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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0년 11월
평점 :
요즘 들어 나 자신이 무섭다. 바뀌어도 이렇게 바뀔 수 있나, 생각한다. 과거의 나는 가부장제 보수 꼴통 기독교인이었다. 보수적이고 기독교인이라는 건 전과 변함없지만 남성우월주의라는 허례의식을 벗어던진 건 대단한 발전이다. 최근에는 여성에 관한 처우와 권익에 관심이 많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나 스스로 페미니스트가 되었다고 느낄 정도다. 여하튼 과거에 비해 전회와 같은 변화가 일어난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오래전부터 나를 알아온 주변 지인들은 이런 내 모습에 한결같이 놀라고 있다.
나의 변화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겠다. 그중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인 원인이 있다. 결혼해서 두 딸을 키우면서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삶의 목적과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양육을 통해 기존 습관 속에 배어 있는 내 오류와 한계를 직시하게 됐다. 과거에는 애들이 싫었다. 엄마한테 사탕 달라고 떼쓰는 애들,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뛰어노는 애들, 밥 먹을 때 흘리면서 먹는 애들 등등 아이들은 내겐 밥맛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과한 공상에 빠지기도 했다. 장충체육관에 6세 미만 아이 1,000명 채워놓고 1대 1,000으로 싸워본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해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두 딸은 내 변화의 근본 동인이다. 두 아이를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울 때가 많다. 가끔 아이들은 생각지 못한 시선과 행동으로 우매하고 불성실한 어른이 기꺼이 보지 못한 삶의 고결한 통찰을 알려준다. 특히 아이들의 언어는 솔직하고 직선적인 편인데 불필요한 수사나 과장이 없어 진실을 선연하게 드러낸다. 아이의 언어는 단순하지만 정의롭고 투박하지만 진실하다. 유소년이 갖는 명랑함과 생명력은 다른 세대에서는 흉내 내기 힘든 신적 에너지와 같은 것이다. 어린아이를 '스스로의 힘으로 굴러가는 수레바퀴이고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라고 묘사한 니체의 말은 이 대목에서 일견 옳다.
김소영의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는 독서교실 교사로 일하는 저자 자신의 어린이 세계 관찰기다. 일상에서 목도한 어린이의 탁월성을 세밀하게 탐구하고 해설했다. 저자가 살펴본 어린이의 세계는 수준 높고 아름답다. 흔히 유치하다고 무시해버리는 어린이들의 말과 행동을 교육자적 입장에서 높은 통찰력으로 천착했다. 어린이의 세계는 하나도 버릴 것 없는 배움과 가르침의 시공간이다. 시간의 여유를 갖고 시야를 넓혀서 보면 어른들이 도전받고 배워야 할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 맥락을 살피는 저자의 관찰력과 통찰력이 흥미롭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어린이의 품위'를 다룬 장이다. 저자가 지방 소도시에 여행을 갔다가 오래된 서점에서 목격한 일인데 내용은 이렇다.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아빠와 실랑이 끝에 색칠공부로 추정되는 책을 들고 계산대에 섰다. 아빠가 계산을 하기 위해 책을 달라고 하는데도 어린이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와중에 서점 주인이 아이의 눈을 들여다보며 한 말이 압권이다. "따로 계산해 드릴까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상황은 금세 정리됐다. 계산이 끝난 후 주인은 다음 말도 잊지 않는다. "따로 담아 드릴까요?" 해당 사연을 읽은 후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또 하나 눈에 띈 부분은 어른과 아이의 공간 인식의 차이를 설명한 장이다. 눈높이를 맞춘다는 취지로 아이 옆에서 무릎 꿇고 사물을 바라보려는 시도를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대부분 어색함을 느꼈을 것이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저자는 그림책 작가 안노 미쓰마사의 『스스로 생각하는 아이』에서 소개한 원근감의 차이로 설명한다. 어린이는 어른보다 두 눈 사이가 좁기 때문에 '비교하기 어려운 지점'이 어른보다 더 가까이 있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범위가 더 좁다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 살던 곳에 가 보면 동네가 '좁아' 보이는 것 역시 공간 감각의 차이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내용은 평소 어린이의 산만하고 돌발적인 행동의 원인을 일부분 이해시켜 준다. 통제 불능이어서가 아니라 감각이 다른 탓도 있다는 것이다. 어린이가 실제 느끼는 시공간의 크기를 저자의 설명에 대입해 생각해보니 자연스럽게 고개가 주억거리게 된다.
최근 아동학대를 위시하여 어린이 관련한 좋지 않은 뉴스가 많이 들린다. 일부 어른들의 폭력성과 무관심으로 인해 죄 없는 아이들의 심신이 파괴당한다. 하지만 난 아동학대의 기준을 지금보다 훨씬 높여서 세워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비단 물리적 폭력이 아니더라도 언어폭력과 무관심도 아이들의 영혼을 파괴하는 명징한 학대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어른의 소유물이 아니며 작고 하찮은 존재도 아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는 기존의 오해와는 달리 똑똑하고 정결하며 품격 있다. 나의 두 딸이 나를 변화시키고 나에게 선한 영향력을 계속해서 부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이 위대한 깨달음의 감격 위에 에세이 『어린이라는 세계』가 놓여 있다. 어린이를 키우는 엄마·아빠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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