서> 이전의 이야기는 <사무엘서>로 빨려 들어가고 <사무엘서> 이후의 이야기는 <사무엘서>로 회귀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중심에 다윗이라는 독특한 인물이 서 있다. 이곳 블로그 '다윗의 서재'의 명칭이 되기도 한 인물이다. 다윗에 대해서는 후일 다른 지면을 통해 본격적으로 다룰 기회가 있을 것이다.

후임목사 청빙위원으로 임명된 후 며칠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청빙이라는 사명이 가진 거대한 무게 때문이다. 개신교에서 목사는 특별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이다. 목사는 장로이면서 강도자(講道者)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목사의 영적 권위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성경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직(職)이기 때문에 성도는 존경과 순종의 마음으로 목사를 대해야 한다. 지난 40년간 오직 한 분 목사님에게 설교를 듣고 가르침을 받았다. 삶이 힘들고 영혼이 고달플 때마다 목사님을 찾았다. 그럴 때마다 목사님은 별다른 묘수를 얘기하지 않았고 오직 성경으로 돌아갈 것을 주문하셨다. 바로 그 정공(正攻)의 힘이 비록 흔들렸으나 멸망하지 않은 비밀이었다. 그랬던 내가 어느덧 4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 그 목사님의 후임을 청빙하는 일에 쓰임을 받게 된 것이다. 실로 충격이자 도전이다.

작년 11월 28일 발족된 교회 후임목사 청빙위원회는 지금까지 총 여덟 차례 회의를 진행했다. 5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열띤 논의와 토론을 벌였다. 장로, 권사, 집사 할 것 없이 소위 계급장 떼고 민주적·수평적으로 토의했다. 이제 대략 청빙 심의의 마지막 지점에 와 있다. 청빙위원으로서 비밀유지 서약서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겠다. 다만 자신 있게 고백할 수 있는 건 청빙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성경적 리더십의 궁극을 새삼 공부하고 일깨워 갔다는 것이다. 환언하자면 나 스스로 교회 왕직에 관한 성경적 원리를 학습하는 중심인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교회 공동의회를 통과해 후임목사 청빙이 완료되면 본건에 대한 내 소회를 후술하겠다.

회사로 시선을 돌려보자. 오랜 기간 동안 리더의 자리에 있던 팀장이 사정에 의해 회사를 떠났다. 그와 나는 18년이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이는 나보다 서너 살 위다. 과거 소(小) 부서의 팀장-팀원 관계였던 것이 회사가 성장하면서 조직이 커졌고 그에 따라 팀장은 영업과 무역을 총괄하는 마케팅 팀장으로 나는 영업파트 내부를 단속하는 중간관리자(부팀장 격)로 역할을 분담했다. 각기 성격이 다르고 일하는 스타일도 달랐다. 정말 많이 달랐다. 그러나 오랫동안 함께 하며 켜켜이 쌓인 시간의 세례는 우리 사이에 큰 신뢰를 쌓아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간의 믿음과 의지가 더 커졌다. 그 신뢰의 최고점에서 팀장은 회사를 떠났다. 이후 조직은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팀장의 부재는 곧바로 사장님의 친정(親政) 체제ㅡ직접 팀을 관리ㅡ로 이어졌다. 자수성가한 사장님은 실력과 효율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분이다. 미국식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를 지향하는 경영인이다. 결단이 빠르고 의사결정이 시원하며 직원들의 의견을 귀담아들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교회 담임목사님이 나의 영적 스승이었다면 회사 사장님은 나에게 물적 원리를 가르친 교사였다. 지난 18년 동안 사장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삶 측면에서 결단과 냉정을 배웠고 철학적으로 이성과 합리를 배웠다. 사장님이 결정한 모든 것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역사가 쌓인 시공간 위에 내가 직립해 있다. 언제까지 회사에 남아 있을지 모르겠으나 단언하건대 남는 건 감사뿐이리라.

이 대목에서 내가 집어 든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노벨상으로 이끈 『노인과 바다』와 또 다른 노벨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이다. 두 권 모두 예전에 읽은 것을 다시 집어 든 것인데 세밀히 재독했다기 보다 의미를 반추하는 선에서 스킵 하며 빠르게 훑었다. 두 소설의 공통점은 외연 면에서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이라는 점과 주제 면에서 인간 삶의 의미와 세월의 본질을 탐구한 메시지에 있다. 40대 중반의 영업차장으로서 조직 내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감당하며 삶과 시간, 타자와 세계에 대한 보다 농밀한 곱씹음이 갈급했다. 두 권의 고전은 이런 내 갈증에 가장 적확히 반응하며 울림을 주었다.

헤밍웨이가 말년에 쓴 『노인과 바다』는 어른 됨의 궁극을 관통한다.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가진 근원의 매력은 며칠 동안 청새치와 씨름하고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데 있지 않다. 산티아고의 진정한 위대함은 물고기와의 죽음을 건 혈투가 끝난 후 별일 없다는 듯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여유 있게 커피를 마시는 데 있다. 강렬하고 지독한 삶의 순간순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노인 산티아고가 가진 생명력의 본질이다. 삶이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이 듦에 관한 깊은 의미를 관통하지 못했더라면 헤밍웨이는 노벨상 문턱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있는 나날』은 더 구체적이다. 이 작품은 삶의 최선에 대해 질문한다. 주인공 스티븐스가 끊임없이 질문한 주제는 "위대한 집사란 무엇인가"였다. 이는 결국 '품격'에 관한 것으로 귀결되는데 스티븐스의 철학은 명징하다. 위대한 집사란 주인에 대한 절대적 믿음, 복종, 이를 넘어선 헌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자신은 최선을 다했고 완벽했음을 자부한다. 또한 주인 달링턴 경이 순수했던 나머지 나치 정권에 이용당한 사실에 대해서도 자기 영역(책임) 바깥에 있는 것임을 강조하며 개인의 죄의식과는 거리를 둔다. 이는 위대함과 품격에 관한 본질적 의미를 묻는 지점인데 이 부분에서 작가는 독자에게 답변을 강요하거나 선악의 가치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다. 소설의 메시지는 현재 회사에서의 나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병렬된다.

이 글을 쓴 목적으로 돌아가자. 좋은 리더란 무엇인가. 훌륭한 리더십이란 어떤 것인가. 한 곳은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라 말하고 한 곳은 생존과 효율을 우선하라 말한다. 서로 다른 것인가. 내가 조금만 어렸더라면 즉시 답을 냈겠다. 선언했겠다. 자신감 넘치는 필치로 리더십의 정수를 기술했겠다. 그러나, 고백하건대,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리더십의 전환을 실감 나게 목도하면서 외롭고 보잘것없는 한낱 쓸쓸하기 그지없는 성도(직원)의 현존을 직시할 뿐이다. 그러면서 앞서 소개한 책들이 공통적으로 주목하는 주제에 맞닥뜨린다. 그것은 바로 '겸손'과 '현실 인식'이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장엄한 파도에 올라타 있을 때 정작 할 수 있는 건 그저 겸손한 자세로 정확하게 현실을 인식하는 것뿐이다. 그 파도에 나를 맡길 뿐이다. 시인 류시화의 말대로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다. 나는 바다 그 자체이므로.

항상 독서는 나를 배반하지 않는다. 책 읽기가 남긴 위대한 유산을 사유한다. 거대한 리더십 교체기의 중심에 서있음으로 새삼 왕직의 본연을 심도 있게 천착한다. 이 흥미로운 탐구와 학습 과정에 이 졸필이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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