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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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재미있을 수도 있고, 뭔가를 가르치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느낌을 나눈다는 사실입니다. 그 이야기가 국경과 여러 차이를 넘어서 우리가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것에 호소한다는 사실입니다." - 가즈오 이시구로,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 중

이것이 노벨상 작가의 포스인가. 그렇다. '이야기'는 독자와 느낌을 나누어야 한다. 공감할 수 없는 소설은 죽은 소설이다. 소설은 공감을 통해 언어와 국경을 넘고 성별과 문화를 넘는다. 그럼으로써 이야기는 작가의 것이 아닌 진정한 독자의 것으로 전이되고 확장된다. 이 위대한 소유권의 이전은 사르트르가 '소설적 자유(romanesque liberte)'라는 멋들어진 말로 포장한 이래 문학에 대한 현대 비평의 정설이 되었다. 서두에 인용한 이시구로의 노벨상 연설 한 토막은 소설이란 문학 장르에 존재하는 '작가'와 '독자'와 '허구' 사이의 복잡다단한 함수성을 적확하고 시원하게 포괄하는 명문장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국경과 여러 차이를 넘어 인간으로서 공유하는 것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학의 두 가지 기능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문학의 기능이 교훈과 재미라는 양대 축에 있다는 걸 인정한다면 대중성의 최전선에 위치한 소설이란 장르는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한국문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궁핍했다. 문학은 무언가 젠 척해야 하고 무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한국의 지난한 현대사와 맞물려 고리타분한 이야기만을 양산해왔던 게 사실이다. 물론 최근 다양한 주제와 기법으로 한국소설의 폭과 박력이 넓어지고 확장된 건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가야 할 길은 여전히 멀다. 그런 차원에서 다양한 우주의 폭을 보여주는 해외소설의 역동은 참고할 만하다. 여하튼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교훈과 감동은 그다음이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신간 『클라라와 태양』은 쉽고 재미있고 무게 있는 소설의 전형을 보여준다. 쉽고 간결하며 군더더기 없다. 감동적이고 묵직하다. 소설의 주인공 클라라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다. 실제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갖춘 '인공지능 친구(Artificial Friend · AF)'라는 형태의 로봇인데 클라라는 그 구형 버전이다. 로봇 매장 쇼윈도에 진열된 클라라는 비록 최신형은 아니지만 다른 AF와 달리 인간의 감정에 관심이 많고 감수성이 풍부하다. 어느 날 야위고 걸음걸이가 불편한 조시라는 소녀가 나타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둘은 서로에 끌린다. 조시는 꼭 클라라를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한다. 클라라는 다른 아이의 간택까지 거부하며 조시를 기다린다. 오랜 기다림 끝에 조시는 약속대로 다시 나타나 클라라를 선택해 집으로 데려온다.

소설 속 1인칭 화자 클라라는 인간이 아닌 소설 주인공으로는 문학사에서 손에 꼽을 만한 매력을 가진 존재다. 앞서 언급한 대로 클라라는 구형 로봇이다. 최신형에 비해 기계적인 기능이 떨어지고 부족한 것들이 있다. 그래서인지 클라라의 불완전한 인식 구조와 감정 상태가 소설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교차된다. 하지만 자신을 선택해 준 조시에 대한 마음만은 일편단심이다. 클라라의 불완전한 기작도 조시와 진심 어린 우정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발전해가고 안정되어 간다. 긍정적인 미래를 의심하지 않고 조시에 대한 희생과 헌신에 자신의 전 존재를 투영하는 클라라의 열정이 웅숭깊다. 클라라와 조시가 서로 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우정과 신뢰를 쌓아가는 모습은 참으로 정갈하고 아름답다.

소설의 제목을 생각한다. '태양'은 클라라에게 신적인 존재로 은유된다. 상식적으로 '로봇-신(神)' 사이의 관계 설정이 어색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태양은 에너지의 근원과 신앙을 동시에 대변(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은 클라라의 기계적 힘을 작동시키는 동력의 원천이자 자양분이다. 클라라는 조시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는 힘이 태양에 있다고 믿고 강력한 태양빛을 조시에게 비출 것을 갈망하고 계획한다. 과학의 산물인 AF가 태양빛에 의한 치유라는 비과학적 기제에 경도된 아이로니컬한 설정이지만 클라라의 '믿음'은 한없이 순수하고 한결같아 마치 영혼의 숨결이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클라라의 열심과 수고는 소설의 마지막 이야기의 극적 반전을 만들어내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소설의 탁월함은 독자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 점에 있다. 작가는 과학 발전과 윤리 사이의 긴장, 즉 빅데이터, 유전공학, 인공지능 그리고 이들이 불러올 윤리·도덕적 문제를 나열하지 않는다. 그저 클라라의 시선에 비친 인간 세계의 일상성과 남루함을 사색할 뿐이다. 인간 로봇이라는 타자(他者)적 관점이 관찰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은 현실보다 더 실재와 같아 불편하기까지 하다. 인간이란 종족은 먹이사슬의 최상단에 위치해 있지만 동시에 오류와 한계로 가득 찬 불완전한 존재다. 특별하지만 완벽하지 않고 가능성이 넘치지만 자주 실수하는 종족이다. 이런 인간의 양면성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탐색하는 로봇 클라라의 시선이 농밀하다. 지적하거나 꾸짖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더 와닿는다.

소설의 막장을 덮은 후 오랫동안 묘한 기분에 정지해 있었다. 로봇 클라라의 매력은 많은 사유의 실타래 속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인간은 특별한가. 인간성의 미래에 희망이 있을까. 인간 됨의 본질은 무엇일까. 여러 질문이 샘솟는다. 인간성, 과학, 사랑, 상실, 종교, 죽음, 망각(기억) 등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며 여러 생각을 갖게 하는 소설이다. 쉽고 아름다운 우화이면서 행간은 넓고 질문은 깊다. 가끔 어떤 책들은 아이와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싶은 충동을 주곤 한다. 『클라라와 태양』은 딱 그런 소설이다. 초등 4학년인 첫째 딸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여운이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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